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
연원
조선시대에는 일상용 배자와 예복용 배자가 있었다. 예복용 배자는 조선 후기에 국속(國俗)화된 적의(翟衣) 제도가 정착되기 전까지 왕비나 세자빈의 대례복에 포함되었다. 또한 여성들의 상례복(喪禮服)으로 사용되어 태종 8년 5월 시녀의 상복으로 등장한다. 이후에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상례에 사용된 배자에 대한 내용이 수차례 나타난다. 남성들의 반비, 반비의(半臂衣), 답호(褡護), 쾌자(快子), 호의(號衣), 더그레 등도 넓은 의미의 배자에 속하는 옷이었다. 하지만 소매가 짧거나 없는 저고리 길이의 웃옷인 일상용 배자는 조선 후기의 유물에 많이 나타난다.
형태와 제작방식
변천 및 현황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사례편람(四禮便覽)』
-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논문
- 박두이, 「배자의 양식 변천에 관한 고찰」(『복식』 9, 한국복식학회, 1992)
- 이수연, 『18세기 이후 배자의 유행과 확산』(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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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소매가 없는 윗옷.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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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깃과 소매가 없거나 소매가 아주 짧은 겉옷.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조선 시대에는 배자(褙子), 더그레, 답호, 쾌자(快子) 따위로 발전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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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깃과 소매가 없거나 소매가 아주 짧은 겉옷.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조선 시대에는 배자(褙子), 더그레, 답호, 쾌자(快子) 따위로 발전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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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조선 시대에, 각 영문(營門)의 군사, 마상재(馬上才)꾼, 의금부의 나장(羅將), 사간원의 갈도(喝道) 등이 입던 세 자락의 웃옷. 소속에 따라 옷 빛깔이 달랐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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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오례(五禮)의 하나. 왕가(王家)에서는 왕의 성혼이나 즉위, 또는 왕세자ㆍ왕세손ㆍ황태자ㆍ황태손의 성혼이나 책봉 따위의 예식을 이르고, 사가(私家)에서는 관례(冠禮)나 혼례를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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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그 나라 특유의 풍속.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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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말하는 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기 나라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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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앞을 여미지 아니하고 마주 대는 옷깃.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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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조선 헌종 때 서유구가 펴낸 농업 백과전서. 16 부문으로 나누어 농업 정책과 자급자족 경제론을 편 실학적 농촌 경제 정책서로, 농기(農器)의 도보(圖譜) 및 전국의 장날까지 우리나라의 약 100년간의 시장에 관한 자료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13권 52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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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저고리나 두루마기 따위의 앞쪽에 대는 가는 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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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저고리나 두루마기 따위의 뒤쪽에 대는 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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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면사를 사용하여 평직 또는 능직으로 짠 후 보풀이 일게 한 직물. 촉감이 부드럽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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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줄이 죽죽 지게 박는 바느질. 또는 그렇게 만든 물건. ⇒규범 표기는 ‘누비’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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