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족교육"
검색결과 총 9건
1984년 ‘민족교육을 추진하는 연락회’, ‘민족강사회’, ‘민족교육 문화센터’ 등 3개의 조직체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
민족교육촉진협의회 (民族敎育促進協議會)
1984년 ‘민족교육을 추진하는 연락회’, ‘민족강사회’, ‘민족교육 문화센터’ 등 3개의 조직체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
1990년 재일코리안 2세·3세가 결성한 인권 단체.
재일한국민주인권협의회 (在日韓國民主人權協議會)
1990년 재일코리안 2세·3세가 결성한 인권 단체.
메리다한인학교는 멕시코 한인들이 메리다에 설립한 학교이다. 1909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되고 1910년 사관학교인 숭무학교를 세웠다. 그뒤 메리다지방회는 사낙타 경찰소에 한인 학교, 잇신캅 농장에 진성국어학교, 피시야 지역에 국어학교, 오스타파캅 지역에 의성국어학교, 레판 지역에 반도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1917년에는 해동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와 국사 등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한인 2세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메리다 한인학교 (Merida 韓人學校)
메리다한인학교는 멕시코 한인들이 메리다에 설립한 학교이다. 1909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되고 1910년 사관학교인 숭무학교를 세웠다. 그뒤 메리다지방회는 사낙타 경찰소에 한인 학교, 잇신캅 농장에 진성국어학교, 피시야 지역에 국어학교, 오스타파캅 지역에 의성국어학교, 레판 지역에 반도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1917년에는 해동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와 국사 등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한인 2세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한신교육사건은 1948년 전후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전개된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운동이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위한 국어강습소는 1946년 전국에 500여 개, 학생 수는 6만 명에 달했다. 1947년 GHQ(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재일조선인도 일본의 교육법에 따르도록 지시했고, 이를 어기는 학교는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야마구치현 지사가 1948년 3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한다고 통고를 하자 수많은 조선인이 현청 앞에서 투쟁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재일본조선인연맹은 4월 24일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킨 ‘교육투쟁 기념일’로 정했다.
한신교육사건 (阪神敎育事件)
한신교육사건은 1948년 전후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전개된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운동이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위한 국어강습소는 1946년 전국에 500여 개, 학생 수는 6만 명에 달했다. 1947년 GHQ(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재일조선인도 일본의 교육법에 따르도록 지시했고, 이를 어기는 학교는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야마구치현 지사가 1948년 3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한다고 통고를 하자 수많은 조선인이 현청 앞에서 투쟁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재일본조선인연맹은 4월 24일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킨 ‘교육투쟁 기념일’로 정했다.
재일한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재일 (在日)
재일한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조선교육연구회는 1946년 8월 안호상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신교육운동 연구단체이다. ‘민주교육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다가 ‘조선교육연구회’로 변경하였다. ‘새 조선은 교육에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주주의 교육’과 ‘민족 교육’을 강조하였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조선어학회, 진단학회 회원이 중심이 되었다. 중심 인물로는 안호상·손진태·사공환·최현배·안재홍 등이 있다. 『조선교육』을 창간하여 1949년까지 통권 18호를 발행하였다. 광복 직후 신교육 운동·민주주의 교육·민족 교육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체이다.
조선교육연구회 (朝鮮敎育硏究會)
조선교육연구회는 1946년 8월 안호상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신교육운동 연구단체이다. ‘민주교육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다가 ‘조선교육연구회’로 변경하였다. ‘새 조선은 교육에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주주의 교육’과 ‘민족 교육’을 강조하였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조선어학회, 진단학회 회원이 중심이 되었다. 중심 인물로는 안호상·손진태·사공환·최현배·안재홍 등이 있다. 『조선교육』을 창간하여 1949년까지 통권 18호를 발행하였다. 광복 직후 신교육 운동·민주주의 교육·민족 교육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체이다.
194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국민학교에서 창립된 초등교육 연구단체.
아동교육연구회 (兒童敎育硏究會)
194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국민학교에서 창립된 초등교육 연구단체.
간도교육자대회는 1920년대 간도 지역 교육을 담당했던 교육자들의 모임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잃지 않기 위해 민족교육기관 교육자들이 전 간도 지역에 산재해 있는 교육회를 활용하여 민족운동을 실시하고자 한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었지만 민족교육기관의 지속적인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간도교육자대회 (間島敎育者大會)
간도교육자대회는 1920년대 간도 지역 교육을 담당했던 교육자들의 모임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잃지 않기 위해 민족교육기관 교육자들이 전 간도 지역에 산재해 있는 교육회를 활용하여 민족운동을 실시하고자 한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었지만 민족교육기관의 지속적인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재일한국인교육헌장은 1969년 3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에 따라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 정책을 천명한 헌장이다. 한국에서 국민의 윤리와 정신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1968년 12월 5일 대통령에 의하여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되었는데, 그 취지를 해외에까지 전파하려 하였다. 일본에서도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 정책을 천명한 교육헌장이 만들어졌다.
재일한국인 교육헌장 (在日韓國人 敎育憲章)
재일한국인교육헌장은 1969년 3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에 따라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 정책을 천명한 헌장이다. 한국에서 국민의 윤리와 정신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1968년 12월 5일 대통령에 의하여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되었는데, 그 취지를 해외에까지 전파하려 하였다. 일본에서도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 정책을 천명한 교육헌장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