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환(李珉煥)은 1899년 3월 4일 함경남도 홍원군 경포면(景浦面) 남양리(南陽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홍파(李洪坡) · 이승(李承)이고, 아명은 칠성동(七星童)이다.
1917년 함경남도 홍원(洪原)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조선인 순사를 처단하고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1919년 3 · 1운동에 참가하였고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년모험단(少年冒險團)을 조직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위한 군자금 모집과 무기 구매, 운반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여름 국내로 잠입하여 함경남도 일대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의 국내 거점 마련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같은 해 12월 함흥(咸興)에서 체포되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군비단은 서간도 지역 장백현(長白縣)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독립군단으로, 비교적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국내 진격 후 일제 경찰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민환은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청진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22년 8월 탈옥에 성공하여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임병극(林炳極)의 유격부대에 참가하였다.
1923년 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적기단(赤旗團) 결성대회에 참석하여 부단장이 되었는데, 적기단은 1922년 소련의 극동위원회 고려부(高麗部)에서 활동하던 이동휘(李東輝) 등 고려공산당 상하이파 계열이 조직한 항일 단체였다.
1923년 블라디보스토크 고려부에서 개최한 국치기념일(國恥紀念日) 행사에서 강연을 통해 운집한 한인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하기도 하였으며, 1927년까지 적기단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8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표적인 한글 신문인 『 선봉(先鋒)』 신문사에서 근무하며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