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검색결과 총 13건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장, 임시정부 군무차장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정치인·독립운동가.
윤기섭 (尹琦燮)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장, 임시정부 군무차장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정치인·독립운동가.
남형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과 교통총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으로 활약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과 차장, 교통총장을 역임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난맥상을 극복하기 위해 열린 대한국민회의 개최를 위한 주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남형우 (南亨祐)
남형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과 교통총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으로 활약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과 차장, 교통총장을 역임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난맥상을 극복하기 위해 열린 대한국민회의 개최를 위한 주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김병조는 1919년 3 · 1운동에서 기독교계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한국독립운동사략』 상권을 저술하였다.
김병조 (金秉祚)
김병조는 1919년 3 · 1운동에서 기독교계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한국독립운동사략』 상권을 저술하였다.
김홍서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과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초대 의원으로 시작해 193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의원직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으나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하였다.
김홍서 (金弘敍)
김홍서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과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초대 의원으로 시작해 193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의원직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으나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하였다.
방순희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 유일한 여성 의원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여성 의원으로 활약하면서 한국독립당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국애국부인회를 재건하여 부주석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부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선전연락원으로서 중국 각지에서 선무 공작을 벌이고 1946년에 귀국하였다.
방순희 (方順熙)
방순희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 유일한 여성 의원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여성 의원으로 활약하면서 한국독립당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국애국부인회를 재건하여 부주석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부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선전연락원으로서 중국 각지에서 선무 공작을 벌이고 1946년에 귀국하였다.
김철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에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창립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핵심 역할을 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두루 거치며 활동하였고, 한국독립당 창당에도 관여하였다.
김철 (金澈)
김철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에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창립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핵심 역할을 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두루 거치며 활동하였고, 한국독립당 창당에도 관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강순 (姜舜)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조선민족혁명당 중앙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최우강 (崔友江)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조선민족혁명당 중앙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중국 만현에서 병원을 운영하였으며, 조선민족혁명당 중앙후보위원,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비서장 등을 역임한 의사·독립운동가.
최성오 (崔省吾)
일제강점기 때, 중국 만현에서 병원을 운영하였으며, 조선민족혁명당 중앙후보위원,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비서장 등을 역임한 의사·독립운동가.
현정건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의 만주와 상하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고려공산당, 인성학교, 국민대표회의, 상하이교민단, 상하이한인청년동맹, 한국유일당상해촉성회 등의 독립 단체와 사회단체 및 교육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현정건 (玄鼎健)
현정건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의 만주와 상하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고려공산당, 인성학교, 국민대표회의, 상하이교민단, 상하이한인청년동맹, 한국유일당상해촉성회 등의 독립 단체와 사회단체 및 교육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나태섭은 일제강점기 1936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7월 11일 중국 난징에서 결성된 한국국민당청년단 단장, 1939년 10월 임시정부 군사특파원, 한국광복군 제2지대 창설 간부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정부 군무부 부원, 군무부 총무과 과장, 군무부 군사학편찬위원회 간사, 내무부 생활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 등을 지냈으며, 8·15광복 이후 화중한교선무단에서 활동하였다.
나태섭 (羅泰燮)
나태섭은 일제강점기 1936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7월 11일 중국 난징에서 결성된 한국국민당청년단 단장, 1939년 10월 임시정부 군사특파원, 한국광복군 제2지대 창설 간부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정부 군무부 부원, 군무부 총무과 과장, 군무부 군사학편찬위원회 간사, 내무부 생활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 등을 지냈으며, 8·15광복 이후 화중한교선무단에서 활동하였다.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김정숙 (金貞淑)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최혜순은 일제강점기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으며, 전남도립광주의원에서 일하다 중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이다. 1931년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회계 책임자를 맡았으며,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1933년까지 활동하였다. 1934년 남편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에도 상하이에서 조산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지원을 계속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혜순 (崔惠淳)
최혜순은 일제강점기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으며, 전남도립광주의원에서 일하다 중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이다. 1931년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회계 책임자를 맡았으며,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1933년까지 활동하였다. 1934년 남편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에도 상하이에서 조산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지원을 계속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