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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牧使)는 고려시대 · 조선시대, 지방의 고을에 설치한 목을 관할하던 정3품의 지방 장관이다. 일반 수령처럼 수령7사를 주임무로 하였으며, 진관의 책임자인 첨절제사를 겸직하였다.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일부 조정하였지만 목의 수는 20곳을 유지하였다.
목사 (牧使)
목사(牧使)는 고려시대 · 조선시대, 지방의 고을에 설치한 목을 관할하던 정3품의 지방 장관이다. 일반 수령처럼 수령7사를 주임무로 하였으며, 진관의 책임자인 첨절제사를 겸직하였다.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일부 조정하였지만 목의 수는 20곳을 유지하였다.
조선 후기에, 홍문관원,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목인재 (睦仁㘽)
조선 후기에, 홍문관원,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승지, 강원도관찰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목임유 (睦林儒)
조선 후기에, 승지, 강원도관찰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삼국시대 백제의 고위 관등인 하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목윤귀 (木尹貴)
삼국시대 백제의 고위 관등인 하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민간 목활자 및 인쇄 용구는 조선 후기에 민간에서 책을 찍어내는 데 사용한 목활자와 용구이다.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호남지방과 호서지방에서 삯을 받고 민간의 문집류, 족·과보류(族·科譜類), 제전기류, 지방지류 등을 찍는 데 사용하였다. 활자체가 인서체이면서도 글자의 오른쪽에서 길게 삐치는 특이한 모양에 따라 “지겟다리획 인서체 목활자”로 이름 붙였다. 이 목활자는 순조 초기에 만들어져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것을 만들고 보충해 가면서 사용하여 활자 폼은 조잡하다. 호남과 호서지방에서 민간 책들을 찍어 지방문화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민간 목활자 및 인쇄 용구 (民間 木活字 및 印刷 用具)
민간 목활자 및 인쇄 용구는 조선 후기에 민간에서 책을 찍어내는 데 사용한 목활자와 용구이다.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호남지방과 호서지방에서 삯을 받고 민간의 문집류, 족·과보류(族·科譜類), 제전기류, 지방지류 등을 찍는 데 사용하였다. 활자체가 인서체이면서도 글자의 오른쪽에서 길게 삐치는 특이한 모양에 따라 “지겟다리획 인서체 목활자”로 이름 붙였다. 이 목활자는 순조 초기에 만들어져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것을 만들고 보충해 가면서 사용하여 활자 폼은 조잡하다. 호남과 호서지방에서 민간 책들을 찍어 지방문화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불상.
서울 수국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및 복장유물 (서울 守國寺 木造 阿彌陀如來 坐像 및 腹藏遺物)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불상.
개운사에 봉안된 고려시대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발원문.
서울 개운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및 발원문 (서울 開運寺 木造 阿彌陀如來 坐像 및 發願文)
개운사에 봉안된 고려시대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발원문.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수군진이다. 선조 연간에 경기도 강화에 설치되었고 1666년(현종 7) 통진으로 이전 설치되었다. 이 수군진은 바다를 통해 강화도와 도성으로 진입하는 외적을 통제하던 수군 기지 가운데 하나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미군 함대에 포격을 가하여 미군의 북상을 저지한 곳이다.
김포 덕포진 (金浦 德浦鎭)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수군진이다. 선조 연간에 경기도 강화에 설치되었고 1666년(현종 7) 통진으로 이전 설치되었다. 이 수군진은 바다를 통해 강화도와 도성으로 진입하는 외적을 통제하던 수군 기지 가운데 하나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미군 함대에 포격을 가하여 미군의 북상을 저지한 곳이다.
면직(綿織)은 목화에서 면실을 자아 면직물을 짜는 기술이다. 우리나라에서 면직이 시작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이며 당시에는 백첩포(白疊布)로 명명되었다. 면의 재배가 본격화된 것은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12년(1363) 문익점이 교지국(交趾國)에서 새로운 면종자를 반입하면서부터이다. 면직은 면실 잣기와 면직물 제직으로 이루어진다.
면직 (綿織)
면직(綿織)은 목화에서 면실을 자아 면직물을 짜는 기술이다. 우리나라에서 면직이 시작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이며 당시에는 백첩포(白疊布)로 명명되었다. 면의 재배가 본격화된 것은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12년(1363) 문익점이 교지국(交趾國)에서 새로운 면종자를 반입하면서부터이다. 면직은 면실 잣기와 면직물 제직으로 이루어진다.
고려·조선시대에 차와 술·소채·과일·약 등의 일을 주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다방 (茶房)
고려·조선시대에 차와 술·소채·과일·약 등의 일을 주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움무덤. 토광묘.
보령 창암리 고분 (保寧 創巖里 古墳)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움무덤. 토광묘.
조선시대 대도호부(大都護府)·도호부·목(牧) 등에 각각 파견되었던 관직.
사 (使)
조선시대 대도호부(大都護府)·도호부·목(牧) 등에 각각 파견되었던 관직.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무덤군·토기류 관련 복합유적. 유물산포지.
대구 시지동 유적 (大邱 時至洞 遺蹟)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무덤군·토기류 관련 복합유적. 유물산포지.
조선시대 문신 강홍중이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1625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동사록 (東槎錄)
조선시대 문신 강홍중이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1625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구덩식돌방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다. 고봉산(古鳳山) 동남쪽 경사면에 분포되어 있다. 12기가 군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 소형고분들로서 제2호분만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고, 6기(제1·7·9·10·11·12호분)는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 나머지 6기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으로 되어 있다. 부장토기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뚜껑있는 소형 굽다리접시들이다. 이것들은 서울 가락동과 방이동고분들에서도 보여 백제 후기 토기로 간주된다.
대덕 주산리 고분군 (大德 注山里 古墳群)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구덩식돌방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다. 고봉산(古鳳山) 동남쪽 경사면에 분포되어 있다. 12기가 군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 소형고분들로서 제2호분만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고, 6기(제1·7·9·10·11·12호분)는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 나머지 6기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으로 되어 있다. 부장토기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뚜껑있는 소형 굽다리접시들이다. 이것들은 서울 가락동과 방이동고분들에서도 보여 백제 후기 토기로 간주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전식(全湜, 1563∼1642)을 그린 초상화이다. 199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옥천면 동이면 금암리목담영당(鶩潭影堂)에 봉안되어 있다. 1819년에 상주(尙州)에서 옮겨 배향한 것이라 한다. 단령(團領)과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착용하고 오른쪽을 향하여 의자[交椅子]에 앉아서 발을 의답(椅踏) 위에 올려놓고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이다. 17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도상을 따르고 있다. 심하게 박락되고 퇴락하여 정확한 이모 시기를 추측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전식 초상 (全湜 肖像)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전식(全湜, 1563∼1642)을 그린 초상화이다. 199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옥천면 동이면 금암리목담영당(鶩潭影堂)에 봉안되어 있다. 1819년에 상주(尙州)에서 옮겨 배향한 것이라 한다. 단령(團領)과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착용하고 오른쪽을 향하여 의자[交椅子]에 앉아서 발을 의답(椅踏) 위에 올려놓고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이다. 17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도상을 따르고 있다. 심하게 박락되고 퇴락하여 정확한 이모 시기를 추측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일제강점기 「백화」, 「소년」, 「다산선생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독립운동가.
김복진 (金復鎭)
일제강점기 「백화」, 「소년」, 「다산선생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독립운동가.
계수관은 고려 및 조선시대 지방 제도에서 일정 권역의 가장 격이 높은 군현(郡縣), 혹은 그곳의 외관(外官)이다. 해당 권역의 거점 내지 대표로서 기능을 수행하였다. 통상 경(京)·목(牧)·도호부(都護府)로 구성되며, 군사와 사법, 도량형 관리 등에서 관내 외관에 대한 상급 체계로 기능하거나 관할 지역 전체를 대표하여 각종 의례와 행사를 주관하였다.
계수관 (界首官)
계수관은 고려 및 조선시대 지방 제도에서 일정 권역의 가장 격이 높은 군현(郡縣), 혹은 그곳의 외관(外官)이다. 해당 권역의 거점 내지 대표로서 기능을 수행하였다. 통상 경(京)·목(牧)·도호부(都護府)로 구성되며, 군사와 사법, 도량형 관리 등에서 관내 외관에 대한 상급 체계로 기능하거나 관할 지역 전체를 대표하여 각종 의례와 행사를 주관하였다.
「신숙주부인전」은 1923년에 박종화가 발표한 「목 매이는 여자」를 표지 및 판권만 바꿔, 1930년에 회동서관에서 고전소설 형태로 간행한 작품이다. 내용은 「목 매이는 여자」와 동일하다. 당시 신숙주 부인 일화를 사실로 인지하게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텍스트다.
신숙주부인전 (申叔舟夫人傳)
「신숙주부인전」은 1923년에 박종화가 발표한 「목 매이는 여자」를 표지 및 판권만 바꿔, 1930년에 회동서관에서 고전소설 형태로 간행한 작품이다. 내용은 「목 매이는 여자」와 동일하다. 당시 신숙주 부인 일화를 사실로 인지하게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텍스트다.
삼은(三隱)은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혹은 도은(陶隱) 이숭인) 등 은(隱)으로 끝나는 호를 가진 고려시대 후기의 세 학자를 일컫는다. 그 연원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구전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기록은 20세기 초에 제작된 「삼은각비문(三隱閣碑文)」이다. 그런데 1954년에 이병도의 『국사대관』에서 여러 사료를 소개하며 길재 대신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포함시켰다. 일제강점기 때의 학자, 문일평도 이병도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학계에서는 두 가지 설이 모두 통용되고 있다.
삼은 (三隱)
삼은(三隱)은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혹은 도은(陶隱) 이숭인) 등 은(隱)으로 끝나는 호를 가진 고려시대 후기의 세 학자를 일컫는다. 그 연원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구전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기록은 20세기 초에 제작된 「삼은각비문(三隱閣碑文)」이다. 그런데 1954년에 이병도의 『국사대관』에서 여러 사료를 소개하며 길재 대신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포함시켰다. 일제강점기 때의 학자, 문일평도 이병도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학계에서는 두 가지 설이 모두 통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