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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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 아미타불이 봉안된 사찰건물이다. 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창건한 화엄사찰이다.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이르는 배치 구조를 가졌다.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 공포의 구성 형식, 가구재의 구성 등에서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며 형태미와 비례미가 뛰어나다.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불경 내용에 따라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치게 배치하여 불상이 동쪽을 향하게 했고 바닥에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 아미타불이 봉안된 사찰건물이다. 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창건한 화엄사찰이다.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이르는 배치 구조를 가졌다.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 공포의 구성 형식, 가구재의 구성 등에서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며 형태미와 비례미가 뛰어나다.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불경 내용에 따라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치게 배치하여 불상이 동쪽을 향하게 했고 바닥에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영주 부석사 조사당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에 있는 고려 후기 승려 원응국사가 중건한 사찰 건물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건물이다. 건물은 맞배지붕이다. 조사당 내부에는 절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골담초가 있다. 부석사 조사당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수법을 보여준다. 또 조사당 벽화(국보)는 남아 있는 벽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중요하다.
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
영주 부석사 조사당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에 있는 고려 후기 승려 원응국사가 중건한 사찰 건물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건물이다. 건물은 맞배지붕이다. 조사당 내부에는 절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골담초가 있다. 부석사 조사당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수법을 보여준다. 또 조사당 벽화(국보)는 남아 있는 벽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중요하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문구산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산한 승려.
무염 (無染)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문구산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산한 승려.
조선후기 에 제작된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대승사의 목각탱과 관련된 문서. 불교문서.
문경 대승사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 및 관계 문서 (聞慶 大乘寺 木刻 阿彌陀如來 說法像 및 關係 文書)
조선후기 에 제작된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대승사의 목각탱과 관련된 문서. 불교문서.
성우는 개항기 선의 일상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1846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9세에 과천의 청계사로 출가해 계허 밑에서 수학한 후 계룡산 동학사에서 불교경론을 배웠다. 1879년 깨달음을 얻고 천장암에서 제자 만공, 혜월, 수월을 지도했다.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개심사와 부석사에서 교화를 펼치며 선풍을 떨쳤다. 선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하여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였으며, 설법뿐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 선을 선양하였다.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고 평가되며,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1912년 4월 입적하였다.
성우 (惺牛)
성우는 개항기 선의 일상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1846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9세에 과천의 청계사로 출가해 계허 밑에서 수학한 후 계룡산 동학사에서 불교경론을 배웠다. 1879년 깨달음을 얻고 천장암에서 제자 만공, 혜월, 수월을 지도했다.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개심사와 부석사에서 교화를 펼치며 선풍을 떨쳤다. 선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하여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였으며, 설법뿐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 선을 선양하였다.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고 평가되며,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1912년 4월 입적하였다.
일제강점기 선학원설립운동과 선우공제회운동에 참여한 승려.
월면 (月面)
일제강점기 선학원설립운동과 선우공제회운동에 참여한 승려.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선정사(仙定寺) 대웅전(大雄殿)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196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머리는 촘촘한 나발로 표현되었고, 머리에 비해 약간 작은 육계가 솟아 있다. 불신은 편단우견의 대의(大衣)를 걸쳤는데, 대의의 주름은 절제미가 돋보인다. 석굴암 본존불이나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그리고 경주 안계리 석조여래좌상 등 8세기 중 · 후반경에 조성된 불상들과 양식적 친연성이 엿보인다. 경주 인근에서 조성된 철불로서 신라의 전성기 양식을 토대로 고려 전기에 제작된 복고양식의 대표적인 불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영천 선원동 철조 여래 좌상 (永川 仙源洞 鐵造 如來 坐像)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선정사(仙定寺) 대웅전(大雄殿)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196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머리는 촘촘한 나발로 표현되었고, 머리에 비해 약간 작은 육계가 솟아 있다. 불신은 편단우견의 대의(大衣)를 걸쳤는데, 대의의 주름은 절제미가 돋보인다. 석굴암 본존불이나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그리고 경주 안계리 석조여래좌상 등 8세기 중 · 후반경에 조성된 불상들과 양식적 친연성이 엿보인다. 경주 인근에서 조성된 철불로서 신라의 전성기 양식을 토대로 고려 전기에 제작된 복고양식의 대표적인 불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1203년(신종 6) 송생현(松生縣 :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쌍암사의 승려들이 무신정권에 항거하여 일으킨 반란.
쌍암사 승도의 난 (雙巖寺 僧徒의 亂)
1203년(신종 6) 송생현(松生縣 :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쌍암사의 승려들이 무신정권에 항거하여 일으킨 반란.
욱면(郁面)은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 강주(康州)에 살던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있던 여종이다. 그는 매일 저녁 일을 마친 뒤에 만일염불결사가 진행되던 미타사에 가서 염불 수행을 하였다. 어느날 하늘의 음악 소리가 서쪽에서부터 들려오더니 욱면이 지붕 들보를 뚫고 솟아 서쪽으로 가다가 교외에 이르러 몸을 버리고 진신(眞身)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욱면 (郁面)
욱면(郁面)은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 강주(康州)에 살던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있던 여종이다. 그는 매일 저녁 일을 마친 뒤에 만일염불결사가 진행되던 미타사에 가서 염불 수행을 하였다. 어느날 하늘의 음악 소리가 서쪽에서부터 들려오더니 욱면이 지붕 들보를 뚫고 솟아 서쪽으로 가다가 교외에 이르러 몸을 버리고 진신(眞身)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삼국시대 신라의 의상대사의 10대제자 중 신통력으로 이름이 높았던 승려.
오진 (悟眞)
삼국시대 신라의 의상대사의 10대제자 중 신통력으로 이름이 높았던 승려.
의상은 삼국시대 초기 화엄교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해동 화엄의 초조로 존숭되어 온 신라 승려이다. 625년에 태어나 20세가 되기 전에 황복사에서 출가하였다. 661년 당에 들어가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 문하에서 수학하며 초기 화엄교학을 확립하였다. 670년 당의 신라 침공 계획을 알리기 위해 귀국하였으며, 이후 화엄 사찰 건립, 제자 교육과 대중 교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 화엄교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주저인 『화엄일승법계도』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주석서가 저술되었다.
의상 (義想|義湘|義相)
의상은 삼국시대 초기 화엄교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해동 화엄의 초조로 존숭되어 온 신라 승려이다. 625년에 태어나 20세가 되기 전에 황복사에서 출가하였다. 661년 당에 들어가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 문하에서 수학하며 초기 화엄교학을 확립하였다. 670년 당의 신라 침공 계획을 알리기 위해 귀국하였으며, 이후 화엄 사찰 건립, 제자 교육과 대중 교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 화엄교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주저인 『화엄일승법계도』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주석서가 저술되었다.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옛 지명.
인풍 (隣豊)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옛 지명.
지선(智詵)은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연 선승이다. 대부분의 선승들이 중국 유학을 다녀온 것과 달리 지선은 유학 경험이 없었고, 북종선을 계승하였다. 그의 사후에 희양산문에서 그의 법계를 마조계로 설정한 것은 당시 선종의 정통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지선 (智詵)
지선(智詵)은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연 선승이다. 대부분의 선승들이 중국 유학을 다녀온 것과 달리 지선은 유학 경험이 없었고, 북종선을 계승하였다. 그의 사후에 희양산문에서 그의 법계를 마조계로 설정한 것은 당시 선종의 정통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택일(擇日)과 관련된 목판.
길흉축월횡간 고려목판 (吉凶逐月橫看 高麗木板)
고려시대에 제작된 택일(擇日)과 관련된 목판.
혜철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구산선문 중 동리산문의 개조인 선사이다. 부석사에서 화엄을 공부하였으며, 입당하여 서당지장으로부터 선법을 전수받았다. 839년 신라에 귀국한 후 쌍봉사에서 하안거를 보냈고, 동리산 태안사에 주석하며 동리산문을 열고 선법을 널리 폈다. 문성왕의 자문 역할을 하는 등 왕실과의 관계 속에서 산문을 확장시켰다. 또한 선사는 화엄과 대장경을 탐독하고 선법도 익히는 등 교·선 융합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혜철 (惠哲)
혜철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구산선문 중 동리산문의 개조인 선사이다. 부석사에서 화엄을 공부하였으며, 입당하여 서당지장으로부터 선법을 전수받았다. 839년 신라에 귀국한 후 쌍봉사에서 하안거를 보냈고, 동리산 태안사에 주석하며 동리산문을 열고 선법을 널리 폈다. 문성왕의 자문 역할을 하는 등 왕실과의 관계 속에서 산문을 확장시켰다. 또한 선사는 화엄과 대장경을 탐독하고 선법도 익히는 등 교·선 융합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불전 내에서 불상의 상부 천장을 장엄하는 일종의 닫집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천개·보개·산개.
화개 (花蓋)
불전 내에서 불상의 상부 천장을 장엄하는 일종의 닫집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천개·보개·산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화엄학의 학승으로 북악을 대표하는 승려.
희랑 (希朗)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화엄학의 학승으로 북악을 대표하는 승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