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유주[문화(文化)]이다. 할아버지는 유인기(柳仁琦), 아버지는 유보발(柳甫發이다. 유보발의 묘지명에 의하면, 첫째 아들의 이름이 유계고(柳繼高)인데, 유계조(柳繼祖)와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그 외 원선지(元善之)의 묘지명에 따르면, 유계조의 외할아버지는 첨의(僉議) 원선지(元善之)이다. 원(元)의 심양로(瀋陽路) 다루가치〔達魯花赤〕 홀실첩목이(忽失帖木耳), 홍유귀(洪有龜), 신양군(新陽君) 노영(盧瑛)과는 동서지간이다.
1362년(공민왕11)에 홍건적이 재차 침입할 것이니 협공하라는 원 순제의 명령에 따라 좌정승(左政丞) 유탁(柳濯)을 서북면홍적방어제군도통사(西北面紅賊防禦諸軍都統使)로 삼는 등 각 도의 군사 지휘관을 임명하는 인사가 있었다. 이때 유계조는 공주도병마사(公州道兵馬使)에 임명되었으나, 홍건적이 이미 궤멸되었다는 정보에 따라 해임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겨울에 홍건적이 재차 침공해 오자, 유계조는 도지휘사(都指揮使) 이방실(李芳實)과 함께 박주(博州, 지금의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적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뒀다. 개경 수복 과정에서 흥왕사(興王寺)의 변(變)이 발생하자 이를 진압한 공로로 1등공신에 책봉되었다.
유계조는 이후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수복한 공로로 수복경성일등공신(收復京城一等功臣)에 책봉되었으며, 1363년 11월에는 홍건적의 1차 침입을 격퇴한 공로로 기해격주홍적일등공신(己亥擊走紅賊一等功臣)에 책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