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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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사상은 특정 민족이 신이나 신적 존재에 의해 선택되고 구원된다는 종교사상이다. 선민의식이라고도 한다. 넓게는 다른 집단·민족에 비해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세속적인 사상이나 신념도 포함한다. 집단이나 민족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보존한다는 차원에서는 보편적인 것이다. 하지만 배타적인 성격이 강할 때는 인류 평화의 위협요소로 작동한다. 고대 건국신화는 대체로 선민사상을 토대로 하는데, 단군신화도 한민족이 천제의 후손임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홍익인간·이화세계의 이념을 제시하고 있어 배타적이고 정복적인 선민사상과는 구별된다.
선민사상 (選民思想)
선민사상은 특정 민족이 신이나 신적 존재에 의해 선택되고 구원된다는 종교사상이다. 선민의식이라고도 한다. 넓게는 다른 집단·민족에 비해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세속적인 사상이나 신념도 포함한다. 집단이나 민족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보존한다는 차원에서는 보편적인 것이다. 하지만 배타적인 성격이 강할 때는 인류 평화의 위협요소로 작동한다. 고대 건국신화는 대체로 선민사상을 토대로 하는데, 단군신화도 한민족이 천제의 후손임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홍익인간·이화세계의 이념을 제시하고 있어 배타적이고 정복적인 선민사상과는 구별된다.
삼균주의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소앙이 독립운동의 기본방략 및 미래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하여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사상이다. 삼균주의의 대전제는 ‘완전균등’으로,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완전균등을 표방하였다. 개인 간의 균등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통해, 민족 간의 균등은 민족자결을 통해, 국가 간의 균등은 모든 국가들이 서로 간섭·침탈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룩된다고 보았다. 한국독립당의 정강으로 채택되어 독립운동의 기본이념이 되었고, 1941년에는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공포했다.
삼균주의 (三均主義)
삼균주의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소앙이 독립운동의 기본방략 및 미래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하여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사상이다. 삼균주의의 대전제는 ‘완전균등’으로,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완전균등을 표방하였다. 개인 간의 균등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통해, 민족 간의 균등은 민족자결을 통해, 국가 간의 균등은 모든 국가들이 서로 간섭·침탈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룩된다고 보았다. 한국독립당의 정강으로 채택되어 독립운동의 기본이념이 되었고, 1941년에는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공포했다.
한민족은 한반도와 해외 여러 지역에 살면서 한인(Korean)으로서의 공통의 혈통과 문화, 정체성을 공유하거나 공유한다고 생각하는 아시아계 민족이다. 한민족은 문화적 개념으로 정치적 개념인 국민과 구별된다. 대한민국 국민에는 혈통적으로 한국인도 있지만, 외국인이 귀화해서 한국 국민이 되기도 한다.
한민족 (韓民族)
한민족은 한반도와 해외 여러 지역에 살면서 한인(Korean)으로서의 공통의 혈통과 문화, 정체성을 공유하거나 공유한다고 생각하는 아시아계 민족이다. 한민족은 문화적 개념으로 정치적 개념인 국민과 구별된다. 대한민국 국민에는 혈통적으로 한국인도 있지만, 외국인이 귀화해서 한국 국민이 되기도 한다.
독사신론은 1908년 신채호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 역사서이다. 1908년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는데 『소년』에 「국사사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서론과 단군에서부터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상세(上世)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고대사를 반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의 민족주의사학이 식민사관에 대처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근거가 되는 역사서이다.
독사신론 (讀史新論)
독사신론은 1908년 신채호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 역사서이다. 1908년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는데 『소년』에 「국사사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서론과 단군에서부터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상세(上世)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고대사를 반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의 민족주의사학이 식민사관에 대처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근거가 되는 역사서이다.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학술서.
조선상고사 (朝鮮上古史)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학술서.
석유파동은 두 차례에 걸친 석유 공급 부족과 석유 가격 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은 일이다. 1973년부터 1974년에 이르는 중동 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 실행,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 생산의 대폭 감축으로 석유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국제 석유 가격이 급상승하고, 그 결과 전 세계가 경제적 위기와 혼란을 겪었다. 오일쇼크 또는 유류파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불황 속 물가 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고, 성장률 둔화, 무역수지 악화, 외채 폭증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석유파동 (石油波動)
석유파동은 두 차례에 걸친 석유 공급 부족과 석유 가격 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은 일이다. 1973년부터 1974년에 이르는 중동 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 실행,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 생산의 대폭 감축으로 석유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국제 석유 가격이 급상승하고, 그 결과 전 세계가 경제적 위기와 혼란을 겪었다. 오일쇼크 또는 유류파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불황 속 물가 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고, 성장률 둔화, 무역수지 악화, 외채 폭증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저항문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였던 문학이다. 일제하 한국문학의 저항은 일제에 대한 문학적 협력과 연관지어 살펴보아야 한다. 문학적 저항은 다음과 같은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백석이나 김기림과 같이 저항으로써 침묵을 선택한 경우이다. 둘째는 한설야나 임순득과 같이 우회적 글쓰기를 시도한 경우이다. 셋째는 이육사나 김사량과 같이 망명을 시도한 경우이다. 일제하에서 활동한 문학가들 가운데 한때 저항을 하였으나 이광수, 최남선 등과 같이 일본 제국에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
저항문학 (抵抗文學)
저항문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였던 문학이다. 일제하 한국문학의 저항은 일제에 대한 문학적 협력과 연관지어 살펴보아야 한다. 문학적 저항은 다음과 같은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백석이나 김기림과 같이 저항으로써 침묵을 선택한 경우이다. 둘째는 한설야나 임순득과 같이 우회적 글쓰기를 시도한 경우이다. 셋째는 이육사나 김사량과 같이 망명을 시도한 경우이다. 일제하에서 활동한 문학가들 가운데 한때 저항을 하였으나 이광수, 최남선 등과 같이 일본 제국에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
김구(金九) 등이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창당한 정당이다. 김원봉(金元鳳)의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대항하여 만들었다. 1935년 11월 초순부터 비밀 협의를 거쳐 같은 달 하순에 창당되었다. 순수한 민족주의에 입각한 정당으로서, 좌익 계열의 조선민족혁명당과 무정부주의 계열의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대립하면서 임시정부의 여당 역할을 하였다.1940년 5월 8일 제2차 통일대표회의가 종료되는 날 3당 대표 공동명의로 「3당해체선언」을 발표해 당의 해체와 신당의 출범을 공식 선언하였다.
한국국민당 (韓國國民黨)
김구(金九) 등이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창당한 정당이다. 김원봉(金元鳳)의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대항하여 만들었다. 1935년 11월 초순부터 비밀 협의를 거쳐 같은 달 하순에 창당되었다. 순수한 민족주의에 입각한 정당으로서, 좌익 계열의 조선민족혁명당과 무정부주의 계열의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대립하면서 임시정부의 여당 역할을 하였다.1940년 5월 8일 제2차 통일대표회의가 종료되는 날 3당 대표 공동명의로 「3당해체선언」을 발표해 당의 해체와 신당의 출범을 공식 선언하였다.
1967년 7월 8일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
동백림 사건 (東伯林 事件)
1967년 7월 8일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
1922년 5월 이광수가 종합지『개벽』에 발표한 논설.
민족개조론 (民族改造論)
1922년 5월 이광수가 종합지『개벽』에 발표한 논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민족성을 개량해야 한다고 주장한 개량주의. 역사용어.
민족개량주의 (民族改良主義)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민족성을 개량해야 한다고 주장한 개량주의. 역사용어.
5·16 군사정변 이후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정치 이데올로기.
민족적 민주주의 (民族的 民主主義)
5·16 군사정변 이후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정치 이데올로기.
1964년부터 1965년까지 전개된 한일회담과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한 야당, 지식인, 학생,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
한일협정 반대운동 (韓日協定 反對運動)
1964년부터 1965년까지 전개된 한일회담과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한 야당, 지식인, 학생,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사에 관해 저술한 역사서.
조선상고문화사 (朝鮮上古文化史)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사에 관해 저술한 역사서.
안재홍이 우리나라 고대사와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모아 수록한 역사서.
조선상고사감 (朝鮮上古史鑑)
안재홍이 우리나라 고대사와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모아 수록한 역사서.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전진한 (錢鎭漢)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과학조선》은 1933년 발명학회에서 김용관·박길룡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창간한 과학기술 대중잡지이다. 1930년대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다. 편집 체제는 B6판으로, 매호 1,000부씩 월간으로 발행되었다. 자금 사정과 조선총독부 당국의 탄압 등의 이유로 제때 간행되지 못하거나 휴간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39년부터 속간되어 1941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간행되었다. 2013년 우리나라 최초 과학종합잡지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과학조선 (科學朝鮮)
《과학조선》은 1933년 발명학회에서 김용관·박길룡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창간한 과학기술 대중잡지이다. 1930년대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다. 편집 체제는 B6판으로, 매호 1,000부씩 월간으로 발행되었다. 자금 사정과 조선총독부 당국의 탄압 등의 이유로 제때 간행되지 못하거나 휴간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39년부터 속간되어 1941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간행되었다. 2013년 우리나라 최초 과학종합잡지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천관우는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주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1년에 사망했다. 1944년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공동대표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한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고조선과 삼한, 가야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기여하였다.
천관우 (千寬宇)
천관우는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주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1년에 사망했다. 1944년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공동대표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한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고조선과 삼한, 가야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기여하였다.
1967년 중앙정보부가 서울대학교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구속한 사건.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民族主義比較硏究會 事件)
1967년 중앙정보부가 서울대학교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구속한 사건.
동양의 연대와 서양에 대한 동양의 문화적 우위를 주장하는 사상. 아시아주의·아세아주의.
동양주의 (東洋主義)
동양의 연대와 서양에 대한 동양의 문화적 우위를 주장하는 사상. 아시아주의·아세아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