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문하시중"
검색결과 총 14건
고려시대 중서문하성의 종1품 재신(宰臣)관직.
수문하시중 (守門下侍中)
고려시대 중서문하성의 종1품 재신(宰臣)관직.
고려시대 상서성의 장관.
상서령 (尙書令)
고려시대 상서성의 장관.
고려전기 제10대 정종의 제4왕비.
용절덕비 (容節德妃)
고려전기 제10대 정종의 제4왕비.
우정승은 고려시대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우정승 (右政丞)
우정승은 고려시대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고려전기 사선, 문하시랑평장사, 내사령 등을 역임한 무신.
위수여 (韋壽餘)
고려전기 사선, 문하시랑평장사, 내사령 등을 역임한 무신.
좌시중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우왕대에 문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재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좌시중 (左侍中)
좌시중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우왕대에 문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재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재신은 고려시대 국왕을 보좌하여 국정의 중대사를 논의했던 중서문하성의 재상이다. 중서문하성의 상급 관료인 중서령·문하시중·평장사·참지정사·정당문학·지문하성사를 말한다. 중서문하성은 재신과 낭사로 구별되어 재신의 공간은 재부(宰府), 낭사의 공간은 간원(諫院)으로 불렸다. 재신은 조직상 중서성 소속과 문하성 소속으로 구분되었으나 실제로는 중서문하성의 관료로 운영되었다. 신료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백관을 통솔하고 국정의 중대사를 논의하며 6부 판사를 겸직하여 해당 관부의 업무를 관할했다. 업무를 수행한 대가로 전시과와 녹봉을 받았다.
재신 (宰臣)
재신은 고려시대 국왕을 보좌하여 국정의 중대사를 논의했던 중서문하성의 재상이다. 중서문하성의 상급 관료인 중서령·문하시중·평장사·참지정사·정당문학·지문하성사를 말한다. 중서문하성은 재신과 낭사로 구별되어 재신의 공간은 재부(宰府), 낭사의 공간은 간원(諫院)으로 불렸다. 재신은 조직상 중서성 소속과 문하성 소속으로 구분되었으나 실제로는 중서문하성의 관료로 운영되었다. 신료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백관을 통솔하고 국정의 중대사를 논의하며 6부 판사를 겸직하여 해당 관부의 업무를 관할했다. 업무를 수행한 대가로 전시과와 녹봉을 받았다.
좌정승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좌정승 (左政丞)
좌정승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고려 후기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 : 都僉議府)의 종1품 관직.
정승 (政丞)
고려 후기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 : 都僉議府)의 종1품 관직.
고려전기 거란의 고려 침략 당시의 장군.
유방 (庾方)
고려전기 거란의 고려 침략 당시의 장군.
조민수는 고려 후기에 문하시중, 좌군도통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공민왕 대 중반부터 무장으로서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는 데 여러 차례 공을 세웠고, 우왕 대에 문하시중에까지 올랐다.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좌군도통사로서 우군도통사 이성계와 함께 전군을 이끌었고, 위화도회군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전제 개혁에 반대하며 이성계 일파와 대립하다가 유배되었다.
조민수 (曺敏修)
조민수는 고려 후기에 문하시중, 좌군도통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공민왕 대 중반부터 무장으로서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는 데 여러 차례 공을 세웠고, 우왕 대에 문하시중에까지 올랐다.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좌군도통사로서 우군도통사 이성계와 함께 전군을 이끌었고, 위화도회군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전제 개혁에 반대하며 이성계 일파와 대립하다가 유배되었다.
중찬은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이다. 1275년(충렬왕 1)에 관제를 개편하면서 중서문하성의 문하시중을 첨의부 중찬으로 바꾸고 우 · 좌 각 1명씩 두었다. 129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으로 고쳤다가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다시 중찬이라 하였다. 130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정승(政丞)으로 바꾸고 정원을 1명으로 줄였다. 1330년(충숙왕 17)에 충혜왕이 즉위하여 도첨의중찬으로 개칭하였지만 곧이어 충숙왕이 복위하여 정승으로 되돌리고 좌 · 우 2명을 두었다.
중찬 (中贊)
중찬은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이다. 1275년(충렬왕 1)에 관제를 개편하면서 중서문하성의 문하시중을 첨의부 중찬으로 바꾸고 우 · 좌 각 1명씩 두었다. 129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으로 고쳤다가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다시 중찬이라 하였다. 130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정승(政丞)으로 바꾸고 정원을 1명으로 줄였다. 1330년(충숙왕 17)에 충혜왕이 즉위하여 도첨의중찬으로 개칭하였지만 곧이어 충숙왕이 복위하여 정승으로 되돌리고 좌 · 우 2명을 두었다.
고려시대 때, 동지공거, 권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영인 (趙永仁)
고려시대 때, 동지공거, 권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
첨의중찬 (僉議中贊)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