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명나라"
검색결과 총 15건
조선 전기에, 사헌집의, 판전교시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약항 (金若恒)
조선 전기에, 사헌집의, 판전교시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장(戰場) 근처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심어 그 땅에서 죽은 명나라 군사들의 혼을 제사지내던 곳을 지칭하는 용어.
민충단 (愍忠壇)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장(戰場) 근처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심어 그 땅에서 죽은 명나라 군사들의 혼을 제사지내던 곳을 지칭하는 용어.
1374년(공민왕 23) 김의(金義)가 명나라 사신 채빈(蔡斌)을 살해한 사건.
명사 살해사건 (明使 殺害事件)
1374년(공민왕 23) 김의(金義)가 명나라 사신 채빈(蔡斌)을 살해한 사건.
고려 후기에, 대호군, 강원도부원수, 경상도부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
구성로 (具成老)
고려 후기에, 대호군, 강원도부원수, 경상도부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북청주만호를 역임한 무신.
김득경 (金得卿)
고려후기 북청주만호를 역임한 무신.
고려 후기에, 정조사, 판도판서, 지밀직 등을 역임한 문신.
김보생 (金寶生)
고려 후기에, 정조사, 판도판서, 지밀직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문신 권협이 명나라에 다녀온 후 1597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연행록 (燕行錄)
조선시대 문신 권협이 명나라에 다녀온 후 1597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고려 후기에, 정당문학, 예문관대제학, 양광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균형 (徐鈞衡)
고려 후기에, 정당문학, 예문관대제학, 양광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은 조선 후기에 창작된 고전 소설이다. 작자는 조성기 혹은 김도수로, 창작 시기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사이로 추정된다. 작품의 배경은 명나라이며, 여양후(汝陽侯) 화욱과 정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화진이 형 화춘과 그의 어머니인 심부인으로 인한 가정의 위기와 엄숭을 비롯한 간신들로 인한 조정의 위기를 ‘충’과 ‘효’를 바탕으로 극복하고 천하를 안정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가문 소설이다.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은 조선 후기에 창작된 고전 소설이다. 작자는 조성기 혹은 김도수로, 창작 시기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사이로 추정된다. 작품의 배경은 명나라이며, 여양후(汝陽侯) 화욱과 정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화진이 형 화춘과 그의 어머니인 심부인으로 인한 가정의 위기와 엄숭을 비롯한 간신들로 인한 조정의 위기를 ‘충’과 ‘효’를 바탕으로 극복하고 천하를 안정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가문 소설이다.
철령위(鐵嶺衛)는 1387년(우왕 13), 명나라의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에 소속된 위소(衛所) 가운데 하나로, 명이 고려의 철령 이북 땅에 설치하고자 하였던 직할지이다. 1387년(우왕 13)에 명나라에서 과거 원나라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소속 인호(人戶)를 직접 관할하고자 철령위를 설치하였는데, 고려 측은 이를 해당 지역의 영토를 차지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하여 1388년(우왕 14)에 요동을 공격하게 되었다.
철령위 (鐵嶺衛)
철령위(鐵嶺衛)는 1387년(우왕 13), 명나라의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에 소속된 위소(衛所) 가운데 하나로, 명이 고려의 철령 이북 땅에 설치하고자 하였던 직할지이다. 1387년(우왕 13)에 명나라에서 과거 원나라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소속 인호(人戶)를 직접 관할하고자 철령위를 설치하였는데, 고려 측은 이를 해당 지역의 영토를 차지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하여 1388년(우왕 14)에 요동을 공격하게 되었다.
1385년(우왕 11)에 진헌(進獻: 중국에 조공하기 위하여 각 도에서 받아들인 공물)을 위하여 설치한 관서.
점우색 (點牛色)
1385년(우왕 11)에 진헌(進獻: 중국에 조공하기 위하여 각 도에서 받아들인 공물)을 위하여 설치한 관서.
충량과는 조선 영조 때 강화 충렬사(忠烈祠)와 남한산성 현절사(顯節祠)에 제향된 충신의 후손과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인의 후손을 대상으로 시행한 과거이다. 충량과라는 용어는 영조 대에만 사용하였지만 동일한 성격의 시험이 고종 때까지 빈번하게 시행되었다.
충량과 (忠良科)
충량과는 조선 영조 때 강화 충렬사(忠烈祠)와 남한산성 현절사(顯節祠)에 제향된 충신의 후손과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인의 후손을 대상으로 시행한 과거이다. 충량과라는 용어는 영조 대에만 사용하였지만 동일한 성격의 시험이 고종 때까지 빈번하게 시행되었다.
임경업 초상은 조선 중기의 무신 임경업의 초상이다.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160㎝, 가로 90㎝이다. 호피를 두른 교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이다. 의자 뒤 오른쪽에 향궤를 놓고 사자 항로와 꽃병을 배치하였다. 옷에는 상서로운 구름무늬인 서운문의 흉배가 있는데, 이는 명나라의 이국적인 풍격이다. 이 영정은 조선 중기 명나라의 초상화 양식이 전래되고, 이를 조선 후기에 이식하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조선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임경업 초상 (林慶業 肖像)
임경업 초상은 조선 중기의 무신 임경업의 초상이다.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160㎝, 가로 90㎝이다. 호피를 두른 교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이다. 의자 뒤 오른쪽에 향궤를 놓고 사자 항로와 꽃병을 배치하였다. 옷에는 상서로운 구름무늬인 서운문의 흉배가 있는데, 이는 명나라의 이국적인 풍격이다. 이 영정은 조선 중기 명나라의 초상화 양식이 전래되고, 이를 조선 후기에 이식하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조선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려후기 판종부시사, 밀직부사, 지문하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장방평 (張方平)
고려후기 판종부시사, 밀직부사, 지문하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홍상재는 고려 후기 상장군, 예부상서, 밀직 등을 지낸 무신이다. 주로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우왕 대 고려와 명의 관계가 악화되었는데, 1384년(우왕 10)에는 운남에 유배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이듬해 파견된 정몽주에 의해 구출되어 돌아왔다.
홍상재 (洪尙載)
홍상재는 고려 후기 상장군, 예부상서, 밀직 등을 지낸 무신이다. 주로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우왕 대 고려와 명의 관계가 악화되었는데, 1384년(우왕 10)에는 운남에 유배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이듬해 파견된 정몽주에 의해 구출되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