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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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왕후(仁元王后)는 조선시대,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이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3대손이며,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과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딸이다. 1702년 16세에 숙종의 세 번째 간택 왕비가 되었다. 소생은 없었고 연잉군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세제(世弟)가 된 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71세에 사망하였다.
인원왕후 (仁元王后)
인원왕후(仁元王后)는 조선시대,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이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3대손이며,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과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딸이다. 1702년 16세에 숙종의 세 번째 간택 왕비가 되었다. 소생은 없었고 연잉군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세제(世弟)가 된 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71세에 사망하였다.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최승로 (崔承老)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고려전기 제4대 광종의 왕비.
대목왕후 (大穆王后)
고려전기 제4대 광종의 왕비.
조선후기 제20대 경종의 왕비.
선의왕후 (宣懿王后)
조선후기 제20대 경종의 왕비.
영조실록은 1778년(정조 2)에서 1781년(정조 5) 사이에 편찬한, 영조 재위 52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127권 83책의 활자본이다. 1889년(고종 26)에 ‘영종’의 묘호(廟號)를 ‘영조’로 추존했기 때문에 ‘영조실록’이라 통칭하고 있다.
영조실록 (英祖實錄)
영조실록은 1778년(정조 2)에서 1781년(정조 5) 사이에 편찬한, 영조 재위 52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127권 83책의 활자본이다. 1889년(고종 26)에 ‘영종’의 묘호(廟號)를 ‘영조’로 추존했기 때문에 ‘영조실록’이라 통칭하고 있다.
고려전기 청주사람 배총규, 계천사람 강길 등과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임춘길 (林春吉)
고려전기 청주사람 배총규, 계천사람 강길 등과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는 고대의 정토 관련 개론서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불교전서』 1권에는 원효(元曉, 617~686)의 저술로 수록되어 있지만, 현재는 원효에 가탁한 후대의 찬술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원효의 『무량수경종요』와 취지를 같이 하는 부분도 있지만, 『대보적경발승지락회』, 『불공견삭신변진언경』 등 원효 사후의 문헌도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한 범부의 서방왕생과 광명진언(光明眞言)을 강조하고 있어 『안양집』(1070년경), 『안양초』 등 일본 정토교 교본에 자주 인용되었다.
유심안락도 (遊心安樂道)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는 고대의 정토 관련 개론서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불교전서』 1권에는 원효(元曉, 617~686)의 저술로 수록되어 있지만, 현재는 원효에 가탁한 후대의 찬술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원효의 『무량수경종요』와 취지를 같이 하는 부분도 있지만, 『대보적경발승지락회』, 『불공견삭신변진언경』 등 원효 사후의 문헌도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한 범부의 서방왕생과 광명진언(光明眞言)을 강조하고 있어 『안양집』(1070년경), 『안양초』 등 일본 정토교 교본에 자주 인용되었다.
1689년(숙종 15) 1월 숙종이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호칭을 정하자, 송시열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비판한 사건.
원자정호 (元子定號)
1689년(숙종 15) 1월 숙종이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호칭을 정하자, 송시열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비판한 사건.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영평현감,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현 (李𥙆)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영평현감,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문신 이문정이 4년 2개월 동안 재위한 경종연간의 역사를 들은 대로 기록한 역사서.
수문록 (隨聞錄)
조선후기 문신 이문정이 4년 2개월 동안 재위한 경종연간의 역사를 들은 대로 기록한 역사서.
977년(경종 2) 개국공신과 귀순한 성주(城主) 등에게 지급한 토지.
훈전 (勳田)
977년(경종 2) 개국공신과 귀순한 성주(城主) 등에게 지급한 토지.
『경종수정실록』은 영조 초에 편찬된 『경종실록』을 정조 때 수정하여 편찬한 실록이다. 모두 5권 3책으로 원실록의 1/3 분량에 해당한다. 1778년(정조 2)에 편찬을 시작하여 1781년 7월에 완성, 간행하였다. 『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은 왕세제 건저(建儲)와 청정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이지만, 두 실록 모두 신임사화가 무옥(誣獄)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경종수정실록』은 역사 기록에 반영된 탕평(蕩平)의 흔적을 보여준다.
경종수정실록 (景宗修正實錄)
『경종수정실록』은 영조 초에 편찬된 『경종실록』을 정조 때 수정하여 편찬한 실록이다. 모두 5권 3책으로 원실록의 1/3 분량에 해당한다. 1778년(정조 2)에 편찬을 시작하여 1781년 7월에 완성, 간행하였다. 『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은 왕세제 건저(建儲)와 청정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이지만, 두 실록 모두 신임사화가 무옥(誣獄)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경종수정실록』은 역사 기록에 반영된 탕평(蕩平)의 흔적을 보여준다.
해방 이후 초대 공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반공연맹 이사장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
김정렬 (金貞烈)
해방 이후 초대 공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반공연맹 이사장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
의릉(懿陵)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제20대 경종과 선의왕후 어씨의 동원상하릉이다. 1724년에 경종의 능침을 조성하고, 1730년에 경종과 같은 언덕에 약 80자 정도 아래에 선의왕후의 능침을 마련하여 상하로 배치된 두 개의 봉분이 완성되었다. 1962년에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가 의릉 경내에 자리 잡으면서 의릉의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정원으로 활용하였으나, 1995년 중앙정보부가 이전하고 능역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의릉 (懿陵)
의릉(懿陵)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제20대 경종과 선의왕후 어씨의 동원상하릉이다. 1724년에 경종의 능침을 조성하고, 1730년에 경종과 같은 언덕에 약 80자 정도 아래에 선의왕후의 능침을 마련하여 상하로 배치된 두 개의 봉분이 완성되었다. 1962년에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가 의릉 경내에 자리 잡으면서 의릉의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정원으로 활용하였으나, 1995년 중앙정보부가 이전하고 능역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원효가 『반야바라밀다심경』을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반야심경소 (般若心經疏)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원효가 『반야바라밀다심경』을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5왕비.
대명궁부인 (大明宮夫人)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5왕비.
조선 중기에, 제주목사,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민기 (閔機)
조선 중기에, 제주목사,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전기 공관어사 지도성사, 시중, 태사개국광익공 등을 역임한 문신.
박양유 (朴良柔)
고려전기 공관어사 지도성사, 시중, 태사개국광익공 등을 역임한 문신.
건저대리는 1721년(경종 1)에 노론 일파가 연잉군을 세제로 추대하고, 대리청정권을 주고자 주동한 일련의 정치적 사건이다. 희빈 장씨가 사사되자,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인 세자(경종)가 즉위한 후를 염려한 노론은 연잉군(영조)을 세제(世弟)로 추대하였다. 아들이 없던 경종은 1721년(경종 1) 8월 세제를 책봉하였다. 10월에 노론은 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하였다. 경종은 대리청정을 허락했다가 3일 만에 환수하였다. 왕세자를 세우는 건저와 대리청정으로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이후 소론에 의한 신임옥사가 일어나 노론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건저대리 (建儲代理)
건저대리는 1721년(경종 1)에 노론 일파가 연잉군을 세제로 추대하고, 대리청정권을 주고자 주동한 일련의 정치적 사건이다. 희빈 장씨가 사사되자,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인 세자(경종)가 즉위한 후를 염려한 노론은 연잉군(영조)을 세제(世弟)로 추대하였다. 아들이 없던 경종은 1721년(경종 1) 8월 세제를 책봉하였다. 10월에 노론은 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하였다. 경종은 대리청정을 허락했다가 3일 만에 환수하였다. 왕세자를 세우는 건저와 대리청정으로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이후 소론에 의한 신임옥사가 일어나 노론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영릉은 고려 전기 제5대 왕 경종과 왕비 헌숙왕후 김 씨가 묻힌 왕릉이다. 경종이 981년 승하하여 경기 남쪽 영릉에 묻혔고, 이후 헌숙왕후 김 씨의 사후에 합장되었다. 능제는 고려 전기의 전형적인 4단이고, 봉분 주위에 12각 난간석을 둘렀으며 병풍석, 우석 및 면석이 있다. 석사자로 추정되는 석수 3기가 있다. 입체감이 있는 문인석 1쌍은 양관을 쓰고 두 손에 홀을 들고 있는데,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조각 솜씨를 보인다. 능 아래쪽에서 비석을 받쳤던 거북 받침돌이 발견되었고, 1867년(고종 4)에 세운 표석이 있다.
영릉 (榮陵)
영릉은 고려 전기 제5대 왕 경종과 왕비 헌숙왕후 김 씨가 묻힌 왕릉이다. 경종이 981년 승하하여 경기 남쪽 영릉에 묻혔고, 이후 헌숙왕후 김 씨의 사후에 합장되었다. 능제는 고려 전기의 전형적인 4단이고, 봉분 주위에 12각 난간석을 둘렀으며 병풍석, 우석 및 면석이 있다. 석사자로 추정되는 석수 3기가 있다. 입체감이 있는 문인석 1쌍은 양관을 쓰고 두 손에 홀을 들고 있는데,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조각 솜씨를 보인다. 능 아래쪽에서 비석을 받쳤던 거북 받침돌이 발견되었고, 1867년(고종 4)에 세운 표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