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河東) 청계사(淸溪寺)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는 1556년에서 1564년 사이에 간행된 귀진사판과 1635년에 중각한 송광사판으로 구성된 『화엄경』 관련 불교 경전이다. 대승 경전의 하나인 『화엄경』 주본을 저본으로 당나라 징관이 소(疏)하고 여기에 송나라 정원이 주해한 것을, 귀진사에서 판각한 것과 송광사에서 중각한 것을 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 사상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하동 청계사 『대방광불화엄경소』는 1556년에서 1564년 사이에 간행된 귀진사 개판본 38책과 1635년 송광사에서 중각한 2책(권12, 권1012)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수량은 119권 40책이다.
표지 서명은 ‘ 화엄경(華嚴經)’, 권수제(卷首題)는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䟽)’, 판심제는 ‘華嚴(화엄)’이다. 제책의 형태는 오침안(五針眼) 선장본(線裝本)이며,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의 크기는 세로 20.9㎝, 가로 15.8㎝이다.
계선이 있고, 6행 15자로 배열되어 있다. 판심은 대흑구(大黑口)에, 상하내향(上下內向) 흑어미(黑魚尾)이고, 종이의 지질은 닥종이이며, 본문에는 한자의 약체 구결(口訣)이 묵서로 쓰여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당나라의 승려 징관(澄觀, 738~839)이 776년에 오대산 대화엄사의 선주각원에서 설법한 80권 『화엄경』의 내용을 787년에 집대성한 논문이다.
우리나라에는 799년에 승려 범수가 들여왔으나, 어느 시기에 유실되었다가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에서 새긴 목판을 서진이라는 상인을 통하여 1087년에 다시 들여왔다. 이때 들어온 『화엄경소』는 징관의 해설에 대하여 송나라의 정원이 다시 주해를 한 120권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화엄경소』는 이 판본을 모본으로 하고 있다.
이 『화엄경소』는 고려에서 인출된 이후로 조선 세종 때에 일본의 청에 의하여 이 책의 목판과 밀교대장의 판목을 일본으로 보냈으며, 이후 1556년에 귀진사에서 개판되었고, 1635년에 송광사에서 중각되었으며, 1686년에 영각사에서 다시 번각되어 판각되었다. 여러 판본 중 완질로 전해 내려오는 것은 송광사에서 중각된 판본이다.
하동 청계사 소장본 『대방광불화엄경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음과 같다.
권6, 권14, 권38, 권47, 권50, 권96, 권120의 권말에 “가정삼십오년병진유월일 황해도서흥지숭덕산귀진사 개판(嘉靖三十五年丙辰六月日黃海道瑞興地嵩德山歸眞寺開板)” 등의 간행 기록이 확인되기 때문에 38책은 임진왜란 이전 귀진사 판본으로 확인된다.
귀진사 개판본이 아닌 2책은 1635년에 순천 송광사에서 중각된 판본으로 확인된다. 당시 귀진사 판목은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으므로 송광사에서 중각할 때에 귀진사 판본의 결본을 보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각 권의 권말에는 간행 기록 이외에도 간행에 참여자인 시주자와 간자, 화주들이 많이 확인되며, 권6에서는 약 101명의 시주자가 확인된다. 이어 권47과 권54, 권96에도 많은 시주자와 간자 등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 사상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하동 청계사 『대방광불화엄경소』는 귀진사 판이 대부분으로 국내에 전본이 드물다. 이 귀진사 판본의 간행 기록은 1556년부터 1564년까지이며, 송광사 판본은 1635년이라는 명확한 간행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각 권의 권말 사항에 많은 시주자의 명단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또한 인쇄 및 보관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학술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국가유산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