인도의 고승으로 고려에서 설법하였던 지공(指空, ?~1363)대사가 찬술하였다.
형태는 1첩 13폭이고, 금니(金泥) 변상도(變相圖)가 있다. 휴대용 절첩본(折疊本)이며, 1326년(충숙왕 13)에 감지(紺紙)에 은니(銀泥)로 필사한 사본이다. 상하 단변(單邊)이고, 경계선이 있으며, 5행 13~15자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8.9×5.8㎝(8.9×76.4㎝)이다. 표지의 서명은 '문수최상승무생계첩(文殊最上乘無生戒牒)'이다.
이 계첩(戒牒)은 태정 32년 병인(泰定三年 丙寅: 1326) 5월 15일 첩(牒)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어서 “여래유교제자전수승계법서천대선사 지공(수결) 부수우바이 묘덕(수결)(如來遺敎弟子傳授乘戒法西天大禪師 指空(手決) 付受優婆夷 妙德(手決))”이라고 끝을 맺고 있다.
묘덕(妙德)에게 준 계첩은 1326년 5월에 제작한 것이다. 당시 지공이 준 『무생계첩(無生戒牒)』은 3점이 전래되고 있는데, 수계자에 따라 『묘덕계첩(妙德戒牒)』(1326년 5월), 해인사의 『각경계첩(覺慶戒牒)』(1326년 8월), 유점사의 『나옹계첩(懶翁戒牒)』(1327년 2월)이 알려져 있다.
『나옹계첩』의 변상도에는 지공이 나옹에게 수계하는 장면, 『각경계첩』에는 지권인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과 협시보살을 그린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현존하는 3점 계첩 중 이 『묘덕계첩』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것이다.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가 모두 함께 받을 수 있는 이 무생계(無生戒)는 “사귀의(四歸依)-참회(懺悔)-서원(誓願)-무생계”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 계첩에서 수정신사귀의(受淨信四歸依), 참제제삼업죄(懺除諸三業罪), 발홍서육대원(發弘誓六大願)을 받아 지키도록 하였다.
수정신사귀의는 삼귀의에 ‘무생계에 귀의한다’라는 것을 추가하였다. 그리고 참제제삼업죄는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의 삼업이 지은 죄를 참회하여 없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고, 발홍서육대원은 여섯 가지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내용이다.
발홍서육대원 “첫째, 일체 중생이 성불하지 않으면 나 또한 정각에 오르지 않겠습니다. 둘째, 일체 중생의 모든 번뇌를 내가 대신하겠습니다. 셋째, 일체 중생의 어리석음을 밝은 지혜로 바뀌게 하겠습니다. 넷째, 일체 중생의 모든 재난을 안온하게 하겠습니다. 다섯째, 일체 중생의 모든 탐진치(貪瞋痴)를 계정혜로 바꾸겠습니다. 여섯째, 일체 중생이 모두 나와 함께 정등각(正等覺)에 오르게 하겠습니다.”로 끝을 맺고 있다. 이것이 최상승의 무생계이니 모든 선을 짓지도 말고, 모든 악을 짓지 말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사경(寫經)은 고려시대 사경으로서 품격이 다소 떨어지나, 금니로 묘사한 변상도를 비롯해서 은니 경문, 권말의 사성기(寫成記)까지 온전하게 갖춘 사경이고, 더구나 우바이 묘덕에게 은니로 사성하여 수계한 계첩이다. 그리고 수계사 지공과 우바이 묘덕의 친필 수결(手決)까지 갖춘 사경이다.
특히 지공은 회암사에 부도가 있는 인도에서 온 고승이다. 고려 말에 외국의 스님이 사경하고 수결을 가하여 계를 내린 희귀한 예이다. 현재도 회암사에는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부도와 부도비 앞에서 다례를 해마다 집행하고 있다.
현재 『묘덕계첩』으로 불리고 있는데, 사실 묘덕은 1377년(우왕 3)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간행한 시주자 묘덕과 동일한 이름이라서, 현재도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기도 하지만, 51년이란 세월이 경과하였고, 우바이와 비구니로 관계 없는 인물로 추정된다.
감지금은니문수최상승무생계법(묘덕계첩)은 변상도의 솜씨나 자료적인 가치가 뛰어난 작품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아, 현존하고 있는 3종류의 계첩을 일괄하여 국가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현재는 2016년 3월 10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