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 묘 출토유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변수 묘에서 출토된 의복과 부장품이다. 목우와 요선철릭, 철릭, 답호, 단령, 바지, 적삼 등의 복식유물 62건 72점이다. 특히 목우와 요선철릭은 관련 유물이 희귀한 귀중한 사례로 조선 전기 남자 복식의 특징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완성도가 높아 16세기 초의 복식, 상·장례 풍습 및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변수(邊脩, 1447~1524)의 본관은 원주이며, 1469(성종 원년)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연산군 대에 파직되어 중종반정에 가담하였다.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원천군(原川君)에 봉해졌다. 그 뒤 충청도와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513년(중종 8)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1997년 11월 변수와 부인 연안김씨 합장묘를 이장하던 중 변수 묘에서 복식과 염습구, 목우 등 62건 72점이 출토되었다.
목우는 관복을 입은 남자상 2점, 평상복 입은 남자상 7점, 여자상 4점, 여자 악인상(樂人像) 4점, 소녀상 1점과 말 4점이다. 남자상은 입자(笠子)나 무각평정건(無角平頂巾)을 머리에 쓰고 곧은 깃의 긴 포를 입었다. 여자상은 얹은 머리에 치마 저고리를 입은 모습이고, 소녀로 보이는 상은 머리를 뒤로 길게 느리고 있다. 목우는 6~10㎝의 작은 크기이지만 묘사가 정확하여 조선 전기 복식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변수묘 출토 복식과 염습구는 36종 44점이다. 요선철릭(腰線帖裏) 3점, 철릭 13점, 답호 7점, 단령 2점, 적삼 1점, 바지 2점, 소모자 1점, 광다회 1점, 명목 1점, 악수 1쌍, 소매 조각파편 등과 목관 2점, 칠성판 1점, 묘지, 명정 등도 함께 출토되었다.
그중 요선철릭은 실을 엮어 짠 끈을 허리에 부착한 1점과 ‘쌍밀이’ 장식처럼 천을 가늘게 마주 말아 감쳐 만든 끈을 부착한 2점이 완벽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접음 주름으로 가로줄 장식을 만든 고려시대 유물인 해인사 금동비로자나불 복장유물인 송부개(宋夫介, 생몰 미상)의 요선철릭과 더불어 요선철릭의 허리 가로줄 무늬 장식방법을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철릭은 양소매가 모두 긴 것, 한쪽 소매만 반수(半袖)인 것, 양쪽 소매 모두 반수인 것이 모두 발견된다. 철릭과 답호의 깃은 이중 깃 양식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포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철릭의 고름바대에는 금박을 옻칠을 접착풀로 사용한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 변수 묘에서 사용된 직물은 주, 라(羅), 문단, 문사까지 다양하며 무늬는 구름과 연꽃을 주제로 한 것이 많다.
출토 복식 중에는 부분적으로 파손된 것도 있었으나 보수와 복원 처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