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재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 상장군, 예부상서, 밀직 등을 지낸 무신.
이칭
  • 봉호당산군(唐山君)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 사망 연도1391년(공양왕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상장군|밀직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최봉준 (한림대학교 강의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1월 2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홍상재는 고려 후기 상장군, 예부상서, 밀직 등을 지낸 무신이다. 주로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우왕 대 고려와 명의 관계가 악화되었는데, 1384년(우왕 10)에는 운남에 유배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이듬해 파견된 정몽주에 의해 구출되어 돌아왔다.

정의

고려 후기 상장군, 예부상서, 밀직 등을 지낸 무신.

가계 및 인적 사항

홍상재(洪尙載)의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아버지는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 홍탁(洪鐸)이다. 채하중(蔡河中)의 사위이다. 1391년(공양왕 3) 12월에 사망하였다.

주요 활동

1357년(공민왕 6)에 순천에 유배되어 있던 홍상재의 장인 채하중이 승려 달선(達禪)의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죽은 사건이 있었다. 홍상재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장형을 당한 후 유배되었다.

1368년(공민왕 17)는 처음으로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금릉(金陵)에서 명(明)이 건국되자 조정은 홍상재와 감문위상호군(監門衛上護軍) 이하생(李夏生)을 함께 파견하여 하례하였다. 1374년(공민왕 23)에는 명의 사신 임밀(林密)과 채빈(蔡斌)의 추천을 받아 관반(館伴)에서 밀직(密直)이 되었다.

1382년(우왕 8)에 명에 파견되어 요동에서 입국을 기다리는 도중에 요동도사(遼東都司)가 몇 년 간의 세공(歲貢)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접수를 거부하자 되돌아왔다. 1383년(우왕 9) 11월에 하정사(賀正使)로 다시 명에 파견되었으나, 명의 요구에 맞춰 겨우 마련한 세공물이 과거 5년 동안의 세공 약속과 다르다고 하여 김보생(金寶生) · 이자용(李子庸) 등과 함께 장형을 당한 후에 윈난〔雲南〕에 유배되었다.

이 때문에 1385년(우왕 11)에 조정에서 하성절사(賀聖節使)를 파견하려고 하였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밀직부사(密直副使) 진평중(陳平仲)은 명에 파견될 사신의 물망에 오르자 집권자 임견미(林堅味)에게 노비 90여 구(口)를 뇌물로 바치고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자 정몽주(鄭夢周)가 대신 파견되었다. 정몽주는 30일이나 늦게 출발하였으나, 기일에 맞춰 난징〔南京〕에 도착하여 홍상재 등을 유배지에서 모두 석방시켰다.

참고문헌

  • 원전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논문

  • - 이형우, 「고려 우왕대의 정치적 추이와 포은 정몽주」(『포은학연구』 12, 포은학회, 2013)

  • - 박성주, 「고려말 여·명 간 조공책봉관계의 전개와 그 성격」(『경주사학』 23, 동국대학교 사학회, 2004)

주석

  • 주1

    : 고려 시대에, 서울에 묵고 있는 외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임시로 임명하던 정삼품 벼슬. 우리말샘

  • 주2

    : 해마다 지방에서 나라에 바치던 공물(貢物). 우리말샘

  • 주3

    : 조선 시대에,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축하하러 중국으로 가던 사신. 동지와 정월이 가까이 있으므로 동지사(冬至使)가 정조사를 겸하였다. 우리말샘

  • 주4

    : 조선 시대에, 중국 황제ㆍ황후ㆍ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신. 우리말샘

  • 주5

    : 고려 시대에, 밀직사에 속한 정삼품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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