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개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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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고종 21) 급진개화파가 청나라의 내정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외교권 확보와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1884년 12월 4일(양력)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급진개화파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었으나, 청나라의 군사 개입과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3일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갑신정변 (甲申政變)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고종 21) 급진개화파가 청나라의 내정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외교권 확보와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1884년 12월 4일(양력)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급진개화파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었으나, 청나라의 군사 개입과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3일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개항기 때, 『경위합벽』, 『손무자주』, 『동문자모분해』 등을 저술한 시인·개화사상가.
강위 (姜瑋)
개항기 때, 『경위합벽』, 『손무자주』, 『동문자모분해』 등을 저술한 시인·개화사상가.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개화당 (開化黨)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김홍집은 개항기 당상경리사, 독판교섭통상사무, 좌의정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정치인이다. 1842년(헌종 8)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7년 벼슬을 시작해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인천 개항 등의 현안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이때 가져온 『조선책략』은 개항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개항기에 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고, 온건개화파로서 갑오개혁 등 개화정책을 적극 펼쳤다. 아관파천으로 친러정권이 수립된 후 친일 대신으로 지목되어 광화문에서 군중들에게 타살되었다.
김홍집 (金弘集)
김홍집은 개항기 당상경리사, 독판교섭통상사무, 좌의정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정치인이다. 1842년(헌종 8)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7년 벼슬을 시작해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인천 개항 등의 현안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이때 가져온 『조선책략』은 개항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개항기에 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고, 온건개화파로서 갑오개혁 등 개화정책을 적극 펼쳤다. 아관파천으로 친러정권이 수립된 후 친일 대신으로 지목되어 광화문에서 군중들에게 타살되었다.
1894년 7월 27일부터 12월 17일까지 144일간 군국기무처에서 의결, 채택된사항을 수록한 정책서. 관문서·의안.
군국기무처의안 (軍國機務處議案)
1894년 7월 27일부터 12월 17일까지 144일간 군국기무처에서 의결, 채택된사항을 수록한 정책서. 관문서·의안.
어윤중은 개항기 조사시찰단 조사, 동래암행어사, 탁지부대신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48년(헌종 14)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8년 칠석제에 장원급제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청나라에 파견되었고, 초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893년 교조신원을 요구하는 동학교도를 ‘민당(民黨)’이라고 지칭하는 등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아관파천으로 갑오경장 내각이 붕괴한 후 국외로 망명하지 않고 보은으로 피신하였다가 향반 무리의 기습으로 피살되었다.
어윤중 (魚允中)
어윤중은 개항기 조사시찰단 조사, 동래암행어사, 탁지부대신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48년(헌종 14)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8년 칠석제에 장원급제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청나라에 파견되었고, 초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893년 교조신원을 요구하는 동학교도를 ‘민당(民黨)’이라고 지칭하는 등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아관파천으로 갑오경장 내각이 붕괴한 후 국외로 망명하지 않고 보은으로 피신하였다가 향반 무리의 기습으로 피살되었다.
개항기 때, 경리통문기무아문사, 판의금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윤자덕 (尹滋悳)
개항기 때, 경리통문기무아문사, 판의금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강화도조약 문정관으로 『삼한방비록』, 『천죽재차록』, 『양요기록』 등을 저술한 역관. 서화가, 금석학자.
오경석 (吳慶錫)
개항기 강화도조약 문정관으로 『삼한방비록』, 『천죽재차록』, 『양요기록』 등을 저술한 역관. 서화가, 금석학자.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신·정치인 윤치호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 년간에 걸쳐 작성한 일기.
윤치호 일기 (尹致昊 日記)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신·정치인 윤치호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 년간에 걸쳐 작성한 일기.
대한제국기 경무사, 군부대신, 독립협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안경수 (安駉壽)
대한제국기 경무사, 군부대신, 독립협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대한제국기 법부 법률기초위원, 궁내부 회계과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유치형 (兪致衡)
대한제국기 법부 법률기초위원, 궁내부 회계과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1883∼1884년간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과 유럽국가에 파견된 외교사절단.
보빙사절단 (報聘使節團)
1883∼1884년간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과 유럽국가에 파견된 외교사절단.
개항기 때, 협판교섭통상사무, 병조참판, 우정국총판 등을 역임한 문신.
홍영식 (洪英植)
개항기 때, 협판교섭통상사무, 병조참판, 우정국총판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