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사교의집해(天台四敎儀集解)』는 1455년(세조 1)에 금속활자로 주조한 을해자로 간행된 불서이다. 이 불서는 고려 고승인 제관이 천태 사상을 집약하여 정리한 『천태사교의』에 대하여 송나라 고승인 종의가 여러 사람이 풀이한 것을 집해한 책이다. 이 책은 제관이 중국에 전수한 천태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불교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을해자로 간행되어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고려시대 고승인 제관(諦觀, 900975)이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저술하였으며, 이것을 송나라 고승인 종의(從義, 10421091)가 집해(集解)한 책이다.
고려시대 제관의 저술인 『천태사교의』에 대한 여러 사람의 해석을 송나라 종의가 집해한 책으로, 권말(卷末)에 1314년(충숙왕 원년)에 쓴 목암노인(牧庵老人)의 발문이 붙어 있다. 표제는 '천태사교(天台四敎)'이고, 판심제는 '사교의집해(四敎儀集解)'로 되어 있다.
이 책은 1455년(세조 1)에 금속활자로 주조(鑄造)한 을해자(乙亥字)로 찍은 것인데,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 3권(상 · 중 · 하) 3책으로 구성된 것 중에서 1책〔卷下〕이다.
고려 광종 때 제관은 오월국(吳越國) 임금 전홍숙(錢弘俶)의 요청으로 중국에 가서 고려의 불교 전적을 전해 주고, 중국 고승 의적(義寂)에게 가서 10년 동안 천태학을 연구하다가 970년(광종 21)에 입적하였다. 제관이 입적한 후 방광하는 상자가 있어 열어 보니 『사교의(四敎儀)』가 있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제관을 이어 고려 고승 의통(義通)이 중국에 건너가 뒤에 의적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천태교관을 닦아 활동하다가 명성이 높아지게 되었고, 마침내 의적에 이어 천태종 16조(祖)가 되어 중국 천태종을 중흥시켰다.
이후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 의해 여러 경론에 대한 주석을 모아 간행한 『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수록하였다.
『천태사교의집해』는 화의사교와 화법사교로 나누고, 관심에 대해서 제관이 논술한 책에다가 여러 사람의 해석을 모아 종의가 집해하여 편찬한 것이다.
중국 오월국 왕의 요청으로 중국에 가서 천태학을 전해 주었던 고려의 고승 제관이 저술한 『천태사교의』에 대해 송나라 고승 종의가 집해한 책으로 고려와 송나라 고승의 합작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제관 이후에는 고려의 고승 의통이 중국 천태종 종조가 되어 중국 천태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또한, 『천태사교의집해』는 1455년에 주조한 을해자로 간행된 금속활자본이다. 그리하여 고려와 중국의 천태학 연구에 귀중한 서적으로 양국의 천태 사상 및 불교사 연구에 빠질 수 없는 자료이고, 을해자로 간행되어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 연구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문화 교류의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큰 서적이라 할 수 있어 국가지정유산으로 조정할 대상으로 판단되고 있다. 2013년 10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