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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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은 역사를 남기고 전하고 탐구하는 방법과 인식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 어떤 개인 또는 사회가 갖는 시간 속의 자기 의식이다. 한국 역사는 중국 역사학의 영향과 주체적 수용 과정, 역사 인식의 변화와 역사학의 전개를 토대로 검토해야 한다. 근대 역사학은 서구 대학의 역사학을 받아들이고,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면서 성립되었다. 21세기 역사학은 평화와 민주주의, 인류 문명사의 주제를 탐색하며 학문 발전과 공동체의 공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학 (史學)
사학은 역사를 남기고 전하고 탐구하는 방법과 인식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 어떤 개인 또는 사회가 갖는 시간 속의 자기 의식이다. 한국 역사는 중국 역사학의 영향과 주체적 수용 과정, 역사 인식의 변화와 역사학의 전개를 토대로 검토해야 한다. 근대 역사학은 서구 대학의 역사학을 받아들이고,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면서 성립되었다. 21세기 역사학은 평화와 민주주의, 인류 문명사의 주제를 탐색하며 학문 발전과 공동체의 공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양사학은 인류 역사시대에서 서양 세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보고 그 문화의 변천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한국 서양사학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서양’이라는 실재가 ‘서양사’를 낳았다기보다는 ‘서양사’라는 학제가 ‘서양’을 상상하게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양사학은 가상의 실재인 ‘서양’의 역사를 재현하는 학문이라 할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한국의 서양사학과 제국의 오리엔탈리즘, 서양사와 국사가 맺어 온 서구 중심주의의 담론적 공모 관계를 드러내고 서양사의 해체를 21세기 한국 역사학의 과제로 제시한다.
서양사학 (西洋史學)
서양사학은 인류 역사시대에서 서양 세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보고 그 문화의 변천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한국 서양사학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서양’이라는 실재가 ‘서양사’를 낳았다기보다는 ‘서양사’라는 학제가 ‘서양’을 상상하게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양사학은 가상의 실재인 ‘서양’의 역사를 재현하는 학문이라 할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한국의 서양사학과 제국의 오리엔탈리즘, 서양사와 국사가 맺어 온 서구 중심주의의 담론적 공모 관계를 드러내고 서양사의 해체를 21세기 한국 역사학의 과제로 제시한다.
사학합제는 조선 후기에 사학(四學)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한 시험의 한 종류이다. 사학에서 매년 4차에 걸쳐 제술과 고강 시험을 시행하여 일정 수의 인원을 선발하고, 선발된 인원을 연말에 성균관 대사성이 다시 시험하여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최종 합격자에게는 식년시 생원 · 진사시 때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사학합제 (四學合製)
사학합제는 조선 후기에 사학(四學)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한 시험의 한 종류이다. 사학에서 매년 4차에 걸쳐 제술과 고강 시험을 시행하여 일정 수의 인원을 선발하고, 선발된 인원을 연말에 성균관 대사성이 다시 시험하여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최종 합격자에게는 식년시 생원 · 진사시 때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1969년 대구에서 설립된 역사연구 학술단체.
대구사학회 (大丘史學會)
1969년 대구에서 설립된 역사연구 학술단체.
동양사학회는 동양사학의 연구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의 학술단체이다. 1965년 11월 20일 창립되었다. 동양사학 강의의 편의를 위하여 1966년 2월에 『동양사료초집』을 간행하였고, 10월 30일에는 학회지 『동양사학연구』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주요활동은 학회지 간행, 학술회의 개최, 연구서 간행 등이다. 1983년 이래 분과모임이 이후 점점 활성화되어 중국고대사학회, 일본역사학회 등의 분과학회가 창립되었다. 동양사연구는 한중·한일관계사 중심일 정도로 현재 발표되는 논문의 90% 정도가 중국과 일본에 집중된 실정이다.
동양사학회 (東洋史學會)
동양사학회는 동양사학의 연구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의 학술단체이다. 1965년 11월 20일 창립되었다. 동양사학 강의의 편의를 위하여 1966년 2월에 『동양사료초집』을 간행하였고, 10월 30일에는 학회지 『동양사학연구』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주요활동은 학회지 간행, 학술회의 개최, 연구서 간행 등이다. 1983년 이래 분과모임이 이후 점점 활성화되어 중국고대사학회, 일본역사학회 등의 분과학회가 창립되었다. 동양사연구는 한중·한일관계사 중심일 정도로 현재 발표되는 논문의 90% 정도가 중국과 일본에 집중된 실정이다.
미술사학 연구를 위하여 설립된 학술 단체.
한국미술사학회 (韓國美術史學會)
미술사학 연구를 위하여 설립된 학술 단체.
대구광역시 동구 혁신대로에 위치한 교육부 산하단체.
한국사학진흥재단 (韓國私學進興財團)
대구광역시 동구 혁신대로에 위치한 교육부 산하단체.
고려 전기에, 중추원사,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
노단 (盧旦)
고려 전기에, 중추원사,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과시등록』은 1634년(인조 12)부터 1677년(숙종 3)까지 사학(四學)의 각종 과시(課試)와 지방 공도회(公都會) 등 교육과 관련된 문서를 예조 계제사(稽制司)에서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시행 세칙인 절목(節目)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서 당시의 교육 제도를 이해하기 위한 일차적인 자료가 된다. 필사본 2책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도서에 포함되어 있다.
과시등록 (課試謄錄)
『과시등록』은 1634년(인조 12)부터 1677년(숙종 3)까지 사학(四學)의 각종 과시(課試)와 지방 공도회(公都會) 등 교육과 관련된 문서를 예조 계제사(稽制司)에서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시행 세칙인 절목(節目)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서 당시의 교육 제도를 이해하기 위한 일차적인 자료가 된다. 필사본 2책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도서에 포함되어 있다.
고려 전기에, 사학 12도의 하나인 양신공도를 설립한 문신.
박명보 (朴明保)
고려 전기에, 사학 12도의 하나인 양신공도를 설립한 문신.
관학유생응제는 조선시대,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 또는 일반 유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제술 시험이다. 유생들에게 학문을 격려할 목적으로 실시하였으며, 전국의 일반 유생을 대상으로 급제자를 선발하는 과거시험처럼 확대 운영되기도 하였다. 과거시험으로 확대 운영된 응제는 이후 고종 대의 『문과방목』에 기로유생응제(耆老儒生應製)라는 이름으로 별시의 한 종류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관학유생응제 (館學儒生應製)
관학유생응제는 조선시대,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 또는 일반 유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제술 시험이다. 유생들에게 학문을 격려할 목적으로 실시하였으며, 전국의 일반 유생을 대상으로 급제자를 선발하는 과거시험처럼 확대 운영되기도 하였다. 과거시험으로 확대 운영된 응제는 이후 고종 대의 『문과방목』에 기로유생응제(耆老儒生應製)라는 이름으로 별시의 한 종류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독사신론은 1908년 신채호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 역사서이다. 1908년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는데 『소년』에 「국사사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서론과 단군에서부터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상세(上世)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고대사를 반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의 민족주의사학이 식민사관에 대처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근거가 되는 역사서이다.
독사신론 (讀史新論)
독사신론은 1908년 신채호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 역사서이다. 1908년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는데 『소년』에 「국사사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서론과 단군에서부터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상세(上世)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고대사를 반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의 민족주의사학이 식민사관에 대처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근거가 되는 역사서이다.
기해박해는 1839년(헌종 5)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이다. 조선 천주교회는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이후, 30여 년간 평신도만의 신앙 공동체로 유지해 왔다. 1811년경부터는 성직자 영입 운동을 추진하여 1836년부터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잠입하여 사목하면서 신자 수가 약 1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조정에서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를 단행하였다. 전국적 규모로 신자들의 피해가 커서 서울과 경기 지방에서만 200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순교자 70명은 1925년 시복되었다가 1984년 시성되었다.
기해박해 (己亥迫害)
기해박해는 1839년(헌종 5)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이다. 조선 천주교회는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이후, 30여 년간 평신도만의 신앙 공동체로 유지해 왔다. 1811년경부터는 성직자 영입 운동을 추진하여 1836년부터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잠입하여 사목하면서 신자 수가 약 1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조정에서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를 단행하였다. 전국적 규모로 신자들의 피해가 커서 서울과 경기 지방에서만 200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순교자 70명은 1925년 시복되었다가 1984년 시성되었다.
겸교수는 조선시대에 사학(四學), 관상감, 사역원, 형조의 율학청, 호조의 산학청, 도화서, 혜민서 등에 설치한 종6품 관직이다. 교육과 업무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히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임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학의 겸교수와 사역원의 한학(漢學) 겸교수는 문관이 겸직하였고, 관상감 등 기술관청의 겸교수는 해당 분야의 중인 출신의 기술관리를 임용하였다.
겸교수 (兼敎授)
겸교수는 조선시대에 사학(四學), 관상감, 사역원, 형조의 율학청, 호조의 산학청, 도화서, 혜민서 등에 설치한 종6품 관직이다. 교육과 업무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히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임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학의 겸교수와 사역원의 한학(漢學) 겸교수는 문관이 겸직하였고, 관상감 등 기술관청의 겸교수는 해당 분야의 중인 출신의 기술관리를 임용하였다.
1974년 동양사학자 김상기의 발표한 논문 27편과 학부 졸업논문을 수록한 학술서.
동방사논총 (東方史論叢)
1974년 동양사학자 김상기의 발표한 논문 27편과 학부 졸업논문을 수록한 학술서.
고려 후기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의 정3품 관직.
사백 (詞伯)
고려 후기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의 정3품 관직.
사부학당은 조선시대 한성의 동·서·남·중 4개 부에 설치된 관립교육기관이다. 보통 사학이라 칭한다. 제도적으로는 성균관의 부속학교로 볼 수 있지만, 연령이나 수학 과정에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성균관은 생원·진사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사부학당은 유학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사부학당은 한성 지역의 유생을 행정 단위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관립교육기관이라는 점, 제도의 존속 기간이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교육사적 의미가 크다.
사부학당 (四部學堂)
사부학당은 조선시대 한성의 동·서·남·중 4개 부에 설치된 관립교육기관이다. 보통 사학이라 칭한다. 제도적으로는 성균관의 부속학교로 볼 수 있지만, 연령이나 수학 과정에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성균관은 생원·진사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사부학당은 유학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사부학당은 한성 지역의 유생을 행정 단위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관립교육기관이라는 점, 제도의 존속 기간이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교육사적 의미가 크다.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김석형 (金錫亨)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문정은 고려 전기, 동여진을 정벌한 공신이자 사학 십이도의 하나인 정헌공도를 세운 문신이다. 고려 전기에 추충찬화탕구정새공신에 책록된 공신으로, 형부상서·참지정사를 역임하였고 중서시랑평장사를 거쳐 수태위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사학(私學)을 일으켜서 십이도(十二徒)의 하나인 정헌공도(貞獻公徒)를 세웠다. 선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정헌(貞獻)이다.
문정 (文正)
문정은 고려 전기, 동여진을 정벌한 공신이자 사학 십이도의 하나인 정헌공도를 세운 문신이다. 고려 전기에 추충찬화탕구정새공신에 책록된 공신으로, 형부상서·참지정사를 역임하였고 중서시랑평장사를 거쳐 수태위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사학(私學)을 일으켜서 십이도(十二徒)의 하나인 정헌공도(貞獻公徒)를 세웠다. 선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정헌(貞獻)이다.
고려 전기에, 사학12도 가운데 하나인 충평공도를 설립한 문신.
유감 (柳監)
고려 전기에, 사학12도 가운데 하나인 충평공도를 설립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