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말기로부터 광복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1972년 9월부터 1978년 8월까지 『세대(世代)』에 발표하였다가 1978년 세운문화사에서 단행본 1·2집으로 간행하였고, 곧 이어 장학사에서 전8권으로 『세대』에 발표하였던 전분량을 발간하였다. 그 뒤 1985년 4월 기린원에서 원고지 3,000매 분량의 뒷부분을 첨가하여 전7권으로 완간하였다.
집필 이후 10여 년 만에 완성된 소설이다. 완간된 전7권의 각 권별 제목은 제1권 「잃어버린 계절」, 제2권 「기로(岐路)에서」, 제3권 「작은 공화국」, 제4권 「서림(西林)의 벽(壁)」, 제5권 「회명(晦明)의 군상(群像)」, 제6권 「분노의 계절」, 제7권 「추풍(秋風) 산하」 등이다.
제1권 「잃어버린 계절」은, 서두는 박태영의 친구 이규의 가족사로부터 시작되지만, 이야기는 태영의 등장부터 전개된다.
1933년 태영이 지식인이며 지주인 하영근에게 빌린 막심 고리끼의 수필집을 읽은 까닭에 불온서적을 읽은 죄로 일경에 체포되고, 이규가 이에 연루된다. 그러나 진주중학교 일본인 교장 하라다의 보증으로 둘은 무사히 방면된다.
1940년 일제의 학교 병영화와 창시개명 공포는 어린 나이지만 강한 민족의식을 가졌던 태영으로 하여금 중도 퇴학하게 하고, 이규는 어물어물 창씨개명의 강압을 피한 뒤 무사히 상급학교에 진학한다. 이규는 교또 삼고(三高)의 자유분방하고 학구적인 학풍 속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면서 학창시절을 구가한다.
제2권 「기로에서」는 이규가 도일한지 여섯 달쯤 후, 일본에 도착한 태영과 해후한 후의 이야기이다. 태영은 교외의 우유배달부로 취직하여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주경야독으로 공부하여 몇 달 후에 전검(專檢)시험에 1등으로 합격한다.
이를 계기로 일생의 반려자인 김숙자를 알게 된다. 태영은 우유배달 동료 중 무라까와란 인물의 영향으로 죄익사상에 눈을 뜨게 된다. 무라까와는 일본공산당 창설멤버였으나 일경을 피하여 지하에 숨은 인물이다.
제3권 「작은 공화국」은 이규와 태영이 일본에 온 지 3년 후, 1943년 말 일제의 징병제 공포로 애매한 한국 유학생들이 일본을 떠나는 이야기다.
일본을 떠나 지리산으로 은신하려고 태영이 한국으로 갈 배를 수배하는 도중, 중학 선배이자 후일 빨치산으로 전설적 이름을 남기게 되는 하준규를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어, 지리산으로 함께 들어가 그들의 작은 공화국을 세운다.
이들은 보광당(普光黨)이란 단체를 만들어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무예를 익힌다. 산속 생활에서 후에 남부군 사령관으로 전설적 명성을 남긴 이현상과 허무주의적 성향을 지닌 하영근의 친구인 윤창혁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태영과 하준규의 앞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제4권 「서림의 벽」은 이규와 김숙자까지 합류한 지리산 은둔생활과 해방을 맞은 직후의 태영과 하준규의 조선공산당 입당과 그들의 활동 이야기이다.
이규는 하영근의 후원으로 그의 외동딸 윤희와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고, 중앙당 기간요원으로 활동하는 태영은 신탁통치가 민족적 과제로 떠오를 때 당중앙이 반탁에서 찬탁으로 돌아선 데 대해 반론을 제기하다가 숙청된다.
윤창혁으로부터 공산당이 비인간적 독재조직으로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누누이 설교를 받은 바 있는 태영은 공산당에 환멸을 느낀다.
제5권 「회명의 군상」에서는 태영이 서울대학에 입학하여 독서회를 만들어 죄익이념을 익혀 나가고, 1946년 10월 조선공산당 주도하에 10월항쟁이 일어나 태영의 옛 동지들은 다시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 이야기이다. 당의 지령에 따라 영웅적 투쟁을 한 이들에게 태영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당의 지원이 전혀 없다.
공산당의 관료성·무책임성에 더욱 환멸을 느끼게 되나, 태영은 스스로 이들의 후방 지원을 담당하려 하여 교내에서 은밀한 모금운동을 한 결과 몇 트럭 분량의 후원 물자를 수집하여 철도편으로 진주까지 수송하지만, 경찰에 포착되어 실패한다. 제6권 「분노의 계절」 1948년 8월부터 1951년 8월까지의 태영의 활동이 주요 내용이다.
태영은 공상당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연구를 시도한다. 공산당 주류에서 탈락한 이우적·신동우 등을 면담하면서 공산당에 대하여 천착해가지만, 공산당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환멸은 커진다. 그러나 우익에 동조하지도 않는다. 인물난에 고심하던 남로당이 복당 권고를 하나 이를 물리친다.
1950년에 접어들어 약 3년 전 빨치산에 대량의 물자를 보급하려던 배후 인물을 꾸준히 추적하던 진주서 문남석 형사에게 덜미를 잡힌다. 진주로 압송되면 즉결처분될 터였으나 하영근의 도움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고, 수감생활 중에 6.25발발 소식을 듣게 되고 며칠 후에 자유의 몸이 된다.
그는 공산당의 명령으로 진주통신사의 통신원으로 파견된다. 김숙자와 함께 진주로 내려간 태영은 공산주의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김숙자에 대한 혐오감으로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이루지 못한다. 인민군의 패주로 태영이 당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절박한 상황에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제7권 「추풍 산하」 1951년 8월부터 1954년 6월까지의 지리산 속의 남부군의 빨치산 활동이 주요 내용이다. 같이 따라가겠다고 눈물로 애원하는 숙자에게 자신의 후사를 낳아 길러줄 것을 부탁하고 입산한 태영은 충직한 당원으로서 지켜야 할 계율과 인간적 본성 사이에 갈등과 회의를 겪는다.
자신의 운명을 너무나 경솔하게 공산당에 맡겨버린 무책임성을 스스로 단죄하겠다는 마음으로 최후의 빨치산이 되기로 결심한다. 쫓기고 쫓기는 고난의 빨치산 생활이 2년쯤 지났을 때 휴전협정이 조인된다.
거의 궤멸 상태에 이른 빨치산들은 산중의 미아가 되고, 토벌대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던 어느날 태영은 몇 명의 대원을 투항시키고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보광당 시절부터 동료이자 남매 같던 순이를 역사의 증인으로 남아야 한다고 피신시켜주지만, 순이는 체포되어 전향을 거부하다가 교수형을 당한다.
에필로그에서 1956년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이규는 격동의 역사를 증거하는 지리산을 찾는다. 김숙자가 낳은 태영의 아들은 프랑스 유학을 하여 화학자가 된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지주계급으로 그 신분의 제약 한계 속에서 인간미를 나타내는 하영근과 이규, 소시민적 지식인으로서 특유의 무력감에 빠져서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하였던 권창혁·김경주, 공산주의 이론을 신봉하면서도 당의 무모하고 획일적인 명령체계에 승복하지 못하여 갈등을 겪어야 하였던 하준규·박태영, 그리고 시류에 따라 부침하는 좌익·우익의 여러 인물들이 난세의 현실에 대처하여가는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집합하여놓은 것 같은 작품이다.
역사의 그물에 잡히지 않은 숱한 인간사, 승자가 되지 못하여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패자들, 역사의 행간에 묻혀버린 많은 비극의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민족의 대하(大河)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마치 국외자적 시각에서 서술하여 목격자적 증언으로 일관한 특징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