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에 김광균(金光均, 19141993)의 혼례 때 시가(媤家)에서 신부 김선희(金善姬, 19192007)를 위해 제작한 옷이다. 김선희는 개성 출생이나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에서 성장하고 혼례식도 함경남도 이원군에서 했다고 한다. 이 혼례복은 개성이 고향인 김광균의 모친이 사람을 시켜 제작한 후 개성의 머리 어멈[首母, 首飾母]과 함께 혼례 때 보낸 것이라고 전해진다.
원삼(圓衫)은 연한 녹색의 모본단이며 색동 소매가 달려 있다. 색동은 길에서부터 볼 때 파랑, 노랑, 빨강, 노랑의 순서로 달았다. 수구와 옷 가장자리를 따라 홍색 선단이 겉에 둘러져 있다. 원삼의 깃은 길과 같은 연한 녹색이다. 원삼의 홍색 선을 겉으로 드러나게 댄 것은 개성 지방 원삼의 특징이다. 원삼의 깃은 별도의 깃을 단 것이 아니라 배자 깃을 달듯 안에서 꼬집어 박은 것이다. 원삼의 크기는 앞길이 113㎝, 뒷길이 120㎝, 화장이 80㎝이다. 대대(大帶) 혹은 봉대(鳳帶)라고 부르는, 가슴에 두르는 긴 허리띠는 선단과 같은 홍색 옷감으로 만들었다. 원삼과 함께 착용했던 다홍치마는 원삼과 같은 모본단으로 만들어졌다. 치마의 크기는 허리를 포함한 길이 120.5㎝이며, 허리말기는 길이 81㎝, 너비 10㎝이다. 흰색 옥양목 허리가 달린 전통 치마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왼쪽 자락을 손에 잡을 수 있도록 왼꼬리 방식으로 입었던 것이다.
김선희 혼례복은 원삼의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유물과 함께 소장 중인 한삼은 김선희가 며느리를 볼 때 새로 제작한 것이다. 원삼의 단추는 금패로 만든 것이 2개 달려 있었다고 한다. 후에 그 금패 단추를 이용해 브로치를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는 흔적만 남아 있다.
개성 지방의 원삼은 선단을 안감에 두르는 다른 지방의 원삼과 달리 겉감의 가장자리에 홍색 선을 두른 것이다. 또한 개성에서는 혼례 때 다른 지방과 다른 양식의 족두리와 화관(花冠)을 착용하였는데, 비록 혼례복 일습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김선희의 혼례 사진이 남아 있어 개성 지방의 혼례복 일습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 원삼은 김선희가 수의(壽衣)로 사용하기 위해 한국전쟁 중에도 보관해 왔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혼인 때 입었던 옷을 수의로 입고 가는, 조선시대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김선희 혼례복은 제작 연도와 착용자가 확실한 옷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근대 직물과 개성 원삼의 특징, 혼례복과 수의에 대한 풍속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1998년에 단국대학교 석주선박물관에서 김선희의 고증으로 개성의 신부복 차림을 재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