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옥 ()

만화
인물
4칸 시사만화 「까투리여사」를 그리다 필화사건에 휘말린 만화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39년 9월 2일
사망 연도
2007년 3월 2일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군
주요 저서
한국신문만화사 1909-1995
주요 작품
메뚜기, 엉뚱이, 까투리여사, 오똑이
주요 경력
시사만화가회 회원
대표 상훈
고바우만화상 특별상
관련 사건
1972년 6월19일 자 까투리여사 필화사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윤영옥은 4칸 시사만화 「까투리여사」를 그리다 필화사건에 휘말린 만화가이다. 건국대학교 진학 후에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1960년 단행본 『배뚱이와 마른 꽁이』를 출간하였다. 1961년부터 7년 동안 「엉털즈」를 『소설계』에 연재하였고, 1965년부터 만평 「메뚜기」를 『전남매일신문』에 연재하면서 시사만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1967년부터 『서울신문』에 대표작 「까투리여사」 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까지 총 6,773회를 연재하였다. 한국 신문 만화를 집대성한 『한국신문만화사 1909-1995』도 출간하였다.

정의
4칸 시사만화 「까투리여사」를 그리다 필화사건에 휘말린 만화가.
인적사항

1939년 9월 2일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태어났다.

주요 활동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군경 공비토벌대에 끌려가 전쟁 포스터와 전단 등을 그렸다. 이후 건국대학교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만화가에 도전하였다. 그의 첫 작품은 1959년 5월 31일 자 『동아일보』 독자만화란에 투고한 「붕어낚시」로 확인된다.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동아일보』 독자만화란에 도전하였다. 1960년 단행본 『배뚱이와 마른 꽁이』를 출간하였고, 1961년부터 7년 동안 「엉털즈」를 『소설계』에 연재하였다. 1963년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재학 중이던 건국대학교에서 '제1회 윤영옥만화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윤영옥은 1965년 3월 15일부터 『전남매일신문』에 「메뚜기」[1965. 3. 15.~1980. 11. 29, 4844회]를 연재하며 시사만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외에 「전남만평」[1966. 3.~1977. 7.]도 연재하였으며, 주요 연재처였던 『서울신문』에는 「엉뚱이」[1967. 3. 3.~1967. 8. 24.], 「까투리여사」[1967. 8. 25.~1972. 6. 19, 1,488회. 1977. 7. 25.~1994. 8. 31, 6,773회], 「주간만평」[1977. 9.~1981.12.]을 연재하였다. 지방지인 『광주(光州)』에도 「오똑이」[1980. 12. 1.~1981. 12. 30, 326회]를 연재하였다.

시사만화가를 그만둔 이후에는 공주대학교와 목원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995년 3월 발족한 시사만화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2007년 3월 7일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사상과 작품

윤영옥이 본격적인 시사만화가로 이름을 알린 작품은 「까투리여사」이다. 1967년 8월부터 『서울신문』에 연재한 4칸의 신문 만화로, 30대 전후의 현대적인 여성 캐릭터 까투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의 대표작이다. 까투리여사는 내성적이고 허약한 남편과는 반대로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사회 현실을 풍자하고 민심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는 당찬 여성으로 표현되었다. 연재 초기에는 다른 시사만화들과 달리 생활 주변의 크고 작은 사건을 다룬 가정 코믹스였으나, 1972년 4월에 신문사의 편집 방향이 바뀌면서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각종 문제나 사건, 정부 시책 등을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성격으로 변화하였다.

「까투리여사」는 1972년 6월 19일까지 총 1,488회를 연재하다가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을 비방한 만화로 찍혀 필화사건에 휘말렸다. 윤영옥은 권고사직을 당하여 그해 6월 30일 자로 퇴사하였으며, 「까투리여사」의 연재도 중단되었다. 필화사건의 계기가 된 「까투리여사」 1,488회는 정부 권장으로 비닐하우스 작물을 재배한 농민들이 과잉 생산과 판로 부진으로 애를 먹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내용이다. 군부 정권의 검열과 폭압으로 고초를 겪던 당시 시사만화가들의 상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윤영옥의 복직과 「까투리여사」 재연재는 1977년 7월 25일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까투리여사」는 이후 1994년 8월 31일까지 연재되었다.

학문과 저술

윤영옥은 한국 신문 만화사를 정리한 만화사가(漫畵史家)로도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한국신문만화사 1909~1995』는 1909년 『대한민보』의 삽화에서부터 1995년까지 각종 신문에 게재된 만화를 집대성한 연구서로, 한국 시사만화사를 집약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독보적인 작업물이다. 1981년부터 자료 수집에 나서 1986년 초판이 발행되었으며, 이후 1995년까지 증보판을 간행하며 가필과 수정을 계속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주요 일간지와 지방지를 망라하여 게재된 만화의 종류, 게재 기간, 게재 지면, 게재 작가의 활동 사항 및 연보, 특이 사항 등을 정리하였다. 자료가 방대하고 정밀하여 한국 만화사 연구에 큰 기틀을 마련한 저술로, 후속 연구자들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밖의 저술로는 자전적 수필집인 『4컷 속에 인생을 담고』[진솔출판사,1991]가 있다.

상훈과 추모

2006년 고바우만화상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윤영옥, 『한국신문만화사 1909~1995』(열화당, 1995)
윤영옥, 『4컷 속에 인생을 담고』(진솔출판사, 1991)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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