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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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 제11사단 소속 군인들이 마을 주민을 집단학살한 사건.
거창사건 (居昌事件)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 제11사단 소속 군인들이 마을 주민을 집단학살한 사건.
박창극은 일제강점기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인 사회주의 운동가로, 고려혁명군정의회 정치부 비서, 러시아공산당 수찬군당위원회 조선분과장을 지냈다. 고려공산당 창립준비대표회 준비위원회 참여하였으며, 소련공산당 블라디보스토크위원회 산하에 민족정치국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박창극 (朴昌極)
박창극은 일제강점기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인 사회주의 운동가로, 고려혁명군정의회 정치부 비서, 러시아공산당 수찬군당위원회 조선분과장을 지냈다. 고려공산당 창립준비대표회 준비위원회 참여하였으며, 소련공산당 블라디보스토크위원회 산하에 민족정치국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김광서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1919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노령의 대한국민의회나 상하이 임시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무장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30년대 후반에 소련 정부에 의하여 간첩 혐의로 복역하였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김광서 (金光瑞)
김광서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1919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노령의 대한국민의회나 상하이 임시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무장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30년대 후반에 소련 정부에 의하여 간첩 혐의로 복역하였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지리산』은 1972년 9월부터 1978년 8월까지 이병주가 『세대』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1938년에서 1956년에 이르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기를 배경으로 민족사적 모순과 갈등이 잉태된 비극의 순간들을 포착해 서사화했다. 무엇보다 이 시기 지리산에서 활동했던 빨치산의 존재와 남북 간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작가 이병주는 객관적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데 의미를 두는 실록소설의 양식을 채택함으로써 역사적 사건과 평가에 입체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지리산 (智異山)
『지리산』은 1972년 9월부터 1978년 8월까지 이병주가 『세대』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1938년에서 1956년에 이르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기를 배경으로 민족사적 모순과 갈등이 잉태된 비극의 순간들을 포착해 서사화했다. 무엇보다 이 시기 지리산에서 활동했던 빨치산의 존재와 남북 간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작가 이병주는 객관적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데 의미를 두는 실록소설의 양식을 채택함으로써 역사적 사건과 평가에 입체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한국전쟁 후 월북하지 못하고 빨치산으로 남아있던 지리산지역의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한 군·경 합동작전.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智異山 共匪討伐作戰)
한국전쟁 후 월북하지 못하고 빨치산으로 남아있던 지리산지역의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한 군·경 합동작전.
하준수는 해방 이후 조선인민유격대 제3병단 부사령관을 역임한 군인이다. 남도부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주오대학 법학부 수학 중 태평양 전쟁 학병으로 징집되자, 이를 거부하고 귀국하여 지리산에 숨었다. 1945년 3월, 지리산에서 항일 결사단체인 보광당을 결성했다.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하여 제3병단 부사령관을 맡기도 하였다. 하준수는 미군정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빨치산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6·25전쟁 중에는 태백산과 일월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54년에 부하의 밀고로 체포, 1955년에 총살되었다.
하준수 (河準洙)
하준수는 해방 이후 조선인민유격대 제3병단 부사령관을 역임한 군인이다. 남도부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주오대학 법학부 수학 중 태평양 전쟁 학병으로 징집되자, 이를 거부하고 귀국하여 지리산에 숨었다. 1945년 3월, 지리산에서 항일 결사단체인 보광당을 결성했다.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하여 제3병단 부사령관을 맡기도 하였다. 하준수는 미군정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빨치산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6·25전쟁 중에는 태백산과 일월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54년에 부하의 밀고로 체포, 1955년에 총살되었다.
남부군은 6.25전쟁 전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 이현상이 지휘하던 좌익 빨치산 부대이다.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 상륙 작전으로 인민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 11월 강원도 후평리에서 이현상은 이승엽과 함께 남반부인민유격대를 창설하였다. 12월 충북 제천지구에서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단으로 부대를 개편한 후 덕유산, 지리산, 백운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남부군단 예하의 지리산 빨치산은 전투경험이 많은 병사들이었기 때문에 한국군과 유엔군에 큰 부담을 주었다. 이에 한국군은 군단급 ‘백야전전투사령부’ 창설하여 남부군을 토벌하였다.
남부군 (南部軍)
남부군은 6.25전쟁 전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 이현상이 지휘하던 좌익 빨치산 부대이다.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 상륙 작전으로 인민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 11월 강원도 후평리에서 이현상은 이승엽과 함께 남반부인민유격대를 창설하였다. 12월 충북 제천지구에서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단으로 부대를 개편한 후 덕유산, 지리산, 백운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남부군단 예하의 지리산 빨치산은 전투경험이 많은 병사들이었기 때문에 한국군과 유엔군에 큰 부담을 주었다. 이에 한국군은 군단급 ‘백야전전투사령부’ 창설하여 남부군을 토벌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동북항일연군에 들어가 항일운동을 하였고,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내각 사무국 호위처 처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관료.
백학림 (白鶴林)
일제강점기 때, 동북항일연군에 들어가 항일운동을 하였고,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내각 사무국 호위처 처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관료.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세기와 더불어 (世紀와 더불어)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윤흥길이 지은 중편소설.
장마
윤흥길이 지은 중편소설.
강동정치학원은 남로당 계열의 활동을 지원할 정치공작대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8년 1월 1일 강동군에 설립한 북한 군사교육기관이다. 입교 학생은 모두 남한에서 월북한 자들로 창설 당시에는 대남공작요원 양성이 목적이었다. 제주4·3항쟁과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유격대요원 양성도 겸하게 되었다. 3개월의 군사 단기반과 6개월의 정치반이 있었고, 10차에 걸쳐 총원 2,385명을 양성하여 남파하였다. 한국군은 인민유격대 소탕 작전을 전개해야했기에 계획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군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강동정치학원 (江東政治學院)
강동정치학원은 남로당 계열의 활동을 지원할 정치공작대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8년 1월 1일 강동군에 설립한 북한 군사교육기관이다. 입교 학생은 모두 남한에서 월북한 자들로 창설 당시에는 대남공작요원 양성이 목적이었다. 제주4·3항쟁과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유격대요원 양성도 겸하게 되었다. 3개월의 군사 단기반과 6개월의 정치반이 있었고, 10차에 걸쳐 총원 2,385명을 양성하여 남파하였다. 한국군은 인민유격대 소탕 작전을 전개해야했기에 계획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군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반군대는 러시아 하바롭스크주의 한인 마을인 다반에서 조직된 한인 빨치산부대이다.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이 조직되고 산하에 적위군이 편성되었다. 적위군은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는 백위군 및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함락·해산되었다. 이후 하바롭스크 동쪽 다반이라는 한인 마을에서 조직된 부대가 다반군대이다. 1919년 이후 러시아 빨치산부대와 협력해 하바롭스크 해방 전투에 참여하였다. 1920년 4월참변 이후 블라고베센스크로 이동해 러시아 인민혁명군 8연대에 배속되었다. 다반군대는 한인사회당이 볼셰비키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다반군대 (다반軍隊)
다반군대는 러시아 하바롭스크주의 한인 마을인 다반에서 조직된 한인 빨치산부대이다.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이 조직되고 산하에 적위군이 편성되었다. 적위군은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는 백위군 및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함락·해산되었다. 이후 하바롭스크 동쪽 다반이라는 한인 마을에서 조직된 부대가 다반군대이다. 1919년 이후 러시아 빨치산부대와 협력해 하바롭스크 해방 전투에 참여하였다. 1920년 4월참변 이후 블라고베센스크로 이동해 러시아 인민혁명군 8연대에 배속되었다. 다반군대는 한인사회당이 볼셰비키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1949년 2월 25일 육군본부 정보국 산하에 창설되어 대북 침투 공작을 담당했던 특수부대.
호림부대 (虎林部隊)
1949년 2월 25일 육군본부 정보국 산하에 창설되어 대북 침투 공작을 담당했던 특수부대.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군단 부군단장, 민족보위성 부국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관료.
김자린 (金慈麟)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군단 부군단장, 민족보위성 부국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관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