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간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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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서와 한국어 연구에 매진한 일본인으로, 『고선책보(古鮮冊譜)』와 『선책명제(鮮冊名題)』(1927) 등을 남긴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
이칭
이칭
마에마 교사쿠[前問恭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전간공작(前間恭作)은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로도 불리는 일본 대마도(對馬島) 출신의 일본인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시작된 근대적인 한국학(韓國學) 연구의 태동기에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한국어와 한국의 전적(典籍) 연구에 매진한 한국서지학자(韓國書誌學者), 한국어학자(韓國語學者), 한국학 연구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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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한국의 고서와 한국어 연구에 매진한 일본인으로, 『고선책보(古鮮冊譜)』와 『선책명제(鮮冊名題)』(1927) 등을 남긴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
내용

전간공작(前間恭作)은 마에마 교사쿠[前問恭作]로도 불린다. 1868년 1월 23일에 일본 대마도(對馬島) 이즈하라[嚴原]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다. 아버지 마에마 겐조우[前問謙藏, 徒士(하급 무사)]의 임지를 따라 치쿠젠 하다카로 이사하여, 1879년 1월 이즈하라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880년에 ‘한어학 4급 증명서(韓語學 4級 證明書)’를 받았고, 1881년 4월부터 한학부(韓學部)의 첫 번째 학생으로 전문적으로 조선어[韓國語] 습득에 매진하였다. 당시 한국어 교사였던 전경옥(全慶玉) 선생을 집에 모시고 와서 조선어를 공부하기도 하였다. 1888년에는 게이오 의숙[慶應義塾] 예과2에 편입하고, 1891년에 의숙을 졸업하면서 ‘제1회 외무성 조선 유학생’에 선발되어, 1891년 11월에 조선(朝鮮)으로 건너왔다.

마에마 교사쿠는 유학생 신분으로 서울에 왔으나, 1893년부터 1900년 3월까지 서울 인천 등지에서 몇몇 관직을 거치고, 1902년에는 서울의 일본공사관 이등통역관(二等通譯官)에 임명되었다. 1905년에는 통감부 통역관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을사늑약(乙巳勒約) 조인(調印)에 협력하였다. 마에마는 1911년 3월까지 ‘조선총독부 총무부 문서과’에 근무하다가 사임 후 도쿄로 돌아갔다.

일본으로 귀국한 이후 마에마 교사쿠의 일상은 그가 한국에서 수집해 온 고서들에 대한 정리(整理) · 해제(解題) 작업이 대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41년에 『훈독이문』을 완성한 후 건강이 악화되었다. 1941년 연말에 『고선책보』의 인쇄 견본 몇 장이 동양문고(東洋文庫)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마에마는 『고선책보』의 발간을 앞두고, 1942년 1월 2일에 향년 75세로 생애를 마쳤다.

마에마 교사쿠의 한국 체류 기간은 1891년부터 1911년까지 20년 동안이다. 이 기간은 조선의 격동기였으나, 마에마 교사쿠는 조선에 관한 연구와 조선본(朝鮮本)의 수집에 집중하였으며. 1903년경에는 한국연구회(朝鮮硏究會)를 결성하고 간사(幹事)를 맡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며, 매월 1회의 강연도 개최하였다.

마에마 교사쿠는 1891년에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조선어학습용 서적, 일반 한적(韓籍), 조선책[韓國 古書] 등을 구입하기 시작하여 향후 20년 동안 그야말로 광대한 한본(韓本) 수집 활동을 지속하였다. 「흥부전(興夫傳)」, 『동국문헌록(東國文獻錄)』, 『징비록(懲毖錄)』, 『백운재실기(白雲齋實紀)』 등 엄청난 분량의 한국 고서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였다. 마에마의 인생 전반부는 한국어 학습과 한적 자료의 수집 기간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마에마의 한국 전적(韓國典籍) 연구는 일본 도쿄 귀국(1911년 3월) 이후부터 꾸준하게 지속되었다. 그가 20년 동안 수집하였던 조선 고서(朝鮮古書)에 대한 연구 열정은 마에마 교사쿠 스스로가 작성한 목록인 「재산루 수서록(在山樓 蒐書錄)」과 「속재산루 수서록(續在山樓 蒐書錄)」에 잘 나타나 있다.

「재산루 수서록」은 1924년 마에마 교사쿠가 조선 체류 기간에 수집하였던 한국 전적 전부를 일본 동양문고에 기증하면서 기증 자료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이 목록의 발문(跋文)에는 ‘동경 대지진(東京大地震, 1923년)으로 도쿄에 산재(散在)하던 조선의 문헌들이 모두 소실(消失, 燒失)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조선에서 수서(蒐書)한 한국 전적들을 일본 학계에 제공하기로 하였으며, 모든 장서(藏書)를 동양문고에 기증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재산루 수서록」에 기록된 장서는 모두 423종 1,764책(冊)에 이른다. 이 서목에 ‘재산루(在山樓)’라는 명칭이 기입된 것은 마에마가 조선으로 건너와 서울에서 처음 살게 된 곳이 남산(南山)의 서북쪽 기슭 언덕이었는데, 그곳에 ‘在山樓’라 불리는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에마는 그곳에 집을 짓고 나중에 조선식의 서루(書樓)를 세운 후 ‘在山樓’라는 편액(扁額)을 걸었고, 여기에 자신이 수집한 조선의 서적들을 모아 두고 관리하였다.

「속재산루 수서록」은 마에마 교사쿠 사후(死後)인 1942년 6월에 유족(遺族)에 의하여 다시 동양문고에 기증된 장서의 목록으로, 이때 기증된 자료는 431종 714책이다. 이 목록은 1924년에 동양문고에 1차 기증한 이후부터 12년 동안 마에마 교사쿠가 추가로 수집한 전적으로, 그중에는 고본 및 희귀서 등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밖에 마에마 교사쿠의 조선 관계 고본류(古本類) 유저(遺著) 약 70종은 경성제국대학(現 서울대학교)에 기증되었다. 『교주가곡집(校註歌曲集)』, 『조선고어사전고본(朝鮮古語辭典稿本)』, 『개경궁전부(開京宮殿簿)』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마에마 교사쿠의 서지학적 핵심 저술에는 1) 『조선의 판본』(1937), 2) 『고선책보(古鮮冊譜)』 3책(제1책(1934), 제2책(1956), 제3책(1957) 刊行), 3) 『선책명제(鮮冊名題)』 등이 있다.

  1. 『조선의 판본』: 마에다는 한국서지학 중 특히 조선의 활자(活字) 등에 큰 관심을 가져 1937년에 이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한국 고서의 종합적 체계와 특정한 종합적 해제(解題)로, 『고선책보』의 서설(序說)이라 할 수 있다.

  2. 『고선책보』 3권(卷) 3책(제1책(1944), 제2책(1956), 제3책(1957)): 이 책은 마에다 교사쿠의 평생에 걸친 업적으로, 한국 전적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노력이 집대성된 결실로 평가된다. 이 책에 수록된 한국 고서의 분량은 표제(標題)로 세운 것을 기준으로 하여, 해제가 붙은 것이 3,291종, 서목(書目)만 내세운 것이 4,064종으로 총 7,355종이다. 이는 엄청난 분량의 해제서목(解題書目)이 축적된 거질(巨帙)이다. 『고선책보』에 수록된 각 해제는 일본어 50음순(音順)을 기준으로 하여 각 서명(書名)을 배열하고 있다.

  3. 『선책명제』: 총 12권으로 이루어진 해제서(解題書)로 1927년에 저술되었다. 이 저술의 분류체계는 마에마 교사쿠가 독자적으로 창안한 것으로, 그 분류 기준은 ‘사기(史記), 의주(儀注), 정교(政敎), 지리(地理), 전기(傳記), 유문(儒門), 도석(道釋), 방술(方術), 문예(文藝)’ 등의 이른바 ‘주제별 분류(主題別 分流)’를 채택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아마도 이 책에서 분류된 자료들을 이용자들이 검색할 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대주제별(大主題別) 검색 방법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마에마 교사쿠의 조선어학(朝鮮語學)과 조선사학(朝鮮史學)의 저술에는 1) 문법서(文法書)인 『한어통(韓語通)』(1909), 2) 주석 작업으로 『용가고어전(龍歌故語箋)』(1924), 3) 『계림유사 여연고』(1925) 등이 있고, 일종의 자료 정리 작업으로 『교정 교린수지』(1904), 『훈독이문』(1942), 『교주 가곡집』(1951) 등이 있다. 그밖에 향가(鄕歌), 이두(吏讀), 이문(吏文) 등의 차자표기 자료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전간공작(前間恭作)은 한국의 고서(古書)와 한국어(韓國語) 연구에 매진한 일본인으로, 『고선책보(古鮮冊譜)』와 『선책명제(鮮冊名題)』(1927) 등을 남긴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이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최초의 한국학 전문학자로 주목 받는 인물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서지학개론 편찬위원회, 『서지학개론』(한울, 2004)
김태수, 『목록의 이해』(한국도서관협회, 2008)
한재영·이현희·가와사키 케이고, 『韓國 書誌學의 先鞭 : 마에마 교사쿠의 작업을 중심으로』(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논문

서열기. 「『古鮮冊譜』의 서지적 연구」(『서지학보』 12, 한국서지학회, 1996)
집필자
김성수(청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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