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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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중앙정보부가 서울대학교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구속한 사건.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民族主義比較硏究會 事件)
1967년 중앙정보부가 서울대학교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구속한 사건.
《과학조선》은 1933년 발명학회에서 김용관·박길룡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창간한 과학기술 대중잡지이다. 1930년대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다. 편집 체제는 B6판으로, 매호 1,000부씩 월간으로 발행되었다. 자금 사정과 조선총독부 당국의 탄압 등의 이유로 제때 간행되지 못하거나 휴간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39년부터 속간되어 1941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간행되었다. 2013년 우리나라 최초 과학종합잡지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과학조선 (科學朝鮮)
《과학조선》은 1933년 발명학회에서 김용관·박길룡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창간한 과학기술 대중잡지이다. 1930년대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다. 편집 체제는 B6판으로, 매호 1,000부씩 월간으로 발행되었다. 자금 사정과 조선총독부 당국의 탄압 등의 이유로 제때 간행되지 못하거나 휴간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39년부터 속간되어 1941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간행되었다. 2013년 우리나라 최초 과학종합잡지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하 물산장려운동과 병행하여 전개된 민족경제 자립운동의 한 형태.
금주단연운동 (禁酒斷煙運動)
일제강점기하 물산장려운동과 병행하여 전개된 민족경제 자립운동의 한 형태.
독사신론은 1908년 신채호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 역사서이다. 1908년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는데 『소년』에 「국사사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서론과 단군에서부터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상세(上世)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고대사를 반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의 민족주의사학이 식민사관에 대처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근거가 되는 역사서이다.
독사신론 (讀史新論)
독사신론은 1908년 신채호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 역사서이다. 1908년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는데 『소년』에 「국사사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서론과 단군에서부터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상세(上世)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고대사를 반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의 민족주의사학이 식민사관에 대처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근거가 되는 역사서이다.
1949년 독립운동가 채근식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학술서.
무장독립운동비사 (武裝獨立運動秘史)
1949년 독립운동가 채근식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학술서.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12월 5일 대한민국 교육의 지표를 담아 대통령령에 의해 반포된 헌장이다. 민족적 정체성과 근대화에 부합하는 윤리와 가치관의 형성을 기본 원리로 삼아 구성되어 있다. 학교 교육 및 사회교육의 목적과 내용, 방법을 민족주의와 근대화 전략에 따라 재편성하는데 큰 영향을 발휘했으나 전문 암송 및 의식에서의 낭독 의무화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유신체제의 정당화에 활용되는 등 정치적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1980년대 이후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었고, 1994년 문민정부 하에서 사실상 폐지되었다.
국민교육헌장 (國民敎育憲章)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12월 5일 대한민국 교육의 지표를 담아 대통령령에 의해 반포된 헌장이다. 민족적 정체성과 근대화에 부합하는 윤리와 가치관의 형성을 기본 원리로 삼아 구성되어 있다. 학교 교육 및 사회교육의 목적과 내용, 방법을 민족주의와 근대화 전략에 따라 재편성하는데 큰 영향을 발휘했으나 전문 암송 및 의식에서의 낭독 의무화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유신체제의 정당화에 활용되는 등 정치적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1980년대 이후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었고, 1994년 문민정부 하에서 사실상 폐지되었다.
국민윤리학은 국민공동생활의 원리와 현상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협동학문이다. 동시에 중등 및 고등교육 기관의 국민윤리 교과를 가르치기 위한 교과교육학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학문으로서의 국민윤리학의 성쇠는 국가교육과정에서의 국민윤리 교과의 위상 변화 및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같은 학문 외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받는다.
국민윤리학 (國民倫理學)
국민윤리학은 국민공동생활의 원리와 현상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협동학문이다. 동시에 중등 및 고등교육 기관의 국민윤리 교과를 가르치기 위한 교과교육학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학문으로서의 국민윤리학의 성쇠는 국가교육과정에서의 국민윤리 교과의 위상 변화 및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같은 학문 외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받는다.
삼균주의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소앙이 독립운동의 기본방략 및 미래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하여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사상이다. 삼균주의의 대전제는 ‘완전균등’으로,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완전균등을 표방하였다. 개인 간의 균등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통해, 민족 간의 균등은 민족자결을 통해, 국가 간의 균등은 모든 국가들이 서로 간섭·침탈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룩된다고 보았다. 한국독립당의 정강으로 채택되어 독립운동의 기본이념이 되었고, 1941년에는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공포했다.
삼균주의 (三均主義)
삼균주의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소앙이 독립운동의 기본방략 및 미래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하여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사상이다. 삼균주의의 대전제는 ‘완전균등’으로,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완전균등을 표방하였다. 개인 간의 균등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통해, 민족 간의 균등은 민족자결을 통해, 국가 간의 균등은 모든 국가들이 서로 간섭·침탈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룩된다고 보았다. 한국독립당의 정강으로 채택되어 독립운동의 기본이념이 되었고, 1941년에는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공포했다.
서양사학은 인류 역사시대에서 서양 세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보고 그 문화의 변천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한국 서양사학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서양’이라는 실재가 ‘서양사’를 낳았다기보다는 ‘서양사’라는 학제가 ‘서양’을 상상하게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양사학은 가상의 실재인 ‘서양’의 역사를 재현하는 학문이라 할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한국의 서양사학과 제국의 오리엔탈리즘, 서양사와 국사가 맺어 온 서구 중심주의의 담론적 공모 관계를 드러내고 서양사의 해체를 21세기 한국 역사학의 과제로 제시한다.
서양사학 (西洋史學)
서양사학은 인류 역사시대에서 서양 세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보고 그 문화의 변천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한국 서양사학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서양’이라는 실재가 ‘서양사’를 낳았다기보다는 ‘서양사’라는 학제가 ‘서양’을 상상하게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양사학은 가상의 실재인 ‘서양’의 역사를 재현하는 학문이라 할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한국의 서양사학과 제국의 오리엔탈리즘, 서양사와 국사가 맺어 온 서구 중심주의의 담론적 공모 관계를 드러내고 서양사의 해체를 21세기 한국 역사학의 과제로 제시한다.
『아사녀』는 1963년 문학사에서 간행한 신동엽의 제1시집이다. 「진달래산천」·「풍경」·「눈나리는 날」·「그 가을」·「빛나는 눈동자」·「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등 18편이 제3부로 나누어져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은 고대사에서 현대사로 역사적 시점을 이동하며 민중의 비극적 삶과 저항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사녀 (阿斯女)
『아사녀』는 1963년 문학사에서 간행한 신동엽의 제1시집이다. 「진달래산천」·「풍경」·「눈나리는 날」·「그 가을」·「빛나는 눈동자」·「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등 18편이 제3부로 나누어져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은 고대사에서 현대사로 역사적 시점을 이동하며 민중의 비극적 삶과 저항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선민사상은 특정 민족이 신이나 신적 존재에 의해 선택되고 구원된다는 종교사상이다. 선민의식이라고도 한다. 넓게는 다른 집단·민족에 비해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세속적인 사상이나 신념도 포함한다. 집단이나 민족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보존한다는 차원에서는 보편적인 것이다. 하지만 배타적인 성격이 강할 때는 인류 평화의 위협요소로 작동한다. 고대 건국신화는 대체로 선민사상을 토대로 하는데, 단군신화도 한민족이 천제의 후손임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홍익인간·이화세계의 이념을 제시하고 있어 배타적이고 정복적인 선민사상과는 구별된다.
선민사상 (選民思想)
선민사상은 특정 민족이 신이나 신적 존재에 의해 선택되고 구원된다는 종교사상이다. 선민의식이라고도 한다. 넓게는 다른 집단·민족에 비해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세속적인 사상이나 신념도 포함한다. 집단이나 민족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보존한다는 차원에서는 보편적인 것이다. 하지만 배타적인 성격이 강할 때는 인류 평화의 위협요소로 작동한다. 고대 건국신화는 대체로 선민사상을 토대로 하는데, 단군신화도 한민족이 천제의 후손임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홍익인간·이화세계의 이념을 제시하고 있어 배타적이고 정복적인 선민사상과는 구별된다.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사에 관해 저술한 역사서.
조선상고문화사 (朝鮮上古文化史)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사에 관해 저술한 역사서.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학술서.
조선상고사 (朝鮮上古史)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학술서.
안재홍이 우리나라 고대사와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모아 수록한 역사서.
조선상고사감 (朝鮮上古史鑑)
안재홍이 우리나라 고대사와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모아 수록한 역사서.
1929년 권덕규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저술한 역사서.
조선유기략 (朝鮮留記略)
1929년 권덕규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저술한 역사서.
19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클래몬트 지방에 설립된 한인교육기관.
클래몬트 학생양성소 (Clermont 學生養成所)
19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클래몬트 지방에 설립된 한인교육기관.
천관우는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주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1년에 사망했다. 1944년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공동대표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한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고조선과 삼한, 가야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기여하였다.
천관우 (千寬宇)
천관우는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주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1년에 사망했다. 1944년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공동대표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한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고조선과 삼한, 가야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기여하였다.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전진한 (錢鎭漢)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김구(金九) 등이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창당한 정당이다. 김원봉(金元鳳)의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대항하여 만들었다. 1935년 11월 초순부터 비밀 협의를 거쳐 같은 달 하순에 창당되었다. 순수한 민족주의에 입각한 정당으로서, 좌익 계열의 조선민족혁명당과 무정부주의 계열의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대립하면서 임시정부의 여당 역할을 하였다.1940년 5월 8일 제2차 통일대표회의가 종료되는 날 3당 대표 공동명의로 「3당해체선언」을 발표해 당의 해체와 신당의 출범을 공식 선언하였다.
한국국민당 (韓國國民黨)
김구(金九) 등이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창당한 정당이다. 김원봉(金元鳳)의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대항하여 만들었다. 1935년 11월 초순부터 비밀 협의를 거쳐 같은 달 하순에 창당되었다. 순수한 민족주의에 입각한 정당으로서, 좌익 계열의 조선민족혁명당과 무정부주의 계열의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대립하면서 임시정부의 여당 역할을 하였다.1940년 5월 8일 제2차 통일대표회의가 종료되는 날 3당 대표 공동명의로 「3당해체선언」을 발표해 당의 해체와 신당의 출범을 공식 선언하였다.
석유파동은 두 차례에 걸친 석유 공급 부족과 석유 가격 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은 일이다. 1973년부터 1974년에 이르는 중동 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 실행,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 생산의 대폭 감축으로 석유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국제 석유 가격이 급상승하고, 그 결과 전 세계가 경제적 위기와 혼란을 겪었다. 오일쇼크 또는 유류파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불황 속 물가 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고, 성장률 둔화, 무역수지 악화, 외채 폭증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석유파동 (石油波動)
석유파동은 두 차례에 걸친 석유 공급 부족과 석유 가격 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은 일이다. 1973년부터 1974년에 이르는 중동 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 실행,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 생산의 대폭 감축으로 석유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국제 석유 가격이 급상승하고, 그 결과 전 세계가 경제적 위기와 혼란을 겪었다. 오일쇼크 또는 유류파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불황 속 물가 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고, 성장률 둔화, 무역수지 악화, 외채 폭증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