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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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조각·그림·명문 등이 새겨진 암각화이다. 1970년 동국대학교박물관 학술조사단이 발견했고 1973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선사시대 점각 기하학적 문양과 각종 동물상 및 인물상이 새겨져 있는 상부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선각화와 명문이 있는 하부로 나눠진다. 상부의 문양은 신석기시대 무늬토기의 기하학문양을 이어받은 것으로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부는 선각화와 명문이 뒤섞여 있는데 명문에 신라 화랑의 이름과 관직 등이 있어서 신라사 연구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蔚州 川前里 銘文과 巖刻畵)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조각·그림·명문 등이 새겨진 암각화이다. 1970년 동국대학교박물관 학술조사단이 발견했고 1973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선사시대 점각 기하학적 문양과 각종 동물상 및 인물상이 새겨져 있는 상부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선각화와 명문이 있는 하부로 나눠진다. 상부의 문양은 신석기시대 무늬토기의 기하학문양을 이어받은 것으로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부는 선각화와 명문이 뒤섞여 있는데 명문에 신라 화랑의 이름과 관직 등이 있어서 신라사 연구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광산김씨 예안파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고문서 (光山金氏 禮安派 宗家 古文書)
광산김씨 예안파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황진가 고문서는 조선시대 무신 황진의 후손가에 전래된 문서로 종가문서이다. 16종 125점으로,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주로 황진과 그의 두 아들에 관계된 문서이다. 전북 남원시에 위치한 두 후손(황호연, 황정열)의 집에서 보관하는데, 일부는 남원시 ‘무민공 황진 기념관’에 있다. 1575년 황진이 외할머니에게 받은 분재문서, 각종 소지·유지·교지, 고종 연간에 작성된 상서 등이 전한다. 황호연 소장본은 4종 58점이, 황맹연 소장본은 12종 67점이 있다. 조선 중기의 정치·경제·사회 및 관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황진의 전기 자료이기도 하다.
황진가 고문서 (黃進家 古文書)
황진가 고문서는 조선시대 무신 황진의 후손가에 전래된 문서로 종가문서이다. 16종 125점으로,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주로 황진과 그의 두 아들에 관계된 문서이다. 전북 남원시에 위치한 두 후손(황호연, 황정열)의 집에서 보관하는데, 일부는 남원시 ‘무민공 황진 기념관’에 있다. 1575년 황진이 외할머니에게 받은 분재문서, 각종 소지·유지·교지, 고종 연간에 작성된 상서 등이 전한다. 황호연 소장본은 4종 58점이, 황맹연 소장본은 12종 67점이 있다. 조선 중기의 정치·경제·사회 및 관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황진의 전기 자료이기도 하다.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창녕 계성 고분군 (昌寧 桂城 古墳群)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왕경묘(王卿墓)는 황해남도 신천군 새길리에 있는 대방군 장잠현 현장 왕경의 무덤으로 알려진 벽돌덧널무덤이다. 1962년 농업협동조합에서 진행한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네 벽과 바닥은 벽돌로 쌓은 반면, 천장은 널돌로 편평하게 덮여 있는 점은 고구려 돌방무덤과 비슷한 점이 있어 벽돌방무덤에서 돌방무덤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형태로 판단되기도 한다. 무덤에서 발견된 묘지명 벽돌에서는 '장잠현(守長岑) 현장(縣長) 왕경(王卿)'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대방군 장잠현의 위치 비정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왕경묘 (王卿墓)
왕경묘(王卿墓)는 황해남도 신천군 새길리에 있는 대방군 장잠현 현장 왕경의 무덤으로 알려진 벽돌덧널무덤이다. 1962년 농업협동조합에서 진행한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네 벽과 바닥은 벽돌로 쌓은 반면, 천장은 널돌로 편평하게 덮여 있는 점은 고구려 돌방무덤과 비슷한 점이 있어 벽돌방무덤에서 돌방무덤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형태로 판단되기도 한다. 무덤에서 발견된 묘지명 벽돌에서는 '장잠현(守長岑) 현장(縣長) 왕경(王卿)'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대방군 장잠현의 위치 비정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장안성 축성의 책임을 맡았던 관리.
상부약모리 (相夫若牟利)
삼국시대 고구려 장안성 축성의 책임을 맡았던 관리.
북한 황해남도 은율군에 있는 철기시대 널무덤·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은율 운성리 유적 (殷栗 雲城里 遺蹟)
북한 황해남도 은율군에 있는 철기시대 널무덤·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신라토기는 고대국가 신라 영역에서 생산하여 소비한 일체의 토기이다. 대체로 3세기 후반부터 신라 멸망 때까지 생산·소비된 토기를 말한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는 와질토기를 중심으로 연질·도질토기가 병존했고, 5세기 초부터 도질·연질토기만 생산되면서 전형적인 신라양식 토기가 성립되었다. 이후 낙동강 동안 지역으로 범위가 확대되며, 6세기 후반에는 크기가 작아지고 장식도 간략해졌다. 7세기 후반의 인화문 유행, 8세기 후반의 몸통이 긴 병·호 및 편호·편병·덧띠무늬병 유행을 거쳐 10세기에는 문양새김이 사라지고 고려 도기와 자기 형태로 계승되었다.
신라토기 (新羅土器)
신라토기는 고대국가 신라 영역에서 생산하여 소비한 일체의 토기이다. 대체로 3세기 후반부터 신라 멸망 때까지 생산·소비된 토기를 말한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는 와질토기를 중심으로 연질·도질토기가 병존했고, 5세기 초부터 도질·연질토기만 생산되면서 전형적인 신라양식 토기가 성립되었다. 이후 낙동강 동안 지역으로 범위가 확대되며, 6세기 후반에는 크기가 작아지고 장식도 간략해졌다. 7세기 후반의 인화문 유행, 8세기 후반의 몸통이 긴 병·호 및 편호·편병·덧띠무늬병 유행을 거쳐 10세기에는 문양새김이 사라지고 고려 도기와 자기 형태로 계승되었다.
의자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1~660년이며 무왕의 맏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 불렸다. 대내적으로는 유교를 통해 집권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대야성을 함락시켜 신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런데 고구려 공략에 실패한 당이 신라와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를 공격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5천의 결사대로 분전했으나 대패하고 항복 후 왕자·대신·장병·백성들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다가 며칠 뒤 사망했다.
의자왕 (義慈王)
의자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1~660년이며 무왕의 맏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 불렸다. 대내적으로는 유교를 통해 집권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대야성을 함락시켜 신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런데 고구려 공략에 실패한 당이 신라와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를 공격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5천의 결사대로 분전했으나 대패하고 항복 후 왕자·대신·장병·백성들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다가 며칠 뒤 사망했다.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돌무지무덤. 적석묘.
천추총 (千秋塚)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돌무지무덤. 적석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직.
판관 (判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직.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 상활룡촌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돌무지무덤·돌방무덤 등이다. 돌무지무덤은 3기가 조사되었다. 규모는 대체로 비슷하며 평면 형태는 네모모양〔方形〕이다. 계단식돌무지무덤은 모두 5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네모모양이며, 길이와 너비는 각각 8m, 높이는 약 2m이다. 돌방무덤은 6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파괴되어 뚜껑돌은 대부분 결실되었다. 고구려고분의 묘제 변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대체로 축조시기는 고구려 중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집안 상활룡촌 고분군 (集安 上活龍村 古墳群)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 상활룡촌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돌무지무덤·돌방무덤 등이다. 돌무지무덤은 3기가 조사되었다. 규모는 대체로 비슷하며 평면 형태는 네모모양〔方形〕이다. 계단식돌무지무덤은 모두 5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네모모양이며, 길이와 너비는 각각 8m, 높이는 약 2m이다. 돌방무덤은 6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파괴되어 뚜껑돌은 대부분 결실되었다. 고구려고분의 묘제 변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대체로 축조시기는 고구려 중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기와를 굽던 가마터.
경주 다경 기와가마터 (慶州 多慶 기와가마터)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기와를 굽던 가마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소재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옻골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 소장 전적 (옻골 慶州崔氏 百弗庵派 宗家 所藏 典籍)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소재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지공파 하협종택에 전래된 문서이다. 2006년 11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분재기 22점, 호적관련문서 42점, 소지류 26점, 시권 7점 등 총 126점이다. 분재기는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 말까지의 기록인데, 재산의 분류가 부변(父邊)과 모변(母邊)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상, 자식은 물론 친인척에게 분재한 기록 등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호적류는 지역의 유력한 사대부가문의 가족과 재산 및 인구의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진주 단목리 단지 하협 종택 소장 고문서 (晋州 丹牧里 丹池 河悏 宗宅 所藏 古文書)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지공파 하협종택에 전래된 문서이다. 2006년 11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분재기 22점, 호적관련문서 42점, 소지류 26점, 시권 7점 등 총 126점이다. 분재기는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 말까지의 기록인데, 재산의 분류가 부변(父邊)과 모변(母邊)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상, 자식은 물론 친인척에게 분재한 기록 등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호적류는 지역의 유력한 사대부가문의 가족과 재산 및 인구의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월곡리에 있는 충청대학교 부속 박물관.
충청대학교 박물관 (忠淸大學校 博物館)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월곡리에 있는 충청대학교 부속 박물관.
영동계산리유적(永東稽山里遺蹟)은 충청북도 영동군 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건물터 유적이다. 이 유적은 경부고속철도 건설용지에 편입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건물터, 기와가마터, 우물터, 폐기와무덤터 등이 확인되었으며, 명문기와와 자기류가 다수 수습되었다. 수습된 명문와에는 ‘태평흥국 칠년(太平興國 七年)’의 연대가 각인되었으며, 해무리굽 청자완류 등과 함께 유적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영동 계산리 유적 (永東 稽山里 遺蹟)
영동계산리유적(永東稽山里遺蹟)은 충청북도 영동군 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건물터 유적이다. 이 유적은 경부고속철도 건설용지에 편입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건물터, 기와가마터, 우물터, 폐기와무덤터 등이 확인되었으며, 명문기와와 자기류가 다수 수습되었다. 수습된 명문와에는 ‘태평흥국 칠년(太平興國 七年)’의 연대가 각인되었으며, 해무리굽 청자완류 등과 함께 유적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청자상감‘王’명잔탁은 고려 후기 제작된 ‘왕(王)’자 명문 청자 잔탁이다. 강진에서 생산된 것으로 ‘왕’명 청자는 13세기 후반 도교 의례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강진 사당리 7호와 41호 혹은 강진 일대에서 ‘왕’명 청자가 수습되고 있어 생산지는 강진 사당리 일대로 여겨진다.
청자 상감 ‘왕’명 잔탁 (靑瓷 象嵌 ‘王’銘 盞托)
청자상감‘王’명잔탁은 고려 후기 제작된 ‘왕(王)’자 명문 청자 잔탁이다. 강진에서 생산된 것으로 ‘왕’명 청자는 13세기 후반 도교 의례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강진 사당리 7호와 41호 혹은 강진 일대에서 ‘왕’명 청자가 수습되고 있어 생산지는 강진 사당리 일대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