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연"
검색결과 총 48건
한국방송공사가 매년 여름 여의도 KBS홀에서 국악을 체계적으로 보존·계승·발전시켜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개최하는 경연대회. 국악경연대회.
KBS국악대경연 (KBS國樂大競演)
한국방송공사가 매년 여름 여의도 KBS홀에서 국악을 체계적으로 보존·계승·발전시켜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개최하는 경연대회. 국악경연대회.
조선시대 경연관들이 경연에 참석하기 위하여 대기하던 관서.
경연청 (經筵廳)
조선시대 경연관들이 경연에 참석하기 위하여 대기하던 관서.
조선시대 경연청(經筵廳)에 소속된 종2품의 관직.
동지경연사 (同知經筵事)
조선시대 경연청(經筵廳)에 소속된 종2품의 관직.
조선후기 문신 이희조가 조선시대 다섯 명현이 경연에서 아뢴 말을 모아 1719년에 왕에게 올린 역사서. 경연록.
속경연고사 (續經筵故事)
조선후기 문신 이희조가 조선시대 다섯 명현이 경연에서 아뢴 말을 모아 1719년에 왕에게 올린 역사서. 경연록.
송나라의 주희가 영종에게 진강(進講)한 『대학』의 내용을 수록한 유학서.
주자경연강의 (朱子經筵講義)
송나라의 주희가 영종에게 진강(進講)한 『대학』의 내용을 수록한 유학서.
매년 가을 전통민속예술을 발굴하고 보존·전승하기 위하여 개최하는 경연대회. 경연대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全國民俗藝術競演大會)
매년 가을 전통민속예술을 발굴하고 보존·전승하기 위하여 개최하는 경연대회. 경연대회.
개천예술제는 1949년 진주에서 시작한 순수 예술 경연 축제로, 현재는 진주 지역의 시민들이 함께하는 종합 예술 축제이다. 축제 초기에는 전국적인 신인 예술인 등용문으로 주목받아 예술 경연장으로 위상이 높았다. 하지만 이후 예술인 신인 발굴 환경이 서울 중심으로 옮겨 가게 되면서 전국적 명성을 잃어 감에 따라 진주시는 개천 예술 재단을 설립하여 새로운 축제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였다. 현재 개천예술제는 시민과 함께하는 축제를 목표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예술을 창작하고 만들어 가는 종합 예술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개천예술제 (開天藝術祭)
개천예술제는 1949년 진주에서 시작한 순수 예술 경연 축제로, 현재는 진주 지역의 시민들이 함께하는 종합 예술 축제이다. 축제 초기에는 전국적인 신인 예술인 등용문으로 주목받아 예술 경연장으로 위상이 높았다. 하지만 이후 예술인 신인 발굴 환경이 서울 중심으로 옮겨 가게 되면서 전국적 명성을 잃어 감에 따라 진주시는 개천 예술 재단을 설립하여 새로운 축제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였다. 현재 개천예술제는 시민과 함께하는 축제를 목표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예술을 창작하고 만들어 가는 종합 예술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1836년(헌종 2) 최한기(崔漢綺)가 사전(史傳)의 경연제설(經筵諸說) 중에서 군주와 신하가 할 일을 뽑아서 만든 책.
강관론 (講官論)
1836년(헌종 2) 최한기(崔漢綺)가 사전(史傳)의 경연제설(經筵諸說) 중에서 군주와 신하가 할 일을 뽑아서 만든 책.
조선 전기에, 『경재유고』, 『경연강독록』 등을 저술한 문신.
경세인 (慶世仁)
조선 전기에, 『경재유고』, 『경연강독록』 등을 저술한 문신.
법강(法講)은 경연과 서연의 정규 강의를 말한다. 경연은 국왕이 신하들과 함께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강론함으로써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하고, 서연은 세자가 유교적인 소양을 쌓도록 하여 차기 국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제도이다. 법강은 하루 세 차례 조강(朝講)·주강(晝講)·석강(夕講)을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법강 (法講)
법강(法講)은 경연과 서연의 정규 강의를 말한다. 경연은 국왕이 신하들과 함께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강론함으로써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하고, 서연은 세자가 유교적인 소양을 쌓도록 하여 차기 국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제도이다. 법강은 하루 세 차례 조강(朝講)·주강(晝講)·석강(夕講)을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수찬 (副修撰)
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수찬은 조선시대에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정6품의 관직이다. 경연, 실록 편찬, 왕명 제작 등에 참여하였으며, 왕명을 전달하는 등 시종신으로서도 활동하였다. 성종 대에는 경차관으로 차정되거나 부정 적발을 위해 지방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어가며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수찬 (修撰)
수찬은 조선시대에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정6품의 관직이다. 경연, 실록 편찬, 왕명 제작 등에 참여하였으며, 왕명을 전달하는 등 시종신으로서도 활동하였다. 성종 대에는 경차관으로 차정되거나 부정 적발을 위해 지방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어가며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응교 (副應敎)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1935년 민족항일기 말에 설립되었던 신파극단.
예원좌 (藝苑座)
1935년 민족항일기 말에 설립되었던 신파극단.
시강관(侍講官)은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이다. 경연에서 진강(進講)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시강관은 태조 대에 강독관(講讀官) 4명에 속하였으며, 정종 대에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하였다. 세종 대에는 집현전 부제학이 겸직하였고, 성종 대에는 홍문관 관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는 규장각 설치 후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시강관 (侍講官)
시강관(侍講官)은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이다. 경연에서 진강(進講)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시강관은 태조 대에 강독관(講讀官) 4명에 속하였으며, 정종 대에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하였다. 세종 대에는 집현전 부제학이 겸직하였고, 성종 대에는 홍문관 관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는 규장각 설치 후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사경(司經)은 조선시대, 다른 관사의 관원이 겸임하는 경연의 정7품 관직이다. 성종 때에 홍문관을 설치하고 여기에 소속된 정7품 박사 1인을 경연의 사경으로 임명한 것이 그 유래이다. 홍문관 박사가 본직이고, 경연의 사경은 당연 겸직이다. 『경국대전』의 제도가 큰 변동없이 조선 말까지 이어지다가, 고종 대에 관제 개편 과정에서 혁파되었다.
사경 (司經)
사경(司經)은 조선시대, 다른 관사의 관원이 겸임하는 경연의 정7품 관직이다. 성종 때에 홍문관을 설치하고 여기에 소속된 정7품 박사 1인을 경연의 사경으로 임명한 것이 그 유래이다. 홍문관 박사가 본직이고, 경연의 사경은 당연 겸직이다. 『경국대전』의 제도가 큰 변동없이 조선 말까지 이어지다가, 고종 대에 관제 개편 과정에서 혁파되었다.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8품 관직.
설경 (說經)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8품 관직.
이언적은 조선전기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91년(성종 22)에 태어나 1553년(명종 8)에 사망했다.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7년간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복직 후 좌찬성에 이르렀으나 을사사화가 발생하여 추국하는 역할이 주어지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양재역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유배됐고 유배지에서 많은 저술을 남긴 후 세상을 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주희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에게 전해준 인물이다.
이언적 (李彦迪)
이언적은 조선전기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91년(성종 22)에 태어나 1553년(명종 8)에 사망했다.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7년간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복직 후 좌찬성에 이르렀으나 을사사화가 발생하여 추국하는 역할이 주어지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양재역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유배됐고 유배지에서 많은 저술을 남긴 후 세상을 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주희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에게 전해준 인물이다.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9품 관직.
전경 (典經)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9품 관직.
남도국악의 보존과 전승 및 창달을 위해 설립한 전라남도 소속의 도립 국악연주단체.
전남도립국악단 (全南道立國樂團)
남도국악의 보존과 전승 및 창달을 위해 설립한 전라남도 소속의 도립 국악연주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