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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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4월 15일 설립된 북한의 통신강의대학.
김일성방송대학 (金日成放送大學)
1973년 4월 15일 설립된 북한의 통신강의대학.
선군정치는 북한에서 군을 우선하는 통치방식이다. 1995년 처음 논의되어 1998년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함께 북한의 핵심적 통치방식으로 정착하였다. 선군정치는 군사 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2004년 1월부터 선군정치를 김정일 사상의 핵심 사상으로 키우기 위해 ‘선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했다. 선군사상 일색화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전 사회에 보급함으로써 모든 사업을 군대식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여 경제 회생의 추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선군정치 (先軍政治)
선군정치는 북한에서 군을 우선하는 통치방식이다. 1995년 처음 논의되어 1998년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함께 북한의 핵심적 통치방식으로 정착하였다. 선군정치는 군사 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2004년 1월부터 선군정치를 김정일 사상의 핵심 사상으로 키우기 위해 ‘선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했다. 선군사상 일색화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전 사회에 보급함으로써 모든 사업을 군대식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여 경제 회생의 추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조일평양선언은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와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조인한 선언문이다. 북한과 일본의 두 수뇌는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 사항을 해결하며 결실 있는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가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확인했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반성·사죄를 명기하였으며, 반성·사죄를 받는 주체를 ‘조선 인민’이라고 명기하였다. 이 선언은 일본이 아시아의 긴장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조일평양선언 (朝日平壤宣言)
조일평양선언은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와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조인한 선언문이다. 북한과 일본의 두 수뇌는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 사항을 해결하며 결실 있는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가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확인했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반성·사죄를 명기하였으며, 반성·사죄를 받는 주체를 ‘조선 인민’이라고 명기하였다. 이 선언은 일본이 아시아의 긴장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대북화해협력정책은 김대중 정부가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고자 추진한 대북정책으로 햇볕정책이라고도 부른다. 1970년대 서독의 동방정책에 기초하고 있으며 햇볕으로 북한을 개방체제로 전환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반대, 평화협력 및 교류 추진을 3대 원칙으로 천명하였다. 김대중정부는 남북경협 활성화, 이산가족교류,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관계 변화를 모색하였다. 대북화해협력정책은 ‘반공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화해협력과 공존번영으로 나가는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대북화해협력정책 (對北和解協力政策)
대북화해협력정책은 김대중 정부가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고자 추진한 대북정책으로 햇볕정책이라고도 부른다. 1970년대 서독의 동방정책에 기초하고 있으며 햇볕으로 북한을 개방체제로 전환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반대, 평화협력 및 교류 추진을 3대 원칙으로 천명하였다. 김대중정부는 남북경협 활성화, 이산가족교류,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관계 변화를 모색하였다. 대북화해협력정책은 ‘반공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화해협력과 공존번영으로 나가는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경호와 신변안전을 책임지는 경호조직.
호위총국 (護衛總局)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경호와 신변안전을 책임지는 경호조직.
김일성과 김정일이 세계 각국에서 받은 선물이나 기념품을 보관, 전시하는 북한의 전람관.
국제친선전람관 (國際親善展覽館)
김일성과 김정일이 세계 각국에서 받은 선물이나 기념품을 보관, 전시하는 북한의 전람관.
1973년 북한의 김정일이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저술한 영화 이론서. 북한문헌.
영화예술론 (映畵藝術論)
1973년 북한의 김정일이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저술한 영화 이론서. 북한문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역량을 선전하기 위하여 정책적 차원에서 사용한 대담하고 통이 큰 정치를 가리키는 북한용어. 정치.
광폭정치 (廣幅政治)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역량을 선전하기 위하여 정책적 차원에서 사용한 대담하고 통이 큰 정치를 가리키는 북한용어. 정치.
북한의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1992년부터 제작한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民族과 運命)
북한의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1992년부터 제작한 다부작 예술영화.
조러 모스크바 선언은 2001년 8월 4일 모스크바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경제적 필요성,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 복구 및 북한의 국제적 고립 해소 등 양국의 이해관계가 상호교차되어 체결되었다. 국제전략적 안정화, 안보 및 경제협력, 남북한 문제 등을 합의한 8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은 대미협상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 남북 관계에서 전략적 우위 확보 등을 추구하였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미사일 조약(ABM) 유지 기반 마련, 시베리아와 남북한 철도 연결 합의를 통한 경제적 실익 확보 등을 추구하였다.
조러 모스크바 선언 (朝러 Moscow 宣言)
조러 모스크바 선언은 2001년 8월 4일 모스크바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경제적 필요성,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 복구 및 북한의 국제적 고립 해소 등 양국의 이해관계가 상호교차되어 체결되었다. 국제전략적 안정화, 안보 및 경제협력, 남북한 문제 등을 합의한 8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은 대미협상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 남북 관계에서 전략적 우위 확보 등을 추구하였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미사일 조약(ABM) 유지 기반 마련, 시베리아와 남북한 철도 연결 합의를 통한 경제적 실익 확보 등을 추구하였다.
북한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으로 국가의 최고 직책.
국방위원장 (國防委員長)
북한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으로 국가의 최고 직책.
고난의 행군(苦難의 行軍)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경제적, 대외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북한의 대응 태세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과 경제난 이후 발생한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북한은 역사적으로 세 차례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는 1938년 김일성 항일 빨치산 부대의 100일 가까운 행군, 두 번째는 1956년 8월 종파 사건을 전후한 시기, 세 번째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인데, 흔히 고난의 행군은 가장 최근의 경험인 세 번째 사례를 지칭한다.
고난의 행군 (苦難의 行軍)
고난의 행군(苦難의 行軍)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경제적, 대외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북한의 대응 태세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과 경제난 이후 발생한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북한은 역사적으로 세 차례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는 1938년 김일성 항일 빨치산 부대의 100일 가까운 행군, 두 번째는 1956년 8월 종파 사건을 전후한 시기, 세 번째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인데, 흔히 고난의 행군은 가장 최근의 경험인 세 번째 사례를 지칭한다.
'우리 민족끼리'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북한의 선전 구호이다. 북한은 2000년 6·15공동선언 합의 직후부터 이 구호와 표현을 적극 내세우기 시작했으며 남북 간 공조 및 연공(聯共)의 의미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와 통일문제 해결에서 자주적 성격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미로 쓰인다.
우리민족끼리 (우리民族끼리)
'우리 민족끼리'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북한의 선전 구호이다. 북한은 2000년 6·15공동선언 합의 직후부터 이 구호와 표현을 적극 내세우기 시작했으며 남북 간 공조 및 연공(聯共)의 의미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와 통일문제 해결에서 자주적 성격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미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