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상장군과 추밀원부사를 역임한 무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같은 해 10월에는 도독사(都督使) 김방경(金方慶)과 함께 여몽연합군(麗蒙聯合軍)으로 일본원정에 참여하였다. 이때 고려군은 중군과 좌우군으로 이루어진 삼익군(三翼軍)으로 편성되었으며, 김신은 그중에서 좌군사를 맡았다. 이키섬〔壹岐島〕에 도착한 여몽연합군은 항복을 청하였다가 다시 싸우는 등 기만전술로 맞서는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그러나 좌부원수(左副元首) 유복형(劉復亨)이 유시(流矢)에 맞아 큰 부상을 입자 여몽연합군은 돌연 싸움을 멈추었는데, 그날 밤에 불어온 폭풍우로 인하여 전함들이 크게 파손되었다. 그 사이에 김신은 익사하였다.
김신의 사망 이후에 김방경은 익사할 위기에 처한 주장(主將)을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좌군 지병마사(知兵馬事) 위득유(韋得儒)를 파직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위득유와 노진의(盧進義)가 모반 혐의로 김방경을 무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충렬왕과 유경(柳璥)이 원 조정에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등 이 사건은 고려와 원 사이의 외교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광평공(廣平公) 왕혜(王譓)가 김신의 장인 왕연의 노비들을 빼앗았는데, 김신이 소송을 통해 되찾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김신이 일본원정에서 죽자 노비들은 다시 왕혜의 소유가 되었고, 왕혜는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에게 그 노비들을 바쳤다. 그러자 제국대장공주는 노비의 일가친척을 모두 불러모아 자신의 소유로 삼았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원사(元史)』
논문
- 이재범, 「고려와 몽골 연합군의 일본정벌에 관한 재인식」(『사림』 48, 2014)
- 이정신, 「원간섭기 원종·충렬왕의 정치적 행적」(『한국인물사연 』 10, 2008)
- 김위현, 「여·원 일본정벌군의 출정과 여·원관계」(『국사관논총』 9, 198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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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목표물을 벗어나 빗나간 화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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