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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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는 조선 후기에 홍문관 직제학, 강동현령을 역임한 서예가이다. 김노경의 아들이며 추사 김정희의 아우이다. 아버지 김노경과 함께 1822년(순조 22) 10월 연경을 방문했을 때 청대 금석학자와 활발하게 교유하였고, 그들과 김정희가 친분을 쌓는 데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학문이 깊고 시문과 서예에 능했으며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관련 자료에는 고려대학교 소장 『청조명가서독』과 필사본 시집인 『산천시』가 있다. 서예가로도 명망이 있었다. 구양순체를 따랐으며, 소해는 형 김정희의 글씨와 매우 흡사하다.
김명희 (金命喜)
김명희는 조선 후기에 홍문관 직제학, 강동현령을 역임한 서예가이다. 김노경의 아들이며 추사 김정희의 아우이다. 아버지 김노경과 함께 1822년(순조 22) 10월 연경을 방문했을 때 청대 금석학자와 활발하게 교유하였고, 그들과 김정희가 친분을 쌓는 데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학문이 깊고 시문과 서예에 능했으며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관련 자료에는 고려대학교 소장 『청조명가서독』과 필사본 시집인 『산천시』가 있다. 서예가로도 명망이 있었다. 구양순체를 따랐으며, 소해는 형 김정희의 글씨와 매우 흡사하다.
조선 전기에, 대동승, 삼등, 함흥 등 8고을의 수령을 역임한 문신.
양사언 (楊士彦)
조선 전기에, 대동승, 삼등, 함흥 등 8고을의 수령을 역임한 문신.
서울시 중구 미술관길에 있는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市立美術館)
서울시 중구 미술관길에 있는 미술관.
이서는 조선 후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한 명망 있는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가학을 토대로 평생 학문을 익히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었다. 거문고에도 능하였으며, 경서와 제자백가도 깊이 연구하였다. 성호 이익의 형으로서 훈도하고, 그의 문인들이 ‘홍도’라는 시호를 지어 학덕을 칭송하였다.
이서 (李潊)
이서는 조선 후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한 명망 있는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가학을 토대로 평생 학문을 익히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었다. 거문고에도 능하였으며, 경서와 제자백가도 깊이 연구하였다. 성호 이익의 형으로서 훈도하고, 그의 문인들이 ‘홍도’라는 시호를 지어 학덕을 칭송하였다.
1961년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가협회의 두 대립조직이 통합된 성격으로 새로이 결성된 미술가 단체.
한국미술협회 (韓國美術協會)
1961년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가협회의 두 대립조직이 통합된 성격으로 새로이 결성된 미술가 단체.
남화(南畵)의 향상과 보급을 위해 1936년에 결성한 서화연구단체.
남화회 (南畵會)
남화(南畵)의 향상과 보급을 위해 1936년에 결성한 서화연구단체.
1940년 결성된 서예와 사군자 연구단체.
문인서화연구회 (文人書畵硏究會)
1940년 결성된 서예와 사군자 연구단체.
일제강점기 지역 고승과 문인들의 비문과 현판을 많이 쓴 서예가.
송태회 (宋泰會)
일제강점기 지역 고승과 문인들의 비문과 현판을 많이 쓴 서예가.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있는 군립 미술관.
소전미술관 (素筌美術館)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있는 군립 미술관.
이광사 필 『서결』은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가 전대 서예의 이론적 체계를 참고하여 저술한 서예 이론서이다. 이광사가 유배 생활을 하던 1764년에 저술을 완성하였고, 2년 뒤 1766년에 직접 필사하여 큰 아들 이긍익에게 준 서첩이다. 왕희지의 서법와 전서, 예서로 된 여러 비갈의 글씨를 학습할 것을 역설하여 후대 서단에 고비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광사 필 서결 (李匡師 筆 書訣)
이광사 필 『서결』은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가 전대 서예의 이론적 체계를 참고하여 저술한 서예 이론서이다. 이광사가 유배 생활을 하던 1764년에 저술을 완성하였고, 2년 뒤 1766년에 직접 필사하여 큰 아들 이긍익에게 준 서첩이다. 왕희지의 서법와 전서, 예서로 된 여러 비갈의 글씨를 학습할 것을 역설하여 후대 서단에 고비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 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서예가.
배길기 (裵吉基)
해방 이후 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