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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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성 이천기 일가 묘 출토 복식은 1969년 울산광역시 신정동 판교의 학성 이씨 일가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유물 10점이다. 이천기의 묘에서는 광다회대(띠), 솜 소모자 2점이 출토되었다. 부인 흥려 박씨의 묘에서는 무명 솜 장옷, 면포 홑치마 등이 출토되었다. 아들 이지영과 부인 평해 황씨의 합장묘에서는 겹장옷, 명주 솜누비 치마 등이 수습되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 울산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17세기 중반~18세기 초 울산 지역 한 문중의 남녀 일상복이라는 점에서 복식사적 가치가 있다.
학성 이천기 일가 묘 출토복식 (鶴城 李天機 一家 墓 出土服飾)
학성 이천기 일가 묘 출토 복식은 1969년 울산광역시 신정동 판교의 학성 이씨 일가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유물 10점이다. 이천기의 묘에서는 광다회대(띠), 솜 소모자 2점이 출토되었다. 부인 흥려 박씨의 묘에서는 무명 솜 장옷, 면포 홑치마 등이 출토되었다. 아들 이지영과 부인 평해 황씨의 합장묘에서는 겹장옷, 명주 솜누비 치마 등이 수습되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 울산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17세기 중반~18세기 초 울산 지역 한 문중의 남녀 일상복이라는 점에서 복식사적 가치가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언충(李彦忠)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일괄.
이언충 묘 출토복식 (李彦忠 墓 出土服飾)
조선 중기의 문신 이언충(李彦忠)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일괄.
2006년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최진(崔縝, 16세기 인물 추정) 묘와 그의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 묘 등, 3기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출토복식(出土服飾) 59점.
문경 최진 일가 묘 출토복식 (聞慶 崔縝 一家 墓 出土服飾)
2006년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최진(崔縝, 16세기 인물 추정) 묘와 그의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 묘 등, 3기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출토복식(出土服飾) 59점.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묘 출토복식은 16세기 중후반기를 살았던 구성이씨(駒城李氏)와 여흥이씨(驪興李氏)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등 유물 일괄이다. 2010년 경기도 오산시 가장지구 문화재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구성이씨의 묘에서는 41건 51점, 여흥이씨의 묘에서는 55건 73점이 수습되어 총 96건 12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6세기 중후반 양반 가문 여성의 다양한 복식과 상장속(喪葬俗)을 엿볼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2021년 6월 2일에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 (烏山 駒城李氏·驪興李氏 墓 出土服飾)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묘 출토복식은 16세기 중후반기를 살았던 구성이씨(駒城李氏)와 여흥이씨(驪興李氏)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등 유물 일괄이다. 2010년 경기도 오산시 가장지구 문화재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구성이씨의 묘에서는 41건 51점, 여흥이씨의 묘에서는 55건 73점이 수습되어 총 96건 12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6세기 중후반 양반 가문 여성의 다양한 복식과 상장속(喪葬俗)을 엿볼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2021년 6월 2일에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에서 출토된 최원립(崔元立, 1618∼1690) 장군의 의복 일괄.
영암 최원립 장군 묘 출토 복식·유물 (靈岩 崔元立 將軍 墓出 土 服飾·遺物)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에서 출토된 최원립(崔元立, 1618∼1690) 장군의 의복 일괄.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는 한국 최초로 결성된 패션디자이너들의 단체이다. 후에 사단법인 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로 단체명이 변경되었다. 회원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 지원과 브랜드화를 지원하며 신진 패션 인재 양성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한국 패션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大韓服飾designer協會)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는 한국 최초로 결성된 패션디자이너들의 단체이다. 후에 사단법인 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로 단체명이 변경되었다. 회원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 지원과 브랜드화를 지원하며 신진 패션 인재 양성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한국 패션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대한복식연우회(大韓服食硏友會)는 1955년 6월 명동양장점 및 양재학원 연합을 주축으로 설립된 복식 전문가 단체이다. 1961년에 시행된 정부 사회부의 ‘유사 단체통합령’으로 인해 대한복식연우회는 한국디자이너협회와 1961년 8월 27일 (사단법인)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로 통합되었다.
대한복식연우회 (大韓服食硏友會)
대한복식연우회(大韓服食硏友會)는 1955년 6월 명동양장점 및 양재학원 연합을 주축으로 설립된 복식 전문가 단체이다. 1961년에 시행된 정부 사회부의 ‘유사 단체통합령’으로 인해 대한복식연우회는 한국디자이너협회와 1961년 8월 27일 (사단법인)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로 통합되었다.
김동욱은 해방 이후 『국문학개설』, 『한국가요의 연구』, 『고소설판각본전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호는 나손으로 충청남도 홍성 출신이다. 1943년에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광복 후 서울대학교에 편입하여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52년 장덕순 등과 함께 국어국문학회를 창립했고 1959년 비교문학회를 창설하였다. 국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연구 업적을 남겼으며 다양한 연구 방법을 구사하였다. 또한 한문학을 국문학의 범주에 포함하여 국문학사를 체계화하였다. 김동욱은 ‘국문학 내지 한국학의 세계성 지향’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김동욱 (金東旭)
김동욱은 해방 이후 『국문학개설』, 『한국가요의 연구』, 『고소설판각본전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호는 나손으로 충청남도 홍성 출신이다. 1943년에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광복 후 서울대학교에 편입하여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52년 장덕순 등과 함께 국어국문학회를 창립했고 1959년 비교문학회를 창설하였다. 국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연구 업적을 남겼으며 다양한 연구 방법을 구사하였다. 또한 한문학을 국문학의 범주에 포함하여 국문학사를 체계화하였다. 김동욱은 ‘국문학 내지 한국학의 세계성 지향’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은 충청남도 당진시 모충관에 소장되어 있는 남이흥 장군과 의령남씨 선·후대의 유품 41점이다. 남이흥(1576∼1627)은 병마절도사로 정묘호란 때 순절한 인물이다. ‘남이흥장군유품’은 1970년에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004년에 남이흥 장군 일가의 유품들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1차로 지정된 유물은 녹피방령포와 녹피바지 등 총 8점이다. 추가로 지정된 복식류는 남이흥의 아버지 유물로 추정된다. 이 유품을 통해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특히 남이흥의 관복본 초상화는 무관의 사자흉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 (南以興 將軍 一家 遺品)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은 충청남도 당진시 모충관에 소장되어 있는 남이흥 장군과 의령남씨 선·후대의 유품 41점이다. 남이흥(1576∼1627)은 병마절도사로 정묘호란 때 순절한 인물이다. ‘남이흥장군유품’은 1970년에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004년에 남이흥 장군 일가의 유품들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1차로 지정된 유물은 녹피방령포와 녹피바지 등 총 8점이다. 추가로 지정된 복식류는 남이흥의 아버지 유물로 추정된다. 이 유품을 통해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특히 남이흥의 관복본 초상화는 무관의 사자흉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백의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는 전통에서 비롯된 한민족의 별칭이다. 고대부터 한민족은 제천(祭天) 사상과 여러 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흰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한민족의 문화 양식을 지배한 삼교(三敎) 사상은 절제의 미학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강조하여 흰옷을 즐기는 전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백의민족 (白衣民族)
백의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는 전통에서 비롯된 한민족의 별칭이다. 고대부터 한민족은 제천(祭天) 사상과 여러 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흰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한민족의 문화 양식을 지배한 삼교(三敎) 사상은 절제의 미학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강조하여 흰옷을 즐기는 전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려후기 원나라에서 유행하였던 고려의 풍습.
고려양 (高麗樣)
고려후기 원나라에서 유행하였던 고려의 풍습.
나삼은 조선시대에 나(羅)로 만든 웃옷[衫], 또는 비단으로 만든 여성용 예복이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나(羅)로 만든 웃옷[衫]’이지만 막연하게 ‘아름다운 옷’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었다. 조선시대 이후의 기록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조선시대 이전에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시대의 궁중정재(宮中呈才) 중 춘앵전의 여령(女伶) 복식 기록과 고소설, 20세기 전기 민속복에 대한 구술, 혼례 사진의 신부 예복에서 나삼을 확인할 수 있다.
나삼 (羅衫)
나삼은 조선시대에 나(羅)로 만든 웃옷[衫], 또는 비단으로 만든 여성용 예복이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나(羅)로 만든 웃옷[衫]’이지만 막연하게 ‘아름다운 옷’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었다. 조선시대 이후의 기록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조선시대 이전에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시대의 궁중정재(宮中呈才) 중 춘앵전의 여령(女伶) 복식 기록과 고소설, 20세기 전기 민속복에 대한 구술, 혼례 사진의 신부 예복에서 나삼을 확인할 수 있다.
김덕령 장군 의복은 조선 중기의 장군 김덕령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이다. 1965년 광주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되었다. 철릭 2점, 장옷 1점, 과두 3점, 저고리 1점,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저고리는 풍성한 느낌의 무명 솜저고리인데 겉감은 무명, 안감은 삼베로 되어 있다. 바지는 현재 옷감이 소실되고 바지 형체의 솜만 남아 있다. 이 의복은 임진왜란 당시 남녀 평상복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특히 사폭바지는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덕령 장군 의복 (金德領 將軍 衣服)
김덕령 장군 의복은 조선 중기의 장군 김덕령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이다. 1965년 광주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되었다. 철릭 2점, 장옷 1점, 과두 3점, 저고리 1점,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저고리는 풍성한 느낌의 무명 솜저고리인데 겉감은 무명, 안감은 삼베로 되어 있다. 바지는 현재 옷감이 소실되고 바지 형체의 솜만 남아 있다. 이 의복은 임진왜란 당시 남녀 평상복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특히 사폭바지는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16년 현병주가 우리나라 전래의 치부법인 사개치부법(사개다리문서)을 해설한 주석서. 경제학서.
사개송도치부법 (四介松都治簿法)
1916년 현병주가 우리나라 전래의 치부법인 사개치부법(사개다리문서)을 해설한 주석서. 경제학서.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에 위치한 김첨과 그의 딸 안동 김씨, 손부 원주 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이다. 1세기에 걸친 한 집안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김첨의 묘에서는 장옷 2점과 명주 솜누비 바지, 솜이불이 수습되었다. 김첨의 딸 묘에서는 여자 미라, 관에 ‘안동김씨지구’라고 쓰인 기, 회장저고리가 출토되었다. 17세기 말의 원주 원씨 묘에서는 누비솜저고리와 치마, 속옷이 출토되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로 복식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 (安東金氏 墓 出土 衣服)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에 위치한 김첨과 그의 딸 안동 김씨, 손부 원주 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이다. 1세기에 걸친 한 집안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김첨의 묘에서는 장옷 2점과 명주 솜누비 바지, 솜이불이 수습되었다. 김첨의 딸 묘에서는 여자 미라, 관에 ‘안동김씨지구’라고 쓰인 기, 회장저고리가 출토되었다. 17세기 말의 원주 원씨 묘에서는 누비솜저고리와 치마, 속옷이 출토되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로 복식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이형 부인 동래정씨 의복은 1941년 경기도 시흥시 염불암 옆에 있던 이형의 부인 동래 정씨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6점의 복식유물이다. 동래정씨는 전주이씨 고림군의 손자인 증 좌찬성 이형의 부인이다. 1583년 사망한 동래 정씨의 묘에서 명주솜누비장옷 1점, 명주솜누비치마 2점, 무명솜누비치마 1점, 바지 1점이 출토되었다. 하나의 바지가 둘로 나뉜 것이 후에 확인되어 실제로는 5점의 유물이다. 묘주의 몰년이 확실하므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1980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전주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형 부인 동래정씨 의복 (李泂 夫人 東萊鄭氏 衣服)
이형 부인 동래정씨 의복은 1941년 경기도 시흥시 염불암 옆에 있던 이형의 부인 동래 정씨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6점의 복식유물이다. 동래정씨는 전주이씨 고림군의 손자인 증 좌찬성 이형의 부인이다. 1583년 사망한 동래 정씨의 묘에서 명주솜누비장옷 1점, 명주솜누비치마 2점, 무명솜누비치마 1점, 바지 1점이 출토되었다. 하나의 바지가 둘로 나뉜 것이 후에 확인되어 실제로는 5점의 유물이다. 묘주의 몰년이 확실하므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1980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전주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발해시대의 관서.
전중시 (殿中寺)
발해시대의 관서.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은 1989년 곽재우의 종질부 진주하씨 묘에서 출토된 복식 유물 81점과 언간류 168점이다. 진주하씨는 곽재우의 사촌 형제 아들인 곽주의 둘째 부인이다. 1652년 언간이 확인됨에 따라 17세기 중기에 생존하였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장옷과 중치막(포), 저고리, 바지, 이불, 베개, 돗자리 등 81점과 언간류 168(172)점이 있다. 복식류는 17세기의 복식사에 귀한 자료이다. 서간문들은 당시 경상도 지역의 언어와 생활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93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 (晉州河氏 墓 出土 遺物)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은 1989년 곽재우의 종질부 진주하씨 묘에서 출토된 복식 유물 81점과 언간류 168점이다. 진주하씨는 곽재우의 사촌 형제 아들인 곽주의 둘째 부인이다. 1652년 언간이 확인됨에 따라 17세기 중기에 생존하였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장옷과 중치막(포), 저고리, 바지, 이불, 베개, 돗자리 등 81점과 언간류 168(172)점이 있다. 복식류는 17세기의 복식사에 귀한 자료이다. 서간문들은 당시 경상도 지역의 언어와 생활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93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사립박물관.
한국자수박물관 (韓國刺繡博物館)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사립박물관.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어제경세문답』의 속편으로 1763년에 저술한 어제(御製). 자성록.
어제경세문답속록 (御製警世問答續錄)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어제경세문답』의 속편으로 1763년에 저술한 어제(御製). 자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