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61년 창립된 국내 최대 민간 경제인 단체이다. 1961년 1월 창립된 한국경제협의회를 시작으로 5·16 군사쿠데타 이후 한국경제인연합회로 재출범하였다. 한국 경제 발전에 비례하여 가입 회원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구성도 국내 산업 전 업종을 망라하게 되면서 1968년 3월 단체명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개칭하였다. 국가주도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설립되어 장기간 정부와 다양한 측면에서 호흡을 맞추면서 공업화와 경제 발전를 이뤄내는 데 역할을 하였다.
공식적인 설립 목적은 자유 시장 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 경제의 발전, 올바른 경제 정책 구현 및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것 등이다. 실제로는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의 역할과 함께 1960년대 이후 국가 주도 고도 성장기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1961년 1월 창립된 한국경제협의회가 시작이다. 5·16 군사쿠데타로 일시 해산하였으나, 1961년 8월 삼성 이병철 회장 등 13명의 경제인이 만든 경제재건촉진회를 토대로 하여 한국경제인연합회로 재출범하였다. 한국 경제 발전에 비례하여 가입 회원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구성도 국내 산업 전 업종을 망라하게 되면서 1968년 3월 단체명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개칭하였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선진국 경제 단체의 구성 형태인 ‘경제단체연합회’, ‘산업연합회’, ‘공업연합회’ 등의 조직과 비등한 연합체를 만들려는 의도도 작용하였다. 이후 수십 년간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였으나,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주1의 고리로 지목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이로 인해 4대 그룹이 탈퇴하는 등 일련의 사태를 배경으로 2017년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2023년 8월 1961년 창립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슬로건 아래 단체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개칭하였다.
설립 초창기인 1960~7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정부와 긴밀한 관계 속에 외자 유치, 공업화 기반 마련, 국제 민간 경제 협력 등의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피력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친 세제 개선에 대한 적극적 의견 개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첫 싱크탱크로 ‘경제 · 기술조사센터’를 설립하였고, 이후 한국경제연구원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1970년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출범시켰다. 1980년대 이후에는 개방 경제 시대에 부응하여 중장기 산업 발전의 전망을 제시하고, 수입자유화, 자본 시장 국제화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하였다. 1990년대 국가적 위기였던 ‘IMF사태’와 관련해서는 추락한 한국 경제의 신뢰도 제고 사업에 앞장서는 한편으로 시장 원리와 기업 윤리 확산을 위해 ‘자유기업원’을 설립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정책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으로 기업 투자 활성화 방안 제시, 노사관계 선진화 모색, FTA시대에 맞춘 대안 제시 등의 폭넓은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렇듯 반세기에 걸쳐 시대 변화에 적극 대응하며 해당 상황에 맞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반면 시대 변화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진행한 활동들도 있다. 사회경제 발전을 위한 민간경제계 입장에서의 적극적 의사 표명과 건의, 해외 민간 경제 외교 활동, 사회 각계와의 유대 강화와 건전한 경제 사회 풍토 실현을 위한 노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1960년대 국가주도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설립되어 장기간 정부와 다양한 측면에서 호흡을 맞추면서 공업화와 경제 발전를 이뤄내는 데 역할을 하였다. 재계의 입장만을 대변한다는 비판과 정경유착의 창구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국가 주도 경제 개발의 약점을 민간경제계의 경험과 우수한 인력을 동원하여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도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