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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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사간원에 소속된 종3품 관직.
지사간원사 (知司諫院事)
조선 초기 사간원에 소속된 종3품 관직.
고려시대 낭사(郎舍)와 조선시대 사간원·사헌부의 합칭, 또는 두 관서 관원의 총칭.
간관 (諫官)
고려시대 낭사(郎舍)와 조선시대 사간원·사헌부의 합칭, 또는 두 관서 관원의 총칭.
조선후기 사헌부·사간원에서 1696년부터 1870년까지 올린 상소를 발췌하여 편찬한 등록. 상소문.
간의등록 (諫議謄錄)
조선후기 사헌부·사간원에서 1696년부터 1870년까지 올린 상소를 발췌하여 편찬한 등록. 상소문.
1932년 이왕직실록편찬회에서 조선후기 사헌부·사간원에서 올린 상소를 초록한 등록. 상소문.
간의상소등록 (諫議上疏謄錄)
1932년 이왕직실록편찬회에서 조선후기 사헌부·사간원에서 올린 상소를 초록한 등록. 상소문.
1932년 이왕직실록편찬회에서 조선후기 사헌부·사간원에서 올린 차자를 발췌하여 수록한 등록. 상소문.
간의차자등록 (諫議箚子謄錄)
1932년 이왕직실록편찬회에서 조선후기 사헌부·사간원에서 올린 차자를 발췌하여 수록한 등록. 상소문.
간쟁은 고려·조선시대 국왕의 잘못된 명령과 행위에 대해 언관(言官)이 비판하는 행위이다. 원래 간쟁은 간관(諫官)이 수행하는 기능이지만, 대관(臺官)도 담당하였고 홍문관(弘文館)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간쟁은 직접 말로 하거나 문서를 작성하여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간쟁은 왕권의 잘못된 행사를 견제하는 성격이 있었다.
간쟁 (諫諍)
간쟁은 고려·조선시대 국왕의 잘못된 명령과 행위에 대해 언관(言官)이 비판하는 행위이다. 원래 간쟁은 간관(諫官)이 수행하는 기능이지만, 대관(臺官)도 담당하였고 홍문관(弘文館)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간쟁은 직접 말로 하거나 문서를 작성하여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간쟁은 왕권의 잘못된 행사를 견제하는 성격이 있었다.
대간은 고려 · 조선시대 탄핵과 감찰을 맡은 대관(臺官)과 간쟁과 봉박을 맡은 간관(諫官)의 합칭이다. 대간의 기원은 중국의 주(周)나라이다. 고려시대에 대관은 어사대(御史臺), 간관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낭사(郎舍)에 소속되었고, 조선시대에 대관은 사헌부(司憲府), 간관은 사간원(司諫院)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의 대간과 비교하여 조선시대의 대간은 직책과 정원은 줄었으나 감찰의 규모는 늘려 신료를 감찰하는 기능을 강화하였고, 간관보다 대관의 위상이 확실히 높았다. 국왕과 신료의 잘못된 언행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대간 (臺諫)
대간은 고려 · 조선시대 탄핵과 감찰을 맡은 대관(臺官)과 간쟁과 봉박을 맡은 간관(諫官)의 합칭이다. 대간의 기원은 중국의 주(周)나라이다. 고려시대에 대관은 어사대(御史臺), 간관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낭사(郎舍)에 소속되었고, 조선시대에 대관은 사헌부(司憲府), 간관은 사간원(司諫院)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의 대간과 비교하여 조선시대의 대간은 직책과 정원은 줄었으나 감찰의 규모는 늘려 신료를 감찰하는 기능을 강화하였고, 간관보다 대관의 위상이 확실히 높았다. 국왕과 신료의 잘못된 언행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조선시대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왕에게 올리는 계본(啓本) 또는 계목(啓目).
대계 (臺啓)
조선시대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왕에게 올리는 계본(啓本) 또는 계목(啓目).
대사간은 조선시대에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으로 정3품 당상관직이다. 사간원은 사헌부와 함께 양사 혹은 대간으로 지칭되며 언론을 담당하였는데, 대사간은 최고 책임자로서 사간 이하의 간관들을 통솔하며 논의를 주도하거나 내부 이견을 조정하였다. 1506년(연산군12)애 사간원이 폐지될 당시 대사간직 역시 폐지되었으나 중종반정 직후 복구되었다.
대사간 (大司諫)
대사간은 조선시대에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으로 정3품 당상관직이다. 사간원은 사헌부와 함께 양사 혹은 대간으로 지칭되며 언론을 담당하였는데, 대사간은 최고 책임자로서 사간 이하의 간관들을 통솔하며 논의를 주도하거나 내부 이견을 조정하였다. 1506년(연산군12)애 사간원이 폐지될 당시 대사간직 역시 폐지되었으나 중종반정 직후 복구되었다.
고려시대 어사대(御史臺)의 대관과 중서문하성의 성랑(省郎)의 합칭.
대성 (臺省)
고려시대 어사대(御史臺)의 대관과 중서문하성의 성랑(省郎)의 합칭.
조선시대 궁궐 내에 설치한 사헌부·사간원의 회의실.
대청 (臺廳)
조선시대 궁궐 내에 설치한 사헌부·사간원의 회의실.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합하여 부른 말.
삼사 (三司)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합하여 부른 말.
1540년(중종 35)에 미원(薇垣 : 사간원) 관리들의 계회(契會)를 그린 계회도.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成世昌 題詩 薇垣契會圖)
1540년(중종 35)에 미원(薇垣 : 사간원) 관리들의 계회(契會)를 그린 계회도.
조선시대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합칭.
양사 (兩司)
조선시대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합칭.
우보궐은 조선 초기, 문하부 낭사의 하나로 설치된 정5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 7월에 조선 왕조를 개창한 직후,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하면서 좌보궐과 함께 정5품직으로 설치되어 직접 사무를 주장(主掌)하던 관원인 장무(掌務)의 역할을 하였다. 1401년(태종 1) 문하부가 혁파되고 의정부와 사간원을 설치하면서 헌납으로 바뀌었다.
우보궐 (右補闕)
우보궐은 조선 초기, 문하부 낭사의 하나로 설치된 정5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 7월에 조선 왕조를 개창한 직후,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하면서 좌보궐과 함께 정5품직으로 설치되어 직접 사무를 주장(主掌)하던 관원인 장무(掌務)의 역할을 하였다. 1401년(태종 1) 문하부가 혁파되고 의정부와 사간원을 설치하면서 헌납으로 바뀌었다.
우복야(右僕射)는 조선 초기, 사헌부 · 사간원 · 홍문관 등 3사(三司)에 두었던 정2품 관직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3사에만 설치되었던 관직이다. 1392년(태조 1)부터 1400년(정종 2)까지 8년간만 설치가 확인된다. 우복야는 회계를 전담하는 핵심 관서인 3사의 당상관으로 부서의 업무뿐 아니라 당시 정치적 문제에도 의견을 개진하는 요직의 하나였다.
우복야 (右僕射)
우복야(右僕射)는 조선 초기, 사헌부 · 사간원 · 홍문관 등 3사(三司)에 두었던 정2품 관직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3사에만 설치되었던 관직이다. 1392년(태조 1)부터 1400년(정종 2)까지 8년간만 설치가 확인된다. 우복야는 회계를 전담하는 핵심 관서인 3사의 당상관으로 부서의 업무뿐 아니라 당시 정치적 문제에도 의견을 개진하는 요직의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수찬, 사간원정언,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서유망 (徐有望)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수찬, 사간원정언,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우헌납은 조선시대에 국왕에게 간쟁하는 일을 맡은 간관 계열의 직제이다. 고려시대 간쟁을 담당하던 중서문하성의 낭사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여러 차례의 직제 변경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1401년(태종 1)에 문하부가 혁파되고 사간원이 독립기구로 개편될 때 좌 · 우헌납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460년(세조 6) 좌헌납과 함께 혁파되었다가 1463년(세조 9)에 헌납 1인이 재설치되면서 우헌납의 직명이 사라지게 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사간원에 정5품의 헌납1좌로 정리되었다.
우헌납 (右獻納)
우헌납은 조선시대에 국왕에게 간쟁하는 일을 맡은 간관 계열의 직제이다. 고려시대 간쟁을 담당하던 중서문하성의 낭사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여러 차례의 직제 변경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1401년(태종 1)에 문하부가 혁파되고 사간원이 독립기구로 개편될 때 좌 · 우헌납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460년(세조 6) 좌헌납과 함께 혁파되었다가 1463년(세조 9)에 헌납 1인이 재설치되면서 우헌납의 직명이 사라지게 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사간원에 정5품의 헌납1좌로 정리되었다.
조선 후기에,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식 (李植)
조선 후기에,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의 정6품 관직.
정언 (正言)
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의 정6품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