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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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소과의 하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고려 때에는 과거에 합격한 이를 '진사'라 칭하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문과를 별도로 두고,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이를 '생원', '진사'라 하고 이들에게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더욱이 조선 전기에는 신유학의 학풍을 따라 경학을 중시하여 진사시가 일시적으로 폐지되기도 하였다. 진사는 문과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음관이 될 수 있는 후보군이었다. 또한 지방의 엘리트 사족으로서 지방민 교화, 여론 형성 등 사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진사 (進士)
조선시대 소과의 하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고려 때에는 과거에 합격한 이를 '진사'라 칭하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문과를 별도로 두고,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이를 '생원', '진사'라 하고 이들에게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더욱이 조선 전기에는 신유학의 학풍을 따라 경학을 중시하여 진사시가 일시적으로 폐지되기도 하였다. 진사는 문과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음관이 될 수 있는 후보군이었다. 또한 지방의 엘리트 사족으로서 지방민 교화, 여론 형성 등 사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제두는 조선 후기 『학변』, 『존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49년(인조 27)에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에 사망하였다.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 추곡(楸谷)이다. 정제두는 조선에 전래된 양명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전개하였다. 당시의 도학은 양명학을 이단으로 배척했으나, 정제두는 양명학을 체계화하여 양명학파를 확립하였다. 그의 『학변(學辨)』, 『존언(存言)』은 양명학의 치양지설과 지행합일설을 받아들여 저술한 것이다.
정제두 (鄭齊斗)
정제두는 조선 후기 『학변』, 『존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49년(인조 27)에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에 사망하였다.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 추곡(楸谷)이다. 정제두는 조선에 전래된 양명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전개하였다. 당시의 도학은 양명학을 이단으로 배척했으나, 정제두는 양명학을 체계화하여 양명학파를 확립하였다. 그의 『학변(學辨)』, 『존언(存言)』은 양명학의 치양지설과 지행합일설을 받아들여 저술한 것이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道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도봉산 천축사 (道峰山 天竺寺)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道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성균관대학교 (成均館大學校)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해방 이후 『다산학의 이해』, 『다산학입문』, 『다산의 역학』 등을 저술한 철학자.
이을호 (李乙浩)
해방 이후 『다산학의 이해』, 『다산학입문』, 『다산의 역학』 등을 저술한 철학자.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대사성 (大司成)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고려시대 경학(經學)에 밝은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의 한 과목.
명경업 (明經業)
고려시대 경학(經學)에 밝은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의 한 과목.
고려 후기 경사교수도감(經史敎授都監)에서 경(經)·사(史)를 가르치던 관원.
경사교수 (經史敎授)
고려 후기 경사교수도감(經史敎授都監)에서 경(經)·사(史)를 가르치던 관원.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중용주자혹문 (中庸朱子或問)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사성(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종3품 관직이다. 성균관의 녹관(祿官)으로 대사성 다음의 고위직이었다. 임무는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종학에서의 교육까지도 담당하였다. 또한 정례적이지는 않지만 세자의 교육을 전담하는 임무를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경연이나 서연에서 진강을 하기도 하였다.
사성 (司成)
사성(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종3품 관직이다. 성균관의 녹관(祿官)으로 대사성 다음의 고위직이었다. 임무는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종학에서의 교육까지도 담당하였다. 또한 정례적이지는 않지만 세자의 교육을 전담하는 임무를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경연이나 서연에서 진강을 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경서(經書)의 강독(講讀)을 장려하기 위하여 실시한 시험.
전강 (殿講)
조선시대 경서(經書)의 강독(講讀)을 장려하기 위하여 실시한 시험.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주의 논설·기·발·가장 등을 수록한 문집.
학해 (學海)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주의 논설·기·발·가장 등을 수록한 문집.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학자, 박장현의 『삼경수록』·『논어유집』·『해동춘추』 등을 모아 수록한 문집.
중산전서 (中山全書)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학자, 박장현의 『삼경수록』·『논어유집』·『해동춘추』 등을 모아 수록한 문집.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중용주자혹문 (中庸朱子或問)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1998년 한국 한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우리한문학회 (우리漢文學會)
1998년 한국 한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사업(司業)은 조선 후기, 성균관(成均館)의 정4품 관직이다. 인조 반정 후 산림(山林)을 초빙하기 위해 산림직을 두었는데, 산림직 가운데 가장 먼저 설치되었다. 정원은 1명으로 조선 후기 사상계 · 정치계를 주도하던 인사들이 임명되었다. 사업은 대사성과 협력하여 유생들을 훈도하고 도학(道學)을 강의하였으며, 경연에서 국왕에게 진강을 하기도 하고 의례 문제 논의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사업 (司業)
사업(司業)은 조선 후기, 성균관(成均館)의 정4품 관직이다. 인조 반정 후 산림(山林)을 초빙하기 위해 산림직을 두었는데, 산림직 가운데 가장 먼저 설치되었다. 정원은 1명으로 조선 후기 사상계 · 정치계를 주도하던 인사들이 임명되었다. 사업은 대사성과 협력하여 유생들을 훈도하고 도학(道學)을 강의하였으며, 경연에서 국왕에게 진강을 하기도 하고 의례 문제 논의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각암집』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1605년 4월 12일 대구부 수성현(壽城縣) 파잠리(巴岑里) 집에서 출생하였다. 서인계 학자로 김장생(金長生)에게 수학하였으며, 동문인 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 등과 교유하였다. 1642년 모친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역병에 걸려서 이듬해 정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일찍 세상을 떠나 오언고시 5수, 오언절구 6수, 오언율시 9수, 칠언절구 23수, 칠언율시 14수가 문집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잡저에 「대학집해(大學集解)」가 있는데, 팔조목을 해설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전유경 (全有慶)
조선 후기에 『각암집』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1605년 4월 12일 대구부 수성현(壽城縣) 파잠리(巴岑里) 집에서 출생하였다. 서인계 학자로 김장생(金長生)에게 수학하였으며, 동문인 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 등과 교유하였다. 1642년 모친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역병에 걸려서 이듬해 정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일찍 세상을 떠나 오언고시 5수, 오언절구 6수, 오언율시 9수, 칠언절구 23수, 칠언율시 14수가 문집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잡저에 「대학집해(大學集解)」가 있는데, 팔조목을 해설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원행이 동료 학자나 문인과 도학의 중요 경전과 문헌에 대해 논의한 서신을 경전별로 분류하여 엮은 유학서.
미상경의 (渼上經義)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원행이 동료 학자나 문인과 도학의 중요 경전과 문헌에 대해 논의한 서신을 경전별로 분류하여 엮은 유학서.
『봉곡계찰방유집』은 1859년 학자 계덕해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12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저자의 손자 계남귀가 간행했다. 『역경』·『시경』·『서경』·『춘추』·『논어』·『대학』·『중용』·『맹자』등 경학에 대한 학설이 주요 내용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봉곡계찰방유집 (鳳谷桂察訪遺集)
『봉곡계찰방유집』은 1859년 학자 계덕해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12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저자의 손자 계남귀가 간행했다. 『역경』·『시경』·『서경』·『춘추』·『논어』·『대학』·『중용』·『맹자』등 경학에 대한 학설이 주요 내용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김정희는 조선 후기에 조선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 학자, 서화가이다. 어려서 박제가와 같은 석학에게 배웠고, 24세에 참여한 사행 때 청의 학자들과 만난 후 학문에 진전을 크게 이루어 조선의 금석학을 일신하고 서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1840년에는 제주 유배객이 되어 9년 동안 위리안치형을 당했지만, 유배 생활도 그의 내공으로 작용하여 걸작 「세한도」를 그렸다. 세속과 무관한 자가풍의 글씨와 학술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김정희 (金正喜)
김정희는 조선 후기에 조선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 학자, 서화가이다. 어려서 박제가와 같은 석학에게 배웠고, 24세에 참여한 사행 때 청의 학자들과 만난 후 학문에 진전을 크게 이루어 조선의 금석학을 일신하고 서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1840년에는 제주 유배객이 되어 9년 동안 위리안치형을 당했지만, 유배 생활도 그의 내공으로 작용하여 걸작 「세한도」를 그렸다. 세속과 무관한 자가풍의 글씨와 학술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