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홍(林基弘)은 1905년 11월 14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1920년 5월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玉尙面)에서 조선 독립을 표방하는 천마산대(天摩山隊, 혹은 천마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천마산대는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관전현(寬甸縣)의 광복단(光復團)에서 활동하다가 국내로 들어온 최시흥(崔時興) 등이 1920년 3월경에 조직한 무장 독립 단체이다. 천마산대라는 명칭은 이 단체가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古寧朔面)에 있는 천혜의 요새인 천마산을 근거지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천마산대는 군자금 모금, 식민 통치기관의 파괴, 일본 군경 및 친일파의 처단, 일제와의 교전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9월 천마부장 최시형과 소대장 김용택(金龍澤)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활동하였다. 천마산대가 1922년 8월 새로이 출범한 통합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와 합병하자 대한통의부에 들어가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1923년 5월경 김용택이 이학현(李鶴賢)‧이창순(李昌淳)‧김영화(金永化) 등의 부하들을 이끌고 국내로 들어와 평안북도 희천군 장동면 옥동 공석용의 저택에 들어가 4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희천군 일대에서 4~5차례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일 때 김용택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3년 5월 이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924년 천마산대가 독립운동 단체 간의 불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대한통의부에서 분리하여 참의부(參議府)와 합병하자 참의부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1924년 4월 남만주 통의부 대원 모두의 합심협력을 강조한 「경고 재만군민」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아래에서 모든 독립운동 단체가 통일을 이룰 것을 촉구한 선언서를 발표할 때 남만주 군인 대표 중 일인으로 참여하였다.
1929년 3월 참의부, 정의부(正義府), 신민부(新民府) 등을 통합하여 국민부(國民府)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국민부의 외세집행위원(外勢執行委員)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2년 6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7호와 치안유지법 등을 위반하였다는 죄목으로 천마대원 및 국민부원(國民府員) 박재훈(朴在勳)‧임우근(林宇根)‧최병환(崔炳煥)‧조승화(趙承化) 등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어 9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 중 1933년 3월 16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