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한국 여성들이 진출한 최초의 공식적인 주1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었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1946년 12월 7일 구성되어 1948년 5월 19일 해산되기까지 약 1년 5개월 동안 입법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여성의원은 박승호, 박현숙, 신의경, 황신덕이었다. 이들은 여성 정당 및 단체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여성의원들은 여성단체들과 공조하며 여성의 권리확보와 관련된 공창제 폐지, 주2 금지,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주3의 폐지, 주4 등의 권리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주5법 제정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여성의 의석 보장을 위한 여성의원 최저할당제와 같은 ‘여성의원특별취급안’의 입법화를 시도하였다.
‘여성의원특별취급안’은 주6기초위원회에서 작성한 보통선거법 초안에 대한 격론 끝에 법제사법위원회에 수정안을 내도록 결정된 것과 관련이 있었다. 법제사법위원회의 수정안에 ‘총 의석 266석 중 여성 의석 22석 이상을 할당하는 특별 조례’가 담겨 있었다. 이것은 신의경, 황신덕 의원이 “현하 기형적 조선의 정세에 비추어 여자의원 선출 편법과 특별 선거구도 타당하니 제 의원의 양해를 요청한다”는 취지에서 작성되었다.
당시 선거법 기초자였던 김붕준 의원은 “기초자들은 여성 진출을 침해할 일이 없으며 이러한 문제는 여성들이 맹렬한 선거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라며 의견을 일축하였다. 그리고 남성의원들은 웃거나 무시하였다. 이러한 남성 의원들의 무시로 이 법안은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여성의원들이 법 제정 과정에서 사용했던 논리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남녀평등의식 실현이라는 명분이었다. 이것이 여성문제를 ‘여성’에 국한시키지 않고 남녀 모두에게 신생독립국가로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는 공감을 얻고자 하였으나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이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 참여한 4명의 여성의원들은 정치적 훈련이 부족했다고 스스로를 낮추었고 그 해결책으로 여성들의 '실력양성'을 제시하였다.
이 법안은 여성의원 최저 정원을 정하는 여성의원 할당제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있다. 그러나 당대의 남녀 차별적 사회 의식 속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시대적 한계를 이 법안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