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직(金浩稙, 1905〜1959)은 근대 우리나라의 교육자이자 영양학자이다. 1905년 4월 16일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김경하의 아들로 태어나 벽동농업학교, 수원고등농림학교 농학과를 졸업하였다. 전주 신흥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30년 동북제국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대구 계성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 숙명여자전문학교에서 생물학과 영양학을 가르쳤다. 1949년 국비 장학생으로 다시 미국 유학을 가서 코넬대학교에서 영양학을 공부하였고, 1952년 「콩의 생장 촉진소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돌아와 부산수산대학교 학장, 대한생물학회 회장, 문교부 차관, 홍익대학교 학장,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으며,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조선식물개론』 외에 논문 「소맥분 보강에 대한 연구」와 「콩단백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김호직은 영양학자로서 국민 영양 개선과 농사 교육 보급에 이바지한 공로로 1953년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조선식물개론』의 크기는 18㎝이고, 126쪽 분량이다. 표지명은 『朝鮮食物槪論(조선식물개론)』이고, 본문은 일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저자명도 김호직의 일본식 이름인 풍산태차(豊山泰次)로 되어 있다. 발행일은 소화(昭和) 20년(1945) 4월 25일이며, 경성 생활과학사(生活科學社)에서 출판되었다. 이남세등(伊南世燈)과 저자가 쓴 책의 서문 작성일은 소화 19년(1944) 5월 25일로 되어 있다. 당시 정가는 2원 80전이었다. 『조선식물개론』은 국회도서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한국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호직은 1945년 광복 때까지 10여 년에 걸쳐 우리나라의 농촌, 산촌, 도시 지역을 직접 답사하며,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식물학(食物學)과 지역의 식생활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저술하였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 결국 ‘인간의 식물’이 성립한다는 문제는 단순히 영양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크게는 생물학적 · 생태학적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 식물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기후와 작물과 식량’, 이들 사이에 일관된 무슨 관계가 있다는 데 주목하여 일반적으로 돌보지 않고 있는 이 문제를 시비(是非) 규명(糾明)해 보고자 하는 것이 찬자(撰者) 오랜 염원이다.”라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조선식물개론』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조선의 식품」에서는 식품군별로 그 특성을 소개하였다. 「제2장 조선의 식물」에서는 조리를 위한 양념류 소개와 밥, 죽, 떡, 찜, 탕, 찌개, 전골, 지짐이, 국수, 만두, 구이, 전, 김치, 회, 생채류 등의 조리법을 설명하였다. 「제3장 조선의 상식물」, 「제4장 식물학의 신과제」와 「제5장 향토식 연구법의 1시안」에서는 농촌 · 산촌 · 도시 지역의 향토식을 연구하여 영양학적인 견해와 조사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 『조선식물개론』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에 적합한 식생활의 방향을 영양 생태학적인 입장에서 검토하였다.
『조선식물개론』의 서문에서 숙명여자전문학교 교두(敎頭) 이학사(理學士) 이남세등(伊南世燈)은 김호직이 조선의 식품과 식물에 대해 매우 열성적이고 또한 양심적인 연구가이며, 『조선식물개론』의 출판이 우리나라 식생활 분야의 개량과 국민 보건에 공헌하는 바가 클 것이라 하였다. 『조선식물개론』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산출된 식품의 특성, 음식 조리법, 각 지역의 음식 문화를 탐구하고, 저자가 공부한 신학문을 대입하여 식생활의 과학화를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