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崔永浩)는 1890년 4월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이명은 최호(崔好), 최명우(崔明宇)이다.
1907년 한국군 부위(副尉)로 의주진위대 등에서 복무하였으며, 군대의 강제 해산 후 일진회(一進會) 타도에 앞장섰다. 1919년 3 · 1운동이 일어나자 의주에서 시위에 앞장섰다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19년 8월 21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안창호(安昌浩)가 발의하고, 홍이관(洪利寬) · 이유필(李裕弼) · 조동호(趙東祜)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로서 『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1923년 임시정부 교통국 이륭양행(怡隆洋行)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만주 안동(安東)에 파견되어 활동하다가 1923년 5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이듬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8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