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경(李善卿)은 1902년 5월 25일 경기도 수원에서 이학구의 2남 2녀 중 둘째 딸로 출생하여 1921년 4월 21일 사망하였다. 수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숙명여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19년 경성여자공립보통학교로 전학하였다.
이선경은 3 · 1운동 때 수원의 민족운동가 김세환의 지시를 받아 비밀문서를 안성 · 대전 · 충주 등지에 전달하였다고 한다. 이후 수원에서 서울의 중등학교로 통학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일 비밀결사가 결성되었다. 1919년 5월 서울에서 조직된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영향을 받아 1919년 말 경성기독교청년학관 학생 이득수와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 박선태를 중심으로 수원에 혈복단(血復團)이 조직되었다.
1920년 6월 수원 서호(西湖) 부근에서 만나 혈복단을 구국민단(救國民團)으로 개편하면서 단장 박선태, 부단장 이득수, 서무부장 임순남, 재무부장 최문순, 교제부장 차인재, 구제부장 이선경 등을 선임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수감된 이들의 가족 구호에 힘썼다. 이선경 등 여학생들은 『 독립신문』과 『 대한민보』를 배포하고 회원을 확보하는 한편,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적십자회에 가입하여 간호원이 되어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계획하던 중 같은 해 8월에 체포되어 이선경은 1921년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고 석방되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며칠 후 순국하였다.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