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양목(黃楊木)은 목재의 재질이 치밀하고 단단하며, 한반도의 중부 지방에 풍부하게 자생(自生)하는 나무이다. 황양목의 목재는 목활자의 재료로 다듬어 글자를 새겨고, 목활자로 도서를 인쇄하는 데 매우 적합한 재료로 각광을 받았다.
황양목은 우리나라의 충청북도와 강원도, 황해도로 이어지는 석회암지대에 주로 자생하고, 나무의 목재가 황색이라 황양목으로 불린다. 또한 석회암 지대가 발달된 강원도 회양(淮陽)에서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회양목(淮陽木)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황양목은 생장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재질의 조직이 치밀하고 뒤틀림이 없어 도장의 재료로 많이 이용되었다. 그래서 도장나무라고도 불린다. 황양목은 재목(材木)이 단단하여 목활자(木活字)를 비롯하여 목관악기(木管樂器), 머리 빗, 각종 제도 및 측량용 기구 등을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의 호패(戶牌)를 황양목으로 제작하였다.
황양목은 인쇄술과 관련한 목활자의 재료로 가장 적합한 나무이다. 황양목은 재질과 단단한 속성 면에서 목활자로 활용될 수 있는 최적의 소재였다. 목활자는 ‘신속성, 편리성, 저비용’이라는 측면에서 지역의 특색을 지니면서 산발적으로 제작되었고, 영남과 호남지역에서 목활자로 간행된 책의 종수(種數)는 1,000여 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목활자가 조성된 시기도 임진왜란 이전부터 196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관주활자(官鑄活字) 인쇄는 그 초기부터 금속활자(金屬活字)를 더 선호하였고, 목활자는 아주 긴요한 자료를 신속하게 찍어낼 경우가 아니고는 그 사용이 보류 · 지양되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전기, 훈련도감자 병용(倂用) 한글 활자 및 1603년 실록자(實錄字) 등 국가의 재정이 빈약한 환경에서 금속활자를 주조하기 힘든 시기에만 관주활자(官鑄活字)로서 목활자가 기능하였다. 목활자는 18세기 후기 무렵부터 민간(民間)의 주요 인쇄 수단으로 큰 역할을 하는데, 황양목이 있었기 때문에 목활자의 제작과 인쇄가 가능하였음이 주목된다.
목활자는 제작처와 제작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지방의 민간인이 만든 목활자는 이곳저곳으로 가지고 다니며 책을 찍어 주고, 표시한 인출 사항이 다양하여 더욱 복잡하다. 그러므로 목활자에 대해서는 향후 그 인본과 관계 자료를 포괄적으로 조사하여 계통적으로 연구하고 목활자 각각의 내력을 체계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