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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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발생했던 다양한 사건을 비롯하여 정치와 경제 및 사회, 사상과 문화, 외교와 군사, 대외 전쟁사 등 역사학 연구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자료를 사료(史料)라고 한다. 즉 지난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사용되는 기본적인 역사 자료를 말한다.
사료 (史料)
과거에 발생했던 다양한 사건을 비롯하여 정치와 경제 및 사회, 사상과 문화, 외교와 군사, 대외 전쟁사 등 역사학 연구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자료를 사료(史料)라고 한다. 즉 지난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사용되는 기본적인 역사 자료를 말한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제연맹회의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편찬한 관찬서. 자료집.
한일관계사료집 (韓日關係史料集)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제연맹회의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편찬한 관찬서. 자료집.
역사 연구에서 실증적인 방법을 중시하는 학문.
실증사학 (實證史學)
역사 연구에서 실증적인 방법을 중시하는 학문.
임시사료편찬회는 1919년 7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사료를 수집·정리·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를 정리하고 책을 편찬하여 국제연맹에 일본의 부당한 한국 강점 사실 및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고자 설립되었다. 한일관계와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일관계사료집』 전 4권을 간행하고 업무를 종결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사 서술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간행으로 이어졌다.
임시사료편찬회 (臨時史料編纂會)
임시사료편찬회는 1919년 7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사료를 수집·정리·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를 정리하고 책을 편찬하여 국제연맹에 일본의 부당한 한국 강점 사실 및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고자 설립되었다. 한일관계와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일관계사료집』 전 4권을 간행하고 업무를 종결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사 서술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간행으로 이어졌다.
김정주는 해방 이후 「일본의 한국침략사」, 「구주와 한인」, 「일제통치사료」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33년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1938년에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다. 1945년 재일한인사회의 민족운동에 투신하여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봉환하는데 일조하였다. 한국사료연구소를 설립하고 한일고대관계사자료와 일제의 한국침략사사료를 수집하여 한일고대관계사의 개척자가 되었다. 재일한국인의 민족적 단결과 한국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한래문화(韓來文化)’란 용어로 정리하는 등 학문적으로 기여하였다.
김정주 (金正柱)
김정주는 해방 이후 「일본의 한국침략사」, 「구주와 한인」, 「일제통치사료」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33년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1938년에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다. 1945년 재일한인사회의 민족운동에 투신하여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봉환하는데 일조하였다. 한국사료연구소를 설립하고 한일고대관계사자료와 일제의 한국침략사사료를 수집하여 한일고대관계사의 개척자가 되었다. 재일한국인의 민족적 단결과 한국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한래문화(韓來文化)’란 용어로 정리하는 등 학문적으로 기여하였다.
조동호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사료조사편찬부원, 독립신문, 동아일보 기자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이다. 1914년 여운형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19년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하였으며, 상해판 『독립신문』의 기자로 신문제작을 위한 한글활자를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소한 후에 『조선중앙일보』를 인수하여 항일 논설을 집필하였다. 1945년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제1차 건국준비위원회의 선전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조동호 (趙東祜)
조동호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사료조사편찬부원, 독립신문, 동아일보 기자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이다. 1914년 여운형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19년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하였으며, 상해판 『독립신문』의 기자로 신문제작을 위한 한글활자를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소한 후에 『조선중앙일보』를 인수하여 항일 논설을 집필하였다. 1945년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제1차 건국준비위원회의 선전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07년 1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규장각에서 칙명과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일지. 궁중기록물·관청일기.
규장각일기 (奎章閣日記)
1907년 1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규장각에서 칙명과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일지. 궁중기록물·관청일기.
1919년에 조직되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사료편찬기구.
사료조사편찬회 (史料調査編纂會)
1919년에 조직되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사료편찬기구.
조선전기 제9대 왕 성종대부터 제13대 왕 명종초까지 발생한 모든 내우외환을 진압한 전말을 수록한 역사서.
속무정보감 (續武定寶鑑)
조선전기 제9대 왕 성종대부터 제13대 왕 명종초까지 발생한 모든 내우외환을 진압한 전말을 수록한 역사서.
이학림은 제2·3대 국회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조사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7년 충청북도 음성 출생으로, 교사로 일하다 만방기업 사장으로 활동했다. 1950년 무소속으로 고향에서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자유당에 입당해 제3대 국회의원으로 재선되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조사위원으로 군수용 원면의 부정처리 사건인 원면사건 조사에 참여했고, 김창룡 저격사건 조사특위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5·16군사정변 후 민정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중앙사료공사 사장과 한국해양개발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2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학림 (李鶴林)
이학림은 제2·3대 국회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조사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7년 충청북도 음성 출생으로, 교사로 일하다 만방기업 사장으로 활동했다. 1950년 무소속으로 고향에서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자유당에 입당해 제3대 국회의원으로 재선되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조사위원으로 군수용 원면의 부정처리 사건인 원면사건 조사에 참여했고, 김창룡 저격사건 조사특위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5·16군사정변 후 민정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중앙사료공사 사장과 한국해양개발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2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일본 에도시대의 쯔시마번주(對馬藩主) 소케(宗家)에 전래된 문서. 종가문서·외교문서.
소케문서 (宗家文書)
일본 에도시대의 쯔시마번주(對馬藩主) 소케(宗家)에 전래된 문서. 종가문서·외교문서.
대한제분㈜은 1952년에 설립되어 소맥분을 주로 생산하는 국내의 대표 제분 회사이다. 1952년 국내 최대 규모의 제분 시설을 갖추며 주식회사로 창립되었고, 1957년 신관 제분 공장을 신축하면서 동양 제일의 단일 제분 공장으로 성장하였다. ‘곰표’ 밀가루 생산 등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2022년 현재 80여 종의 밀가루 제품과 60여 종의 프리믹스 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이 외에 파스타 수입, 커피 등 음료, 베이커리, 멕시칸 푸드 등의 사업도 하고 있다.
대한제분㈜ (大韓製粉(株))
대한제분㈜은 1952년에 설립되어 소맥분을 주로 생산하는 국내의 대표 제분 회사이다. 1952년 국내 최대 규모의 제분 시설을 갖추며 주식회사로 창립되었고, 1957년 신관 제분 공장을 신축하면서 동양 제일의 단일 제분 공장으로 성장하였다. ‘곰표’ 밀가루 생산 등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2022년 현재 80여 종의 밀가루 제품과 60여 종의 프리믹스 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이 외에 파스타 수입, 커피 등 음료, 베이커리, 멕시칸 푸드 등의 사업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