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상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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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고려시대 산림과 연못, 공장(工匠)과 영조(營造)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이다. 고려의 가장 중요한 행정기구인 상서6부의 하나로, 산림과 연못의 관리, 기술자인 공장(工匠)의 관할, 궁궐 · 관청 · 사찰 등의 건축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6부의 업무 가운데 중요성이 작아 재신(宰臣)이 공부의 판사에 임명되지 않는 경우나 관부 자체가 폐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공부 (工部)
공부는 고려시대 산림과 연못, 공장(工匠)과 영조(營造)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이다. 고려의 가장 중요한 행정기구인 상서6부의 하나로, 산림과 연못의 관리, 기술자인 공장(工匠)의 관할, 궁궐 · 관청 · 사찰 등의 건축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6부의 업무 가운데 중요성이 작아 재신(宰臣)이 공부의 판사에 임명되지 않는 경우나 관부 자체가 폐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시대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종7품 관직.
도사 (都事)
고려시대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종7품 관직.
병관은 고려시대, 무선(武選) · 군무(軍務) · 의위(儀衛) · 우역(郵驛)을 담당하였던 관청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918년(태조 1)에 병부를 두었으며, 후에 병관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병부는 신라 이래로 태봉의 것을 계승한 것이다. 병관이라고 칭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982년(성종 1)에 상서도성의 전신인 어사도성이 설치된 것에 미루어 이때 고친 것으로 추정된다. 어사도성 아래에 선관, 병관, 민관, 형관, 예관, 공관 등 6관이 설치되고, 병관에는 어사, 시랑, 낭중, 원외랑 등의 관원을 두었다.
병관 (兵官)
병관은 고려시대, 무선(武選) · 군무(軍務) · 의위(儀衛) · 우역(郵驛)을 담당하였던 관청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918년(태조 1)에 병부를 두었으며, 후에 병관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병부는 신라 이래로 태봉의 것을 계승한 것이다. 병관이라고 칭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982년(성종 1)에 상서도성의 전신인 어사도성이 설치된 것에 미루어 이때 고친 것으로 추정된다. 어사도성 아래에 선관, 병관, 민관, 형관, 예관, 공관 등 6관이 설치되고, 병관에는 어사, 시랑, 낭중, 원외랑 등의 관원을 두었다.
고려시대 최고 중앙의정기관인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후신관청.
도첨의부 (都僉議府)
고려시대 최고 중앙의정기관인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후신관청.
고려 후기 백관(百官)의 서무를 관장하던 중앙행정관청.
도첨의사사 (都僉議使司)
고려 후기 백관(百官)의 서무를 관장하던 중앙행정관청.
삼성(三省)은 고려시대 중서성(中書省)·문하성(門下省)·상서성(尙書省)으로 구성된 최고 정치 기구이다. 당의 삼성 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국왕을 보좌했던 정치기구였다. 중서성과 문하성을 합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으로 운영하였고, 상서성은 중서문하성보다 위상이 낮았다. 국정의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하고, 간쟁(諫諍)과 봉박(封駁), 서경(署經)을 담당했으며,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삼성 (三省)
삼성(三省)은 고려시대 중서성(中書省)·문하성(門下省)·상서성(尙書省)으로 구성된 최고 정치 기구이다. 당의 삼성 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국왕을 보좌했던 정치기구였다. 중서성과 문하성을 합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으로 운영하였고, 상서성은 중서문하성보다 위상이 낮았다. 국정의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하고, 간쟁(諫諍)과 봉박(封駁), 서경(署經)을 담당했으며,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고려·조선시대의 퇴임 호장(戶長).
안일호장 (安逸戶長)
고려·조선시대의 퇴임 호장(戶長).
고려시대 상서성의 정3품 관직.
상서 (尙書)
고려시대 상서성의 정3품 관직.
고려시대의 중앙정치기구인 상서성(尙書省)의 상층관서.
상서도성 (尙書都省)
고려시대의 중앙정치기구인 상서성(尙書省)의 상층관서.
고려시대 상서성의 장관.
상서령 (尙書令)
고려시대 상서성의 장관.
고려시대 상서성(尙書省)의 정2품 관직.
우복야 (右僕射)
고려시대 상서성(尙書省)의 정2품 관직.
우복야(右僕射)는 조선 초기, 사헌부 · 사간원 · 홍문관 등 3사(三司)에 두었던 정2품 관직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3사에만 설치되었던 관직이다. 1392년(태조 1)부터 1400년(정종 2)까지 8년간만 설치가 확인된다. 우복야는 회계를 전담하는 핵심 관서인 3사의 당상관으로 부서의 업무뿐 아니라 당시 정치적 문제에도 의견을 개진하는 요직의 하나였다.
우복야 (右僕射)
우복야(右僕射)는 조선 초기, 사헌부 · 사간원 · 홍문관 등 3사(三司)에 두었던 정2품 관직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3사에만 설치되었던 관직이다. 1392년(태조 1)부터 1400년(정종 2)까지 8년간만 설치가 확인된다. 우복야는 회계를 전담하는 핵심 관서인 3사의 당상관으로 부서의 업무뿐 아니라 당시 정치적 문제에도 의견을 개진하는 요직의 하나였다.
고려시대 상서성(尙書省)에 소속한 관직.
우사낭중 (右司郞中)
고려시대 상서성(尙書省)에 소속한 관직.
중찬은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이다. 1275년(충렬왕 1)에 관제를 개편하면서 중서문하성의 문하시중을 첨의부 중찬으로 바꾸고 우 · 좌 각 1명씩 두었다. 129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으로 고쳤다가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다시 중찬이라 하였다. 130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정승(政丞)으로 바꾸고 정원을 1명으로 줄였다. 1330년(충숙왕 17)에 충혜왕이 즉위하여 도첨의중찬으로 개칭하였지만 곧이어 충숙왕이 복위하여 정승으로 되돌리고 좌 · 우 2명을 두었다.
중찬 (中贊)
중찬은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이다. 1275년(충렬왕 1)에 관제를 개편하면서 중서문하성의 문하시중을 첨의부 중찬으로 바꾸고 우 · 좌 각 1명씩 두었다. 129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으로 고쳤다가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다시 중찬이라 하였다. 130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정승(政丞)으로 바꾸고 정원을 1명으로 줄였다. 1330년(충숙왕 17)에 충혜왕이 즉위하여 도첨의중찬으로 개칭하였지만 곧이어 충숙왕이 복위하여 정승으로 되돌리고 좌 · 우 2명을 두었다.
고려시대 상서성(尙書省)의 정5품 관직.
좌사낭중 (左司郞中)
고려시대 상서성(尙書省)의 정5품 관직.
참문학사는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2품 관직이다. 1275년(충렬왕 1)에 관제 개편에 따라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참문학사로 개칭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참문학사에서 다시 정당문학으로 개칭하였다. 그 명칭에 ‘문학’이 있듯이 첨의부에서 문학을 주로 하여 의정 기능을 맡아 보았다.
참문학사 (參文學事)
참문학사는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2품 관직이다. 1275년(충렬왕 1)에 관제 개편에 따라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참문학사로 개칭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참문학사에서 다시 정당문학으로 개칭하였다. 그 명칭에 ‘문학’이 있듯이 첨의부에서 문학을 주로 하여 의정 기능을 맡아 보았다.
고려 후기 최고 중앙행정관청.
첨의부 (僉議府)
고려 후기 최고 중앙행정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