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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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의 정변은 고려 전기 목종 때 강조가 일으킨 정변이다. 강조가 1009년(목종 12) 목종을 폐위시킨 뒤 살해하고 대량원군(大良院君), 즉 현종을 옹립한 사건이다. 강조는 목종을 폐하여 '양국공(讓國公)'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목종을 지키게 하는 한편, 김치양(金致陽)과 그의 아들 및 참소를 일삼던 유행간 등 7인을 잡아 베고 그 여당(餘黨)과 천추태후(千秋太后)의 친속(親屬) 30여 인을 섬으로 귀양 보냈다.
강조의 정변 (康兆의 政變)
강조의 정변은 고려 전기 목종 때 강조가 일으킨 정변이다. 강조가 1009년(목종 12) 목종을 폐위시킨 뒤 살해하고 대량원군(大良院君), 즉 현종을 옹립한 사건이다. 강조는 목종을 폐하여 '양국공(讓國公)'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목종을 지키게 하는 한편, 김치양(金致陽)과 그의 아들 및 참소를 일삼던 유행간 등 7인을 잡아 베고 그 여당(餘黨)과 천추태후(千秋太后)의 친속(親屬) 30여 인을 섬으로 귀양 보냈다.
강감찬은 서북면행영도통사, 상원수대장군,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고려시대 전기의 문신이다. 948년(정종 3)에 태어나 1031년(현종 22)에 사망했다. 1010년(현종 1) 요(遼)나라가 서경을 침공하자 일시 후퇴할 것을 주장했고, 1018년(현종 9) 요나라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상원수대장군으로서 귀주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귀주대첩이라 불리는 이 큰 승리 이후 요나라와 평화적인 외교관계가 형성된다. 고려의 국방을 튼튼히 하고 외교 관계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강감찬 (姜邯贊)
강감찬은 서북면행영도통사, 상원수대장군,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고려시대 전기의 문신이다. 948년(정종 3)에 태어나 1031년(현종 22)에 사망했다. 1010년(현종 1) 요(遼)나라가 서경을 침공하자 일시 후퇴할 것을 주장했고, 1018년(현종 9) 요나라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상원수대장군으로서 귀주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귀주대첩이라 불리는 이 큰 승리 이후 요나라와 평화적인 외교관계가 형성된다. 고려의 국방을 튼튼히 하고 외교 관계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고려전기 형부낭중, 도순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
양규 (楊規)
고려전기 형부낭중, 도순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
김치양은 고려 전기 목종대에 반란을 일으킨 권신(權臣)이다. 승려 행세를 하면서 천추궁(千秋宮)에 출입하며 천추태후와 추문을 일으켰는데, 성종이 즉위하면서 유배되었다가, 목종이 즉위하면서 천추태후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관료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서경 세력에 속한 그는 목종대 종교와 신앙을 바탕으로 통치하려고 하였으며,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죽임을 당하였다.
김치양 (金致陽)
김치양은 고려 전기 목종대에 반란을 일으킨 권신(權臣)이다. 승려 행세를 하면서 천추궁(千秋宮)에 출입하며 천추태후와 추문을 일으켰는데, 성종이 즉위하면서 유배되었다가, 목종이 즉위하면서 천추태후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관료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서경 세력에 속한 그는 목종대 종교와 신앙을 바탕으로 통치하려고 하였으며,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죽임을 당하였다.
목종은 고려 전기 고려의 제7대 왕이다. 17세에 즉위하여 전시과(田柴科)를 개정하였다. 또한 과거시행법을 정비하였으며, 서경(西京)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천추태후(天秋太后)와 김치양(金致陽)의 영향력을 제어하지 못하였다. 김치양의 난으로 대량원군(大良院君)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강조(康兆)에게 입위를 명령하였지만, 오히려 강조에게 시해되었다.
목종 (穆宗)
목종은 고려 전기 고려의 제7대 왕이다. 17세에 즉위하여 전시과(田柴科)를 개정하였다. 또한 과거시행법을 정비하였으며, 서경(西京)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천추태후(天秋太后)와 김치양(金致陽)의 영향력을 제어하지 못하였다. 김치양의 난으로 대량원군(大良院君)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강조(康兆)에게 입위를 명령하였지만, 오히려 강조에게 시해되었다.
통주전투는 1010년(현종 1) 통주에서 벌어진 고려와 거란의 전투이다. 거란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하였는데, 흥화진에서 공격이 실패하자 통주로 군사를 옮겨 왔다. 이 전투는 통주성 밖에서 이루어진 삼수채전투와 성안에서 이루어진 통주성전투로 구분되는데, 11월 25일부터 12월 초까지 전개되었다. 삼수채전투에서는 고려 강조가 초반 우세로 자만한 틈을 타 기습한 거란에 패배하였으나, 통주성에서 거란군을 막아내 고려가 승리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강조의 패배 이후 개경까지 공격한 거란군의 후방 통로가 차단되었다.
통주전투 (通州戰鬪)
통주전투는 1010년(현종 1) 통주에서 벌어진 고려와 거란의 전투이다. 거란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하였는데, 흥화진에서 공격이 실패하자 통주로 군사를 옮겨 왔다. 이 전투는 통주성 밖에서 이루어진 삼수채전투와 성안에서 이루어진 통주성전투로 구분되는데, 11월 25일부터 12월 초까지 전개되었다. 삼수채전투에서는 고려 강조가 초반 우세로 자만한 틈을 타 기습한 거란에 패배하였으나, 통주성에서 거란군을 막아내 고려가 승리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강조의 패배 이후 개경까지 공격한 거란군의 후방 통로가 차단되었다.
고려전기 어사중승, 우간의대부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탁사정 (卓思政)
고려전기 어사중승, 우간의대부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전기 중대부사, 이부시랑, 행영부통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이현운 (李鉉雲)
고려전기 중대부사, 이부시랑, 행영부통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 전기에, 상서우복야, 참지정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위 (文仁渭)
고려 전기에, 상서우복야, 참지정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고려전기 제7대 목종의 첫 번째 능. 왕릉.
공릉 (恭陵)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고려전기 제7대 목종의 첫 번째 능. 왕릉.
고려 전기에, 중추부사 상호군, 삼사사, 호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노전 (盧戩)
고려 전기에, 중추부사 상호군, 삼사사, 호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 강조의 정변 당시에, 강조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왕으로 옹립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이후 거란의 침입에도 끝까지 현종을 호종한 문신.
김응인 (金應仁)
고려 전기 강조의 정변 당시에, 강조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왕으로 옹립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이후 거란의 침입에도 끝까지 현종을 호종한 문신.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내사시랑평장사, 문하시랑 등을 역임한 문신.
진적 (陳頔)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내사시랑평장사, 문하시랑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전기 어사중승, 행영도병마부사, 예빈경 등을 역임한 관리.
노정 (盧頲)
고려전기 어사중승, 행영도병마부사, 예빈경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 전기에, 사재승 등을 역임하였으며, 거란의 제2차 고려 침략 때 전사한 문신.
서숭 (徐崧)
고려 전기에, 사재승 등을 역임하였으며, 거란의 제2차 고려 침략 때 전사한 문신.
고려전기 좌우기군장군, 병부시랑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김계부 (金繼夫)
고려전기 좌우기군장군, 병부시랑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현종은 고려 전기 제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09~1031년이며, 승려로 숭교사와 신혈사에 있다가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5도양계체제라는 군현제의 기본 골격을 완성하여, 호족세력에 의해 형성된 정치체제를 청산하고 왕권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하였다. 거란의 2차, 3차 침입을 물리치고 강력한 북진정책을 실천하여 북방민족에 대해 자주적인 입장을 확립하였다. 부처의 힘으로 외침을 방어하고자 제작한 6천여 권의 대장경은 큰 문화적 업적이다. 고려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현종 (顯宗)
현종은 고려 전기 제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09~1031년이며, 승려로 숭교사와 신혈사에 있다가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5도양계체제라는 군현제의 기본 골격을 완성하여, 호족세력에 의해 형성된 정치체제를 청산하고 왕권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하였다. 거란의 2차, 3차 침입을 물리치고 강력한 북진정책을 실천하여 북방민족에 대해 자주적인 입장을 확립하였다. 부처의 힘으로 외침을 방어하고자 제작한 6천여 권의 대장경은 큰 문화적 업적이다. 고려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