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4년 8월부터 1776년 3월까지 영조의 재위 51년 8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127권 83책. 활자본. 정식 이름은 ‘영종대왕실록(英宗大王實錄)’이다. 1889년(고종 26)에 ‘영종(英宗)’의 묘호(廟號)를 ‘영조(英祖)’로 추존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추존한 묘호에 따라 ‘영조실록’이라 통칭하고 있다.
영조가 죽은 2년 뒤인 1778년(정조 2) 2월에 실록청(實錄廳)을 설치하고 편찬에 착수하였다. 원래 관례대로라면, 정조가 즉위한 뒤 선왕(先王)인 영조 시대의 실록을 졸곡을 마친 즉시 편찬하여야 했다. 실제로 정조 즉위 년에도 졸곡제가 거행되었던 8월 9일 이전에 이미 춘추관에서 실록 편찬을 위해 관청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런데도 실록 편찬의 시작이 늦어진 것은 『명의록(明義錄)』 편찬 때문이었다.
정조는 자신이 왕세손으로 있을 때부터 지지 세력이었던 서명선(徐命善), 홍국영(洪國榮), 정민시(鄭民始), 김종수(金鍾秀)를 중심으로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그 기본 방향은 ‘사림의 정치 이념을 지향하고, 척리를 배척한다[右賢左戚]’는 말로 나타났다. 이런 이념의 현실화이기도 했던 권력 재편 과정에서 정조는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홍인한(洪麟漢), 정후겸(鄭厚謙)을 사사(賜死)하는 등 외척 풍산 홍씨와 경주 김씨를 정계에서 축출하였다. 『명의록』은 이런 정조 즉위 초반의 정치 상황을 기록한 책이었다.
충역(忠逆)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황경원(黃景源)의 상소를 계기로, 정조는 실록 편찬도 뒤로 미루고 『명의록』 찬집청을 설치하였다. 이 책은 이듬해인 정조 원년 3월에 완성되었다. 이후 홍인한의 잔여 세력은 홍상범(洪相範) 등이 정조를 살해하려는 ‘자객사(刺客事)’ 등 삼대 역모 사건(三大逆謀事件)을 일으키며 반발하였고, 이 사건을 정리하여 『속명의록』을 편찬하였는데, 이는 이듬해 정조 2년 2월에 완성되었다.
곧 실록청을 설치하였는데, 응행사목(應行事目) 등은 관례에 따랐다. 사목 중 ⑧항인 태만한 관원의 처벌에 대한 조항이 빠졌지만, 실제로는 같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응행사목이 마련된 뒤에도 몇 가지 사안이 발생하여 실록 편찬은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하나는 앞서 살펴본 대로 『속명의록』 편찬으로 이어진 홍상범 등의 반역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경종실록』의 수정 논의였다. 『경종실록』의 수정 논의는 실록청 도청 당상에 임명되었던 이휘지(李徽之)가 노론 4대신 중 이건명(李健命)이 종부(從父)이므로 공정한 역사 편찬이 어렵다며 사의를 표명한 데서 확인된다. 우여곡절 끝에 편찬된 『영조실록』은 시작된 지 3년 6개월 만인 1781년 7월에 완성되어, 사고(史庫)에 보관하였다.
실록에 수록될 재위 기간이 길었고, 편찬 과정에서 다른 편찬 사업과 연계되어, 『영조실록』은 참여한 관원이 많았다. 실록청 총재관(摠裁官)만 해도 김상철(金尙喆) · 서명선(徐命善) · 이은(李溵) · 이휘지(李徽之) · 정존겸(鄭存謙)이 역임했고, 도청 당상은 이휘지 · 서명응(徐命膺) · 황경원(黃景源) · 이복원(李福源) · 채제공(蔡濟恭) · 조준(趙埈) · 김종수(金鍾秀) · 유언호(兪彦鎬) 등이, 각방 당상은 정민시(鄭民始) · 홍낙명(洪樂命) · 서호수(徐浩修) · 오재순(吳載純) 등이 맡았다. 도청 낭청은 박종래(朴宗來) 등 19명, 각방 낭청은 윤행수(尹行修) 등 58명, 등록 낭청은 오태현(吳泰賢) 등 37인, 분판 낭청은 정익조(鄭益祚) 등 30명이었다.
이 실록은 조선 왕조 역대 왕 중 가장 오래 재위한 영조가 즉위하여 죽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51년 8개월간에 있었던 정치 · 외교 · 국방 · 경제 · 사회 · 문화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이 연월일순에 따라 편년체로 서술되어 있다. 특히, 이 시기는 탕평책(蕩平策)의 실시로 왕권이 안정되고 균역법 등의 새로운 제도가 실시된 때였다. 또한 국방의 충실을 기하는 한편,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고 문예도 활기를 띠는 등 조선 왕조의 중흥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인좌(李麟佐)의 반란이 일어나고, 왕세자인 사도 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는 등, 정치적 격랑기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영조대의 사실(史實)은 물론이고 조선 후기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 근본적인 자료이다.
1930년대 이후 조선 역대 왕(태조∼철종)의 실록이 여러 차례 영인되었는데, 당시 이 실록도 다른 왕의 실록과 함께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영조실록』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국역하였고, 원문 이미지, 표점 원문을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