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상대등"
검색결과 총 17건
남북국시대 때, 신라 무열왕의 4세손으로, 장군, 상대등 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종실.
김사인 (金思仁)
남북국시대 때, 신라 무열왕의 4세손으로, 장군, 상대등 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종실.
대등(大等)은 신라 중고기(中古期)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신료 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진흥왕 대 여러 금석문에서 그 존재가 나타나며, 당시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등, 전대등, 사대등(仕大等) 등은 대등으로부터 분화된 관직명이다.
대등 (大等)
대등(大等)은 신라 중고기(中古期)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신료 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진흥왕 대 여러 금석문에서 그 존재가 나타나며, 당시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등, 전대등, 사대등(仕大等) 등은 대등으로부터 분화된 관직명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파진찬 · 상대등 등을 역임한 장수이다. 할아버지는 잉숙(仍宿), 아버지는 이찬(伊湌) 물력(勿力)이다. 545년 신라 왕조의 역사서인 『국사(國史)』를 편찬하였고, 551년 고구려를 쳐서 죽령(竹嶺) 이북의 10군(郡)을 빼앗아 신라 영토로 만들었으며, 진지왕(眞智王) 즉위에 공헌하는 등 신라 중고기의 중요한 대신으로서 활약했다.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즉 「마운령비(摩雲嶺碑)」와 「창녕비(昌寧碑)」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흥왕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장군으로 정치적 비중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거칠부 (居柒夫)
삼국시대 신라의 파진찬 · 상대등 등을 역임한 장수이다. 할아버지는 잉숙(仍宿), 아버지는 이찬(伊湌) 물력(勿力)이다. 545년 신라 왕조의 역사서인 『국사(國史)』를 편찬하였고, 551년 고구려를 쳐서 죽령(竹嶺) 이북의 10군(郡)을 빼앗아 신라 영토로 만들었으며, 진지왕(眞智王) 즉위에 공헌하는 등 신라 중고기의 중요한 대신으로서 활약했다.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즉 「마운령비(摩雲嶺碑)」와 「창녕비(昌寧碑)」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흥왕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장군으로 정치적 비중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대재상은 태봉 시기에 있었던 관계(官階) 가운데 최고 등급의 품계이다. 궁예는 904년에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정하면서, 정광 · 원보 · 대상 · 원윤 · 좌윤 · 정조 · 보윤 · 군윤 · 중윤 등 9등급으로 구성된 품계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태봉 시기에는 이와 별도로 대재상 · 중부 · 태사훈 · 보좌상 · 주서령 · 광록승 · 봉조판 · 봉진위 · 좌진사 등 9등급으로 구성된 품계를 다시 설치하였다.
대재상 (大宰相)
대재상은 태봉 시기에 있었던 관계(官階) 가운데 최고 등급의 품계이다. 궁예는 904년에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정하면서, 정광 · 원보 · 대상 · 원윤 · 좌윤 · 정조 · 보윤 · 군윤 · 중윤 등 9등급으로 구성된 품계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태봉 시기에는 이와 별도로 대재상 · 중부 · 태사훈 · 보좌상 · 주서령 · 광록승 · 봉조판 · 봉진위 · 좌진사 등 9등급으로 구성된 품계를 다시 설치하였다.
금강은 655년(태종무열왕 2) 정월에 이찬의 관등으로서 상대등에 임명되었다가, 5년 뒤인 660년(태종무열왕 7) 1월에 사망한 삼국시대 신라의 관리이다. 행적 관련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660년(태종무열왕 7년) 정월에 사망하였다.
금강 (金剛)
금강은 655년(태종무열왕 2) 정월에 이찬의 관등으로서 상대등에 임명되었다가, 5년 뒤인 660년(태종무열왕 7) 1월에 사망한 삼국시대 신라의 관리이다. 행적 관련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660년(태종무열왕 7년) 정월에 사망하였다.
노리부는 신라 진평왕대에 상대등을 역임한 진골 귀족으로, 진평왕 즉위년인 579년 8월에 이찬으로서 상대등의 자리에 올랐다. 진평왕에 앞선 왕인 진지왕이 재위 4년째에 귀족들에 의해 폐위되었는데, 그 직후 노리부가 상대등이 된 것을 보면 진지왕 폐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노리부 (弩里夫)
노리부는 신라 진평왕대에 상대등을 역임한 진골 귀족으로, 진평왕 즉위년인 579년 8월에 이찬으로서 상대등의 자리에 올랐다. 진평왕에 앞선 왕인 진지왕이 재위 4년째에 귀족들에 의해 폐위되었는데, 그 직후 노리부가 상대등이 된 것을 보면 진지왕 폐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일곱째 아들인 왕자.
김개원 (金愷元)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일곱째 아들인 왕자.
신충은 통일신라 성덕왕 25년(726) 당에 하정사로 파견되어 숙위하여 성덕왕 32년(733) 초가을 당 현종의 칙서를 가지고 귀국한 성덕왕의 종제이다. 그는 성덕왕 33년(734) 정월 당 현종에게 성덕왕을 대신하여 표문을 올린 좌령군위 원외장군(左領軍衛員外將軍) 김충신(金忠信)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귀국하여 효성왕 대에 이찬으로서 중시를, 경덕왕 대에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신충 (信忠)
신충은 통일신라 성덕왕 25년(726) 당에 하정사로 파견되어 숙위하여 성덕왕 32년(733) 초가을 당 현종의 칙서를 가지고 귀국한 성덕왕의 종제이다. 그는 성덕왕 33년(734) 정월 당 현종에게 성덕왕을 대신하여 표문을 올린 좌령군위 원외장군(左領軍衛員外將軍) 김충신(金忠信)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귀국하여 효성왕 대에 이찬으로서 중시를, 경덕왕 대에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비담의 난 (毗曇의 亂)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성시중, 상대등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862년(경문왕 2) 정월에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집사성(執事省) 시중이 되었고, 874년(경문왕 14)에는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이찬으로 승진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재직한 지 1년이 지난 875년에 헌강왕이 즉위하자 상대등에서 물러났다.
위진 (魏珍)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성시중, 상대등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862년(경문왕 2) 정월에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집사성(執事省) 시중이 되었고, 874년(경문왕 14)에는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이찬으로 승진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재직한 지 1년이 지난 875년에 헌강왕이 즉위하자 상대등에서 물러났다.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상대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관리·대신.
의정 (義正)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상대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관리·대신.
삼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상대등을 역임한 신라의 관리.
철부 (哲夫)
삼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상대등을 역임한 신라의 관리.
헌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09~826년이다. 할아버지인 원성왕 대부터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형인 소성왕이 즉위 2년 만에 죽고 어린 조카 애장왕이 즉위하자 섭정을 하다가 난을 일으켜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관제개혁을 통해 왕권강화를 도모했고, 불사를 금하여 귀족세력을 억압했으며, 일가가 정치권력을 독점하자 반발한 구귀족들이 김헌창의 난을 일으켰다. 819년에 당의 요청으로 군사 3만을 보내 절도사의 반란진압을 도왔고, 826년에는 패강에 300리 장성을 쌓았다.
헌덕왕 (憲德王)
헌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09~826년이다. 할아버지인 원성왕 대부터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형인 소성왕이 즉위 2년 만에 죽고 어린 조카 애장왕이 즉위하자 섭정을 하다가 난을 일으켜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관제개혁을 통해 왕권강화를 도모했고, 불사를 금하여 귀족세력을 억압했으며, 일가가 정치권력을 독점하자 반발한 구귀족들이 김헌창의 난을 일으켰다. 819년에 당의 요청으로 군사 3만을 보내 절도사의 반란진압을 도왔고, 826년에는 패강에 300리 장성을 쌓았다.
흥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26~836년이다. 형인 김언승과 함께 애장왕을 몰아내고 형이 헌덕왕으로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 상대등에 올라, 왕위 계승의 기반을 마련했다. 828년 1만여 명의 병졸로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고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에 임명했으며, 같은 해 차 종자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 모든 관등의 복색을 달리하여 골품 간의 계층구별을 엄격히 했고 사치풍조를 금하는 교서를 내렸다. 집사부를 집사성으로 개편했고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했다. 후사 없이 승하하여 사후에 왕위 다툼이 일어났다.
흥덕왕 (興德王)
흥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26~836년이다. 형인 김언승과 함께 애장왕을 몰아내고 형이 헌덕왕으로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 상대등에 올라, 왕위 계승의 기반을 마련했다. 828년 1만여 명의 병졸로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고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에 임명했으며, 같은 해 차 종자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 모든 관등의 복색을 달리하여 골품 간의 계층구별을 엄격히 했고 사치풍조를 금하는 교서를 내렸다. 집사부를 집사성으로 개편했고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했다. 후사 없이 승하하여 사후에 왕위 다툼이 일어났다.
삼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군국사를 역임한 신라의 관리.
연충 (連忠)
삼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군국사를 역임한 신라의 관리.
삼국시대 신라의 제1관등인 서불한 을 역임한 관리.
사진 (思眞)
삼국시대 신라의 제1관등인 서불한 을 역임한 관리.
신라시대에 일시적으로 설정된 명예직 성격의 관직.
상등 (上等)
신라시대에 일시적으로 설정된 명예직 성격의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