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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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는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옷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의 옷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1950년대에 1세대 디자이너들이 양장점 형태의 한국 패션을 ‘디자이너 패션의 시대’로 이끌었고, 1970년대 이후 패션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디자이너들이 기성복의 패션화와 고급화를 주도하였다. 1990년대에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되어 컬렉션을 활성화시키고 해외로 진출해 한국 패션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한류의 인기에 힘입어 신진 디자이너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디자인을 보여 주고 있다.
패션디자이너 (fashion designer)
패션디자이너는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옷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의 옷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1950년대에 1세대 디자이너들이 양장점 형태의 한국 패션을 ‘디자이너 패션의 시대’로 이끌었고, 1970년대 이후 패션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디자이너들이 기성복의 패션화와 고급화를 주도하였다. 1990년대에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되어 컬렉션을 활성화시키고 해외로 진출해 한국 패션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한류의 인기에 힘입어 신진 디자이너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디자인을 보여 주고 있다.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는 한국 최초로 결성된 패션디자이너들의 단체이다. 후에 사단법인 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로 단체명이 변경되었다. 회원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 지원과 브랜드화를 지원하며 신진 패션 인재 양성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한국 패션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大韓服飾designer協會)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는 한국 최초로 결성된 패션디자이너들의 단체이다. 후에 사단법인 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로 단체명이 변경되었다. 회원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 지원과 브랜드화를 지원하며 신진 패션 인재 양성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한국 패션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패션쇼는 다음 시즌을 위해 기획하여 생산한 패션 신상품들을 홍보하는 행사이다. 패션쇼에서는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등 두 시즌에 유행할 패션 상품들을 한 시즌 앞서서 보여 준다. 다양한 패션 상품들을 모아서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패션 컬렉션이라고도 부른다. 패션이 산업화된 뉴욕, 런던, 밀란, 파리 등지에서는 일정 기간을 패션 위크로 정하고, 그 기간에 패션 컬렉션을 개최한다. 패션 컬렉션은 개최 도시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데, 한국에는 서울 패션 컬렉션이 있다.
패션쇼 (Fashion show)
패션쇼는 다음 시즌을 위해 기획하여 생산한 패션 신상품들을 홍보하는 행사이다. 패션쇼에서는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등 두 시즌에 유행할 패션 상품들을 한 시즌 앞서서 보여 준다. 다양한 패션 상품들을 모아서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패션 컬렉션이라고도 부른다. 패션이 산업화된 뉴욕, 런던, 밀란, 파리 등지에서는 일정 기간을 패션 위크로 정하고, 그 기간에 패션 컬렉션을 개최한다. 패션 컬렉션은 개최 도시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데, 한국에는 서울 패션 컬렉션이 있다.
앙드레김은 한국 패션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우리나라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이다. 자신의 패션 디자인을 ‘판타스틱’하고 ‘우아한’ 한국적인 예술의 하나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우리나라의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먼저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였고, 대중들에게 패션을 널리 알리면서 한국의 패션 디자인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정부와 여러 단체로부터 많은 상을 받았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였으며, 여러 사회 단체를 지원하는 위한 자선 패션쇼를 자주 개최하였다.
앙드레김 (André Kim)
앙드레김은 한국 패션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우리나라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이다. 자신의 패션 디자인을 ‘판타스틱’하고 ‘우아한’ 한국적인 예술의 하나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우리나라의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먼저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였고, 대중들에게 패션을 널리 알리면서 한국의 패션 디자인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정부와 여러 단체로부터 많은 상을 받았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였으며, 여러 사회 단체를 지원하는 위한 자선 패션쇼를 자주 개최하였다.
이영희는 현대 한복의 세계화를 이끈 디자이너이다. 이영희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부업으로 시작한 이불솜 장사가 계기가 되어 40대에 한복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남다른 색감과 열정을 지닌 이영희는 한복 디자이너로 만족하지 않고, 한국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하였고, 뉴욕에 한복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HANBOK’이라는 고유 명사와 한복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린 패션디자이너로서 명성이 높다.
이영희 (李英姬)
이영희는 현대 한복의 세계화를 이끈 디자이너이다. 이영희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부업으로 시작한 이불솜 장사가 계기가 되어 40대에 한복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남다른 색감과 열정을 지닌 이영희는 한복 디자이너로 만족하지 않고, 한국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하였고, 뉴욕에 한복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HANBOK’이라는 고유 명사와 한복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린 패션디자이너로서 명성이 높다.
이리자는 한복의 현대화와 패션화를 이끈 한복 디자이너이다. 본명은 이은임이며, 1966년 이리자 한복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70년 한국인의 체형을 보완하는 ‘이리자식 한복 패턴’을 개발해 보급하였다. 국내외에서 다수의 한복 작품 발표회를 개최하여 ‘한복 디자이너’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한복의 현대화와 패션화를 이끈 선구적인 한복 디자이너이다.
이리자 (李利子)
이리자는 한복의 현대화와 패션화를 이끈 한복 디자이너이다. 본명은 이은임이며, 1966년 이리자 한복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70년 한국인의 체형을 보완하는 ‘이리자식 한복 패턴’을 개발해 보급하였다. 국내외에서 다수의 한복 작품 발표회를 개최하여 ‘한복 디자이너’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한복의 현대화와 패션화를 이끈 선구적인 한복 디자이너이다.
대한복식연우회(大韓服食硏友會)는 1955년 6월 명동양장점 및 양재학원 연합을 주축으로 설립된 복식 전문가 단체이다. 1961년에 시행된 정부 사회부의 ‘유사 단체통합령’으로 인해 대한복식연우회는 한국디자이너협회와 1961년 8월 27일 (사단법인)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로 통합되었다.
대한복식연우회 (大韓服食硏友會)
대한복식연우회(大韓服食硏友會)는 1955년 6월 명동양장점 및 양재학원 연합을 주축으로 설립된 복식 전문가 단체이다. 1961년에 시행된 정부 사회부의 ‘유사 단체통합령’으로 인해 대한복식연우회는 한국디자이너협회와 1961년 8월 27일 (사단법인)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로 통합되었다.
명동양장점은 1950년대 서울 명동에서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양장점이다. 대표 양장점과 디자이너는 ‘한양장점’의 한동식, ‘송옥양장점’의 오송죽과 심명언, ‘국제양장사’의 최경자, ‘아리사양장점’의 서수연, ‘노라노의 집’의 노라노, ‘살롱 드 모드’의 이종천, ‘마드모아젤’의 김경희, ‘라 · 모오드양장점’의 최금린, ‘크로오버양장점’의 문신덕, ‘이성우양장점’의 이성우, ‘붜그양장점’의 윤현경, ‘우리양장점’의 홍명애 등이 있다.
명동양장점 (明洞洋裝店)
명동양장점은 1950년대 서울 명동에서 활동한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의 양장점이다. 대표 양장점과 디자이너는 ‘한양장점’의 한동식, ‘송옥양장점’의 오송죽과 심명언, ‘국제양장사’의 최경자, ‘아리사양장점’의 서수연, ‘노라노의 집’의 노라노, ‘살롱 드 모드’의 이종천, ‘마드모아젤’의 김경희, ‘라 · 모오드양장점’의 최금린, ‘크로오버양장점’의 문신덕, ‘이성우양장점’의 이성우, ‘붜그양장점’의 윤현경, ‘우리양장점’의 홍명애 등이 있다.
국제복장학원은 1948년 제1세대 한국 패션 디자이너 최경자가 개원한 복장 전문학원이다. 1948년에 국제양재학원으로 시작한 국제복장학원은 1961년에 재설립되었으며, 1981년에 (재단법인)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 설립을 계기로 전문패션교육학원으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국제복장학원은 1997년에 국제패션디자인학원으로 개명되었다.
국제복장학원 (國際服裝學院)
국제복장학원은 1948년 제1세대 한국 패션 디자이너 최경자가 개원한 복장 전문학원이다. 1948년에 국제양재학원으로 시작한 국제복장학원은 1961년에 재설립되었으며, 1981년에 (재단법인)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 설립을 계기로 전문패션교육학원으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국제복장학원은 1997년에 국제패션디자인학원으로 개명되었다.
최경자는 20세기 중 · 후반에 활동한 한국의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이다. 1937년 함흥의 은좌옥에서 양장을 시작한 최경자는 1948년 서울에 국제 양재 학원을 열었고, 6·25 한국전쟁 중에는 대구에서 활동하며 국제 양장사와 최경자 복식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1954년 명동에 입성해 국제 양장사를 정착시킨 최경자는 한국 패션 디자인 산업과 패션 교육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최경자 (崔敬子)
최경자는 20세기 중 · 후반에 활동한 한국의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이다. 1937년 함흥의 은좌옥에서 양장을 시작한 최경자는 1948년 서울에 국제 양재 학원을 열었고, 6·25 한국전쟁 중에는 대구에서 활동하며 국제 양장사와 최경자 복식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1954년 명동에 입성해 국제 양장사를 정착시킨 최경자는 한국 패션 디자인 산업과 패션 교육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