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려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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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릉(明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연릉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29대 충목왕의 능이다. 1349년 3월 승하한 충목왕은 개성의 만수산 남쪽 명릉동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개성특별시 개풍군 연릉리 명릉떼에 자리한 3기의 고려왕릉은 북한 보존급 유적들이다. 3기 중 명릉떼 1릉의 봉분 내부에서 벽화가 발견되어 충목왕 명릉으로 여겨진다. 현재 명릉떼 1릉은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만 남아 있고, 석수와 석인 등은 사라진 상태이다.
명릉 (明陵)
명릉(明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연릉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29대 충목왕의 능이다. 1349년 3월 승하한 충목왕은 개성의 만수산 남쪽 명릉동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개성특별시 개풍군 연릉리 명릉떼에 자리한 3기의 고려왕릉은 북한 보존급 유적들이다. 3기 중 명릉떼 1릉의 봉분 내부에서 벽화가 발견되어 충목왕 명릉으로 여겨진다. 현재 명릉떼 1릉은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만 남아 있고, 석수와 석인 등은 사라진 상태이다.
강화 곤릉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 후기 제22대 강종의 왕비 원덕태후 유씨의 능이다. 강화 천도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가운데 하나이다. 지하식 석실과 12각 호석, 정자각 등 고려시대 능제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었으며 석실 안팎에서 청자사자삼족향로를 비롯해 당·송대 동전과 관정, 철정, 금동장식품, 구슬, 동곳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13세기 몽골과의 전쟁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개경을 대체한 강도(江都)의 위상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강화 곤릉 (江華 坤陵)
강화 곤릉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 후기 제22대 강종의 왕비 원덕태후 유씨의 능이다. 강화 천도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가운데 하나이다. 지하식 석실과 12각 호석, 정자각 등 고려시대 능제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었으며 석실 안팎에서 청자사자삼족향로를 비롯해 당·송대 동전과 관정, 철정, 금동장식품, 구슬, 동곳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13세기 몽골과의 전쟁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개경을 대체한 강도(江都)의 위상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덕릉(德陵)은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능이다. 1325년 충선왕의 사후 개성부 서쪽으로 12리에 안장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1377년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의 정릉 재실을 조영할 때 덕릉의 나무를 베어 조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현정릉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덕릉 (德陵)
덕릉(德陵)은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능이다. 1325년 충선왕의 사후 개성부 서쪽으로 12리에 안장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1377년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의 정릉 재실을 조영할 때 덕릉의 나무를 베어 조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현정릉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 홍릉(江華 洪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 후기 제23대 고종의 능이다. 홍릉은 강화군 고려산 중턱의 남사면에 있다. 1916년 조사 보고에 의하면 능역 내 호석과 난간 일부가 남아 있는 봉분과 석수 4마리, 석인상 4구, 정자각 터 등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사자를 비롯한 일부 석물이 사라진 상태이다. 1970년대 정비 과정에서 능역이 상당 부분 변형되었다.
강화 홍릉 (江華 洪陵)
강화 홍릉(江華 洪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 후기 제23대 고종의 능이다. 홍릉은 강화군 고려산 중턱의 남사면에 있다. 1916년 조사 보고에 의하면 능역 내 호석과 난간 일부가 남아 있는 봉분과 석수 4마리, 석인상 4구, 정자각 터 등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사자를 비롯한 일부 석물이 사라진 상태이다. 1970년대 정비 과정에서 능역이 상당 부분 변형되었다.
고려 공양왕릉(高麗 恭讓王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4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이다. 공양왕은 이성계 등에 의해 추대되었으나 조선 건국 직전에 폐위되어 강원도로 추방되었다가 1394년 삼척에서 살해되었다. 공양왕릉은 쌍릉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복원 정비를 하면서 왕릉의 상설 제도와 어긋나게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발굴을 통해 능역과 석실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여 복원할 필요가 있다.
고려 공양왕릉 (高麗 恭讓王陵)
고려 공양왕릉(高麗 恭讓王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4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이다. 공양왕은 이성계 등에 의해 추대되었으나 조선 건국 직전에 폐위되어 강원도로 추방되었다가 1394년 삼척에서 살해되었다. 공양왕릉은 쌍릉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복원 정비를 하면서 왕릉의 상설 제도와 어긋나게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발굴을 통해 능역과 석실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여 복원할 필요가 있다.
양릉(陽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고남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20대 신종의 능이다. 양릉은 1204년에 조성되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 553호이다. 1978년 북한 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하여 봉분 내부 천장에서 별자리가 그려진 벽화를 발견하였고, 고려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널방에서 신종의 시책이 발견되어 능주가 확인된 왕릉이다. 현재 양릉에는 봉분 앞에 석인 1쌍이 배치되어 있다.
양릉 (陽陵)
양릉(陽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고남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20대 신종의 능이다. 양릉은 1204년에 조성되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 553호이다. 1978년 북한 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하여 봉분 내부 천장에서 별자리가 그려진 벽화를 발견하였고, 고려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널방에서 신종의 시책이 발견되어 능주가 확인된 왕릉이다. 현재 양릉에는 봉분 앞에 석인 1쌍이 배치되어 있다.
유릉(裕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릉골에 있는 고려 전기 제16대 예종의 능이다. 1122년에 조성되었으며, 북한의 보존급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릉은 3층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만 남아 있고 석수와 석인 등은 사라진 상태이다. 1978년 발굴 조사를 통해 내부 구조가 밝혀졌으나 널방에 부장되었던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고, 도금 자물쇠와 개원통보 등 일부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릉 (裕陵)
유릉(裕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릉골에 있는 고려 전기 제16대 예종의 능이다. 1122년에 조성되었으며, 북한의 보존급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릉은 3층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만 남아 있고 석수와 석인 등은 사라진 상태이다. 1978년 발굴 조사를 통해 내부 구조가 밝혀졌으나 널방에 부장되었던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고, 도금 자물쇠와 개원통보 등 일부 유물이 출토되었다.
총릉(聰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오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0대 충정왕의 능이다. 총릉은 1352년에 조성되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이다. 총릉은 3층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이 있으며, 1층단에 망주석 1쌍, 2층단과 3층단에 각각 석인이 1쌍씩 서 있다. 1978년 발굴 조사를 통해 내부 구조가 밝혀졌고, 널방에 부장되었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총릉 (聰陵)
총릉(聰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오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0대 충정왕의 능이다. 총릉은 1352년에 조성되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이다. 총릉은 3층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이 있으며, 1층단에 망주석 1쌍, 2층단과 3층단에 각각 석인이 1쌍씩 서 있다. 1978년 발굴 조사를 통해 내부 구조가 밝혀졌고, 널방에 부장되었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헌릉(憲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삼거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4대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합장릉이다. 광종은 975년 5월, 51세의 나이로 사후 송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헌릉에 안장되었다. 현재 헌릉은 매봉 뒤 동쪽 골짜기의 높지 않은 언덕에 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이다. 고려시대에 헌릉은 산직당상 4명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리가 소홀하였지만, 1662년에도 정자각이나 석물이 유존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사를 통해 능제와 구조 및 석물이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상당수 석물들이 유실되어 남은 것이 많지 않은 상태이다.
헌릉 (憲陵)
헌릉(憲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삼거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4대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합장릉이다. 광종은 975년 5월, 51세의 나이로 사후 송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헌릉에 안장되었다. 현재 헌릉은 매봉 뒤 동쪽 골짜기의 높지 않은 언덕에 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이다. 고려시대에 헌릉은 산직당상 4명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리가 소홀하였지만, 1662년에도 정자각이나 석물이 유존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사를 통해 능제와 구조 및 석물이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상당수 석물들이 유실되어 남은 것이 많지 않은 상태이다.
후릉(厚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장풍군 월고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후기 제22대 국왕 강종의 능이다. 1213년 수창궁에서 강종이 승하하자 안종 무릉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무릉과 후릉이 풍수에 맞지 않아 그때마다 외세의 침입이 있었다는 주장에 따라 이장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실제 이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풍군 월고리 금신봉 중턱에 2기의 왕릉이 남아 있는데, 이 중 하나가 후릉일 가능성이 높다. 고종 연간에만 세 차례에 걸친 도굴이 있었다.
후릉 (厚陵)
후릉(厚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장풍군 월고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후기 제22대 국왕 강종의 능이다. 1213년 수창궁에서 강종이 승하하자 안종 무릉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무릉과 후릉이 풍수에 맞지 않아 그때마다 외세의 침입이 있었다는 주장에 따라 이장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실제 이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풍군 월고리 금신봉 중턱에 2기의 왕릉이 남아 있는데, 이 중 하나가 후릉일 가능성이 높다. 고종 연간에만 세 차례에 걸친 도굴이 있었다.
북한 황해북도 장풍군에 있는 고려전기 제8대 현종의 아버지인 안욱의 능. 왕릉.
건릉 (乾陵)
북한 황해북도 장풍군에 있는 고려전기 제8대 현종의 아버지인 안욱의 능. 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