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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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 臨時政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이승만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1, 2, 3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75년(고종 12)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잠시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학과 정치활동을 했다. 광복 후 38선 이남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고 1948년 실시된 총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에서 제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취임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발췌개헌안’, ‘사사오입 개헌’안을 통과시켜 재선·3선에 성공했다. 4선 도전에서도 무투표로 당선됐으나 4·19혁명이 발발하자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승만 (李承晩)
이승만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1, 2, 3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75년(고종 12)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잠시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학과 정치활동을 했다. 광복 후 38선 이남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고 1948년 실시된 총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에서 제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취임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발췌개헌안’, ‘사사오입 개헌’안을 통과시켜 재선·3선에 성공했다. 4선 도전에서도 무투표로 당선됐으나 4·19혁명이 발발하자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했다.
우리 나라 및 우리 민족의 범칭.
한 (韓)
우리 나라 및 우리 민족의 범칭.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나석주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며 의열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의열 투쟁을 벌이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의열단과 한국노병회에 가입하여 활약하다가, 김창숙이 제공한 자금을 기반으로 경성(지금의 서울특별시)에 들어와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나석주 (羅錫疇)
나석주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며 의열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의열 투쟁을 벌이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의열단과 한국노병회에 가입하여 활약하다가, 김창숙이 제공한 자금을 기반으로 경성(지금의 서울특별시)에 들어와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독립공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조국 광복을 달성하기 위해 발행한 군자금 모집의 공채이다. 독립운동을 위한 재정이 부족해 임시정부 운영이 어려워지자 1919년 11월 29일 「독립공채조례」를 제정·공포하여 공채를 발행했다. 공채명은 ‘대한민국원년독립공채’였으며 이자는 연 100분의 5로 하고 공채 본금은 우리 나라가 독립한 뒤 5개년부터 30년 이내에 수시로 상환하기로 하였다. 독립공채는 비밀 국내 행정조직을 통해 판매되어 군자금으로 쓰였는데, 미주 하와이 일대의 동포들이 가장 많이 소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공채 (獨立公債)
독립공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조국 광복을 달성하기 위해 발행한 군자금 모집의 공채이다. 독립운동을 위한 재정이 부족해 임시정부 운영이 어려워지자 1919년 11월 29일 「독립공채조례」를 제정·공포하여 공채를 발행했다. 공채명은 ‘대한민국원년독립공채’였으며 이자는 연 100분의 5로 하고 공채 본금은 우리 나라가 독립한 뒤 5개년부터 30년 이내에 수시로 상환하기로 하였다. 독립공채는 비밀 국내 행정조직을 통해 판매되어 군자금으로 쓰였는데, 미주 하와이 일대의 동포들이 가장 많이 소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 (서울特別市)
대한민국의 수도.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익희 (申翼熙)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때, 가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신민회, 신흥강습소, 한국독립당 등을 조직하였고, 해방 이후,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여 사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이시영 (李始榮)
일제강점기 때, 가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신민회, 신흥강습소, 한국독립당 등을 조직하였고, 해방 이후,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여 사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초대작가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허백련 (許百鍊)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초대작가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무정부주의운동(無政府主義運動)은 일제강점기 국가권력인 일제에 저항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하고자 한 운동이다. 압박받고 지배당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노동과 자본이란 생산관계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비판하고 국가권력 등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며 절대 자유가 행해지는 사회를 추구한 해방운동이다. 사회주의 계열과는 자본주의 비판에 공조하면서 러시아 공산주의의 당 중심의 볼셰비즘에 비판적이었다. 전시 체제기에 들어가면서 중국 관내에 거주하던 무정부주의자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족주의 계열과 공동전선을 도모하였다.
무정부주의운동 (無政府主義運動)
무정부주의운동(無政府主義運動)은 일제강점기 국가권력인 일제에 저항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하고자 한 운동이다. 압박받고 지배당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노동과 자본이란 생산관계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비판하고 국가권력 등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며 절대 자유가 행해지는 사회를 추구한 해방운동이다. 사회주의 계열과는 자본주의 비판에 공조하면서 러시아 공산주의의 당 중심의 볼셰비즘에 비판적이었다. 전시 체제기에 들어가면서 중국 관내에 거주하던 무정부주의자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족주의 계열과 공동전선을 도모하였다.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고문, 홍익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이상범 (李象範)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고문, 홍익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고희동 (高羲東)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의 좌익정당.
조선민족혁명당 (朝鮮民族革命黨)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의 좌익정당.
서영해는 일제강점기 프랑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필가, 언론인이다. 1902년 부산 출생으로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중국 상해로 망명해 김규식을 만났다. 김규식의 권고로 프랑스로 건너가 고려통신사라는 이름을 걸고 일제의 한반도 강탈과 잔악한 만행을 알리는 3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외교특파원으로 활동하던 1932년 안창호가 체포되자 일본의 야만적 억압에 항의하는 호소문을 프랑스 언론에 배포하였다. 해방 후 귀국해 기자 자격으로 남북교섭에 참가하였으나 남한단독정부수립에 회의를 느껴 프랑스로 돌아가던 중 소식이 끊겼다.
서영해 (徐嶺海)
서영해는 일제강점기 프랑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필가, 언론인이다. 1902년 부산 출생으로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중국 상해로 망명해 김규식을 만났다. 김규식의 권고로 프랑스로 건너가 고려통신사라는 이름을 걸고 일제의 한반도 강탈과 잔악한 만행을 알리는 3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외교특파원으로 활동하던 1932년 안창호가 체포되자 일본의 야만적 억압에 항의하는 호소문을 프랑스 언론에 배포하였다. 해방 후 귀국해 기자 자격으로 남북교섭에 참가하였으나 남한단독정부수립에 회의를 느껴 프랑스로 돌아가던 중 소식이 끊겼다.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민주화운동가이다. 1918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해 광복군이 되었다.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입국 후 1952년 『사상』을, 1953년 피난지에서 『사상계』를 창간했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복역하던 중 옥중 출마해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연이은 민주화운동으로 10여 차례 투옥되었으며, 1975년 등산 중 의문사했다.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상)을 수상했다.
장준하 (張俊河)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민주화운동가이다. 1918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해 광복군이 되었다.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입국 후 1952년 『사상』을, 1953년 피난지에서 『사상계』를 창간했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복역하던 중 옥중 출마해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연이은 민주화운동으로 10여 차례 투옥되었으며, 1975년 등산 중 의문사했다.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상)을 수상했다.
해방 이후 「농가도」, 「무창춘색도」, 「외금강삼선암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변관식 (卞寬植)
해방 이후 「농가도」, 「무창춘색도」, 「외금강삼선암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고목과 여인」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박수근 (朴壽根)
해방 이후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고목과 여인」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광복군총영은 1920년 서간도 안동현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지방사령부이다. 광복단을 중심으로 민국독립단과 통합하여 조직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서간도에 설치하려 한 광복군사령부와는 설립 주체가 다르다. 광복군사령부가 조직되기에 앞서 광복군총영이 이미 조직되어 있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서간도 지방사령부는 광복군총영이 담당하였다.
광복군총영 (光復軍總營)
광복군총영은 1920년 서간도 안동현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지방사령부이다. 광복단을 중심으로 민국독립단과 통합하여 조직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서간도에 설치하려 한 광복군사령부와는 설립 주체가 다르다. 광복군사령부가 조직되기에 앞서 광복군총영이 이미 조직되어 있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서간도 지방사령부는 광복군총영이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