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북면"
검색결과 총 12건
고려후기 서북면병마사, 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박서 (朴犀)
고려후기 서북면병마사, 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존무사는 고려 후기, 강릉도(江陵道)와 평양도(平壤道)에서 백성을 안무하고 수령을 감찰하던 지방 관직이다. 1258년(고종 45)에 쌍성총관부 설치로 명주도만 남은 동계를 강릉도로 편성하고 존무사를 설치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동녕부를 돌려받자 서경에 존무사를 파견하여 서북면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존무사는 남도의 안렴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즉 백성의 괴로움을 묻고, 수령을 평가하며, 조세를 수납하는 일 등을 맡았다.
존무사 (存撫使)
존무사는 고려 후기, 강릉도(江陵道)와 평양도(平壤道)에서 백성을 안무하고 수령을 감찰하던 지방 관직이다. 1258년(고종 45)에 쌍성총관부 설치로 명주도만 남은 동계를 강릉도로 편성하고 존무사를 설치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동녕부를 돌려받자 서경에 존무사를 파견하여 서북면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존무사는 남도의 안렴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즉 백성의 괴로움을 묻고, 수령을 평가하며, 조세를 수납하는 일 등을 맡았다.
고려 전기에, 공부상서, 서북면병마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사영 (史榮)
고려 전기에, 공부상서, 서북면병마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밀직제학, 서북면도순문사, 봉익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정윤의 (鄭允宜)
고려 후기에, 밀직제학, 서북면도순문사, 봉익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최공익은 고려 전기 공부상서, 서북면병마사 등의 관직을 역임한 문신이다. 1098년(숙종 3)에 첨사부의 가령에 임명되었으며, 1102년(숙종 7)에 서경의 부유수로 재직하던 중 서경유수부에 소장되어 있는 서적을 검토하여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1106년(예종 1)에 공부상서로서 서북면병마사에 임명되었고, 1109년(예종 4)에는 우복야(右僕射)가 되었다.
최공익 (崔公翊)
최공익은 고려 전기 공부상서, 서북면병마사 등의 관직을 역임한 문신이다. 1098년(숙종 3)에 첨사부의 가령에 임명되었으며, 1102년(숙종 7)에 서경의 부유수로 재직하던 중 서경유수부에 소장되어 있는 서적을 검토하여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1106년(예종 1)에 공부상서로서 서북면병마사에 임명되었고, 1109년(예종 4)에는 우복야(右僕射)가 되었다.
고려후기 극성방어사, 밀직부사, 서북면부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
양백안 (楊伯顔)
고려후기 극성방어사, 밀직부사, 서북면부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태조 때 북방개척을 위해 파견된 관군(官軍).
개정군 (開定軍)
고려 태조 때 북방개척을 위해 파견된 관군(官軍).
고려 전기에, 지어사대사, 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안자공 (安子恭)
고려 전기에, 지어사대사, 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강조는 고려 전기에 서북면도순검사, 중대사, 이부상서·참지정사, 행영도통사 등을 역임한 권신이다. 목종 때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었는데 당시 목종의 명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개경으로 진격하여 김치양 세력을 제거하고 현종을 왕위에 옹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이후 목종을 시해하여 권력을 장악했는데, 거란이 이를 구실로 1010년(현종 1) 침략하자 서북면 행영도통사가 되어 통주 삼수채에서 거란군과 싸워 몇 차례 승리했으나 이내 방심하다가 거란군에게 사로잡혔다. 그러나 거란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키다가 살해당하였다.
강조 (康兆)
강조는 고려 전기에 서북면도순검사, 중대사, 이부상서·참지정사, 행영도통사 등을 역임한 권신이다. 목종 때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었는데 당시 목종의 명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개경으로 진격하여 김치양 세력을 제거하고 현종을 왕위에 옹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이후 목종을 시해하여 권력을 장악했는데, 거란이 이를 구실로 1010년(현종 1) 침략하자 서북면 행영도통사가 되어 통주 삼수채에서 거란군과 싸워 몇 차례 승리했으나 이내 방심하다가 거란군에게 사로잡혔다. 그러나 거란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키다가 살해당하였다.
인당은 고려 후기 첨의평리, 서북면병마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356년(공민왕 5)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동지밀직사사 강중경 등과 함께 압록강 서쪽 8참과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 등 3참을 공략하였다. 이는 공민왕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원의 침략에 대비하는 한편, 원을 오가는 교통로를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 조정은 고려가 원나라 국경을 침범한 것은 공민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변방의 장수가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이라 변명하였다. 그에 대한 사과의 표시로 인당이 소환되어 처형당하였다.
인당 (印璫)
인당은 고려 후기 첨의평리, 서북면병마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356년(공민왕 5)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동지밀직사사 강중경 등과 함께 압록강 서쪽 8참과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 등 3참을 공략하였다. 이는 공민왕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원의 침략에 대비하는 한편, 원을 오가는 교통로를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 조정은 고려가 원나라 국경을 침범한 것은 공민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변방의 장수가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이라 변명하였다. 그에 대한 사과의 표시로 인당이 소환되어 처형당하였다.
염신약은 고려 후기 이부상서, 한림학사 승지,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광주장서기, 첨사부녹사가 되었으며, 명종 때 국자시를 주관하고, 동지공거가 되어 인재를 선발하였다. 이후 서북면병마사, 이부상서, 추밀원부사, 한림학사 승지가 되었다. 조위총의 난 당시 대금외교 방면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192년(명종 22)에 정당문학으로 치사하였고 이해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효문이다.
염신약 (廉信若)
염신약은 고려 후기 이부상서, 한림학사 승지,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광주장서기, 첨사부녹사가 되었으며, 명종 때 국자시를 주관하고, 동지공거가 되어 인재를 선발하였다. 이후 서북면병마사, 이부상서, 추밀원부사, 한림학사 승지가 되었다. 조위총의 난 당시 대금외교 방면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192년(명종 22)에 정당문학으로 치사하였고 이해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효문이다.
왕강은 고려 말 서북면안무사 등을 역임하고 조선 초기 회군공신에 책록되었으나 조선 개국세력에 의해 유배된 문신이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고, 성균직학·강녕부승이 되었다. 우왕 때 서북면안무사, 양광·전라·경상도수군도체찰사 겸 방어영전염철사가 되었고, 조선 건국 후 예문관제학이 되었으나, 거제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회군공신에 추록되었으나, 1394년(태조 3) 다시 공주에 유배되고 뒤에 왕씨 일족이 화를 당할 때 함께 살해되었다.
왕강 (王康)
왕강은 고려 말 서북면안무사 등을 역임하고 조선 초기 회군공신에 책록되었으나 조선 개국세력에 의해 유배된 문신이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고, 성균직학·강녕부승이 되었다. 우왕 때 서북면안무사, 양광·전라·경상도수군도체찰사 겸 방어영전염철사가 되었고, 조선 건국 후 예문관제학이 되었으나, 거제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회군공신에 추록되었으나, 1394년(태조 3) 다시 공주에 유배되고 뒤에 왕씨 일족이 화를 당할 때 함께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