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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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용호군에 소속된 대장군.
근장대장군 (近仗大將軍)
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용호군에 소속된 대장군.
무반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배계층인 양반 가운데 무관 반열이다. 전문 군사직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지만, 관직제도상 문무반 중 하나라는 의미를 갖는 무반제도는 관료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초에 도입돼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고려와 조선의 관료체계는 문반 중심으로 운영되어 무반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고려 때는 노골적인 천대가 무신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려 때는 무예가 출중하거나 공로를 세운 군인·향리·일품군의 장교 등에서 선발하거나 문·무 양반의 자제가 문음으로 출사했고, 조선 때는 무과를 설치해 무과급제자로 충당했다.
무반 (武班)
무반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배계층인 양반 가운데 무관 반열이다. 전문 군사직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지만, 관직제도상 문무반 중 하나라는 의미를 갖는 무반제도는 관료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초에 도입돼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고려와 조선의 관료체계는 문반 중심으로 운영되어 무반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고려 때는 노골적인 천대가 무신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려 때는 무예가 출중하거나 공로를 세운 군인·향리·일품군의 장교 등에서 선발하거나 문·무 양반의 자제가 문음으로 출사했고, 조선 때는 무과를 설치해 무과급제자로 충당했다.
백제의 제19대(재위: 420년~427년) 왕.
구이신왕 (久爾辛王)
백제의 제19대(재위: 420년~427년) 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한 쌍의 장승. 석장승.
남원 서천리 당산 (南原 西川里 堂山)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한 쌍의 장승. 석장승.
왕봉규는 남북국시대 나말려초 강주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한 호족이다. 천주절도사를 자칭하면서 중국의 후당에 사신을 파견하고,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을 제수받는 등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활발한 대외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친후백제 노선을 드러내어 고려 수군의 공격을 받아 몰락하였다.
왕봉규 (王逢規)
왕봉규는 남북국시대 나말려초 강주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한 호족이다. 천주절도사를 자칭하면서 중국의 후당에 사신을 파견하고,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을 제수받는 등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활발한 대외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친후백제 노선을 드러내어 고려 수군의 공격을 받아 몰락하였다.
초기국가시대 한나라의 통치에 저항한 낙랑지역의 토착 호족.
왕조 (王調)
초기국가시대 한나라의 통치에 저항한 낙랑지역의 토착 호족.
중방(重房)은 고려시대 이군육위(二軍六衛)의 지휘관인 상장군 · 대장군으로 구성된 회의 기관이다. 설치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대로 추정된다. 상장군 8인, 대장군 8인의 총 16인으로 구성되었다. 응양군 상장군은 반주(班主)라고 불렀고, 그 대표가 되었다. 궁궐 · 도성의 수비와 치안 등 이군육위의 임무와 관련된 주요 안건을 다루었다. 직책으로는 장교, 도장교, 서리 등이 있었다. 중방은 좌 · 우번으로 편성되었으며, 회의체 이외에 건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무신정권기에는 군사적 임무를 넘어 정치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였고 1393년에 폐지되었다.
중방 (重房)
중방(重房)은 고려시대 이군육위(二軍六衛)의 지휘관인 상장군 · 대장군으로 구성된 회의 기관이다. 설치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대로 추정된다. 상장군 8인, 대장군 8인의 총 16인으로 구성되었다. 응양군 상장군은 반주(班主)라고 불렀고, 그 대표가 되었다. 궁궐 · 도성의 수비와 치안 등 이군육위의 임무와 관련된 주요 안건을 다루었다. 직책으로는 장교, 도장교, 서리 등이 있었다. 중방은 좌 · 우번으로 편성되었으며, 회의체 이외에 건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무신정권기에는 군사적 임무를 넘어 정치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였고 1393년에 폐지되었다.
고려후기 응양군대장군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이천 (李阡)
고려후기 응양군대장군을 역임한 관리. 무신.
정신용은 고려 전기에 장군, 대장군 등을 역임하며 거란 침입으로부터 흥화진을 지켜낸 무신이다. 1014년(현종 5) 거란의 침입 때, 거란군이 통주에 침입하자, 흥화진의 장군으로서 이를 격퇴시키고 7백여 급의 목을 베었다. 이듬해 1015년(현종 6) 거란이 통주와 흥화진에 침입하자, 정신용은 대장군으로서 막하와 함께 거란군의 후미를 쳐서 700여 명을 죽이는 큰 공을 세웠으나 전투 중에 전사하였다.
정신용 (鄭神勇)
정신용은 고려 전기에 장군, 대장군 등을 역임하며 거란 침입으로부터 흥화진을 지켜낸 무신이다. 1014년(현종 5) 거란의 침입 때, 거란군이 통주에 침입하자, 흥화진의 장군으로서 이를 격퇴시키고 7백여 급의 목을 베었다. 이듬해 1015년(현종 6) 거란이 통주와 흥화진에 침입하자, 정신용은 대장군으로서 막하와 함께 거란군의 후미를 쳐서 700여 명을 죽이는 큰 공을 세웠으나 전투 중에 전사하였다.
고려후기 대장군,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정언진 (丁彦眞)
고려후기 대장군,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시대의 정4품 무관직.
장군 (將軍)
고려시대의 정4품 무관직.
한희유는 고려 후기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指揮使),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 첨의우중찬(僉議右中贊)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무신이다. 고려 충렬왕 대에 군졸 출신으로서 재상 자리까지 오른 관료이다. 몽골의 종왕(宗王)인 합단(哈丹, 카단)이 고려를 침입해 왔을 때 이를 물리치는 데에 공을 세웠다. 충렬왕 세력과 충선왕 세력의 갈등 속에서 충렬왕 측에 섰으며, 이 과정에서 무고사건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한희유 (韓希愈)
한희유는 고려 후기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指揮使),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 첨의우중찬(僉議右中贊)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무신이다. 고려 충렬왕 대에 군졸 출신으로서 재상 자리까지 오른 관료이다. 몽골의 종왕(宗王)인 합단(哈丹, 카단)이 고려를 침입해 왔을 때 이를 물리치는 데에 공을 세웠다. 충렬왕 세력과 충선왕 세력의 갈등 속에서 충렬왕 측에 섰으며, 이 과정에서 무고사건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고려후기 대장군, 지어사대사, 서북면병마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정방우 (鄭邦佑)
고려후기 대장군, 지어사대사, 서북면병마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장흥 방촌리 석장승은 조선 후기,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조성된 2기의 장승이다. 형상으로 보아 남원, 순창, 부안 일대에 남아 있는 다른 석장승과도 닮은 점이 있어 조선 후기에 민간신앙의 하나이면서도 마을 수호를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이 있는 서쪽 장승과 명문이 없는 동쪽 장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별신제를 올린다.
장흥 방촌리 석장승 (長興 傍村里 石長栍)
장흥 방촌리 석장승은 조선 후기,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조성된 2기의 장승이다. 형상으로 보아 남원, 순창, 부안 일대에 남아 있는 다른 석장승과도 닮은 점이 있어 조선 후기에 민간신앙의 하나이면서도 마을 수호를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이 있는 서쪽 장승과 명문이 없는 동쪽 장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별신제를 올린다.
고려후기 대장군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이종기 (李宗器)
고려후기 대장군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후기 상장군, 서북면지병마사, 동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백존유 (白存儒)
고려후기 상장군, 서북면지병마사, 동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후기 이의민 제거와 관련된 관리. 무신.
이경유 (李景儒)
고려후기 이의민 제거와 관련된 관리. 무신.
고려후기 장군, 대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양공적 (梁公勣)
고려후기 장군, 대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후기 대장군으로 태조탄전투에 참전한 관리. 무신.
이의유 (李義儒)
고려후기 대장군으로 태조탄전투에 참전한 관리. 무신.
고려 후기에, 지어사대사, 지병마사, 대장군 등을 역임한 문신.
백수정 (白守貞)
고려 후기에, 지어사대사, 지병마사, 대장군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