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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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무늬토기는 돋을새김 무늬를 새긴 도장[印]을 표면에 찍어 오목새김 무늬로 장식한 토기이다. 경주 안압지와 고분, 산성 등에서 출토되었다. 선무늬, 점선무늬, 물결무늬, 원호무늬, 편자무늬, 꽃무늬, 구름무늬, 달개무늬, 물방울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졌다. 도장무늬가 새겨진 그릇 종류도 굽다리사발, 뚜껑, 병, 사발, 바리, 장군, 뼈단지등 다양한 편이다. 특히 도장무늬가 새겨진 뼈단지는 황갈색이나 황록색 유약을 입힌 시유토기(施釉土器)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중국 당나라 문화의 영향과 함께 불교문화 파급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도장무늬토기 (印花文土器)
도장무늬토기는 돋을새김 무늬를 새긴 도장[印]을 표면에 찍어 오목새김 무늬로 장식한 토기이다. 경주 안압지와 고분, 산성 등에서 출토되었다. 선무늬, 점선무늬, 물결무늬, 원호무늬, 편자무늬, 꽃무늬, 구름무늬, 달개무늬, 물방울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졌다. 도장무늬가 새겨진 그릇 종류도 굽다리사발, 뚜껑, 병, 사발, 바리, 장군, 뼈단지등 다양한 편이다. 특히 도장무늬가 새겨진 뼈단지는 황갈색이나 황록색 유약을 입힌 시유토기(施釉土器)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중국 당나라 문화의 영향과 함께 불교문화 파급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궁방은 조선시대 왕실의 일부였던 궁실(宮室)과 왕실에서 분가, 독립한 궁가(宮家)의 통칭이다. 1사7궁(一司七宮)에 해당하는 내수사, 수진궁, 어의궁, 명례궁, 용동궁, 육상궁, 선희궁, 경우궁을 비롯하여 68개가 있었다. 그 존속기간과 기능에 따라 분류되었다. 왕패(王牌)나 별사문적(別賜文蹟) 등을 보유한 궁방이 있었다. 후궁·대군·공주 등 해당 인물의 생활자료를 공급하는 설궁(設宮), 제사를 지내는 제사궁(祭祀宮)도 있었다. 궁방에게는 토지와 어전(漁箭)·염분(鹽盆)·산림천택(山林川澤) 등이 절수(折受)의 형태로 지급되었다.
궁방 (宮房)
궁방은 조선시대 왕실의 일부였던 궁실(宮室)과 왕실에서 분가, 독립한 궁가(宮家)의 통칭이다. 1사7궁(一司七宮)에 해당하는 내수사, 수진궁, 어의궁, 명례궁, 용동궁, 육상궁, 선희궁, 경우궁을 비롯하여 68개가 있었다. 그 존속기간과 기능에 따라 분류되었다. 왕패(王牌)나 별사문적(別賜文蹟) 등을 보유한 궁방이 있었다. 후궁·대군·공주 등 해당 인물의 생활자료를 공급하는 설궁(設宮), 제사를 지내는 제사궁(祭祀宮)도 있었다. 궁방에게는 토지와 어전(漁箭)·염분(鹽盆)·산림천택(山林川澤) 등이 절수(折受)의 형태로 지급되었다.
북한 평양직할시 락랑구역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관모·띠고리 등이 출토된 덧널무덤. 목곽묘.
왕광묘 (王光墓)
북한 평양직할시 락랑구역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관모·띠고리 등이 출토된 덧널무덤. 목곽묘.
북한 평양직할시 락랑구역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장신구와 무기류 등이 출토된 덧널무덤. 목곽묘.
왕근묘 (王根墓)
북한 평양직할시 락랑구역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장신구와 무기류 등이 출토된 덧널무덤. 목곽묘.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무지무덤·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울릉 현포동 고분군 (蔚陵 玄圃洞 古墳群)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무지무덤·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조선후기 예조에서 중앙과 지방 각 관서의 요청으로 인신을 주조하여 발급했을 때의 기록을 모아 엮은 등록.
인신등록 (印信謄錄)
조선후기 예조에서 중앙과 지방 각 관서의 요청으로 인신을 주조하여 발급했을 때의 기록을 모아 엮은 등록.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기와를 굽던 가마터.
경주 동산리 기와가마터 (慶州 東山里 기와가마터)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기와를 굽던 가마터.
병신정식(丙申定式)은 정조가 1776년(정조 즉위) 무토(無土) 궁방전에 대해 도장·궁차 등의 파견을 통한 궁세 징수를 금지하고 각 읍 수령이 수취를 담당하여 호조에 상납토록 한 조치이다. 무분별하게 확대되던 궁방전을 국가에서 규제한 조치로 이후 왕실 재정에 대한 규범성을 강조하는 전범으로 인용되었다.
병신정식 (丙申定式)
병신정식(丙申定式)은 정조가 1776년(정조 즉위) 무토(無土) 궁방전에 대해 도장·궁차 등의 파견을 통한 궁세 징수를 금지하고 각 읍 수령이 수취를 담당하여 호조에 상납토록 한 조치이다. 무분별하게 확대되던 궁방전을 국가에서 규제한 조치로 이후 왕실 재정에 대한 규범성을 강조하는 전범으로 인용되었다.
여말선초 『자비도량참법』의 단어와 구절 뒤에 한자로 우리말 조사와 어미 등을 단 불교경전. 구결서.
자비도량참법음독구결 (慈悲道場懺法音讀口訣)
여말선초 『자비도량참법』의 단어와 구절 뒤에 한자로 우리말 조사와 어미 등을 단 불교경전. 구결서.
해방 이후 대전에서 아들 안경전과 함께 증산교 계열의 증산도를 창립한 종교창시자.
안세찬 (安世燦)
해방 이후 대전에서 아들 안경전과 함께 증산교 계열의 증산도를 창립한 종교창시자.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서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목천초등학교 (木川初等學校)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서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황양목은 한반도의 중부지방, 특히 중북부 지방의 석회암 지대에 많이 자생하는 나무로, 목재의 재질이 치밀하고 단단하여, 목활자(木活字)의 재료로 가장 적합한 나무이다. 조선시대의 금속활자 주조에서도 황양목으로 새긴 목활자는 그 부자(父字)로 활용되었다. 황양목은 임진왜란 이후에 목활자로 간행되는 도서 인쇄의 중요한 재료이다.
황양목 (黃楊木)
황양목은 한반도의 중부지방, 특히 중북부 지방의 석회암 지대에 많이 자생하는 나무로, 목재의 재질이 치밀하고 단단하여, 목활자(木活字)의 재료로 가장 적합한 나무이다. 조선시대의 금속활자 주조에서도 황양목으로 새긴 목활자는 그 부자(父字)로 활용되었다. 황양목은 임진왜란 이후에 목활자로 간행되는 도서 인쇄의 중요한 재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