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석축_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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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숭산성(美崇山城)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고려시대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고도가 높은 미숭산의 험준한 자연 지형에 따라 쌓은 성으로 그 둘레는 1,325m에 이른다. 합천은 역사·지리적으로 대가야에 속했던 지역이고 남쪽의 불무골은 대가야의 철산지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한동안 미숭산성은 가야의 성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이 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숭산성 (美崇山城)
미숭산성(美崇山城)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고려시대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고도가 높은 미숭산의 험준한 자연 지형에 따라 쌓은 성으로 그 둘레는 1,325m에 이른다. 합천은 역사·지리적으로 대가야에 속했던 지역이고 남쪽의 불무골은 대가야의 철산지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한동안 미숭산성은 가야의 성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이 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마현산성(馬峴山城)은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산102번지에 있는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협축식 성벽의 둘레는 약 300m이다. 성벽은 가공되지 않은 할석으로 조잡하게 만들어 나말선초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피난성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부에서 6세기 중반 경의 신라 토기가 확인되므로 신라의 가야 지역 진출과 관련하여 초축한 흔적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마현산성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자료만 정리된 상태이지만, 낙동강 하구의 관방 체계와 관련하여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마현산성 (馬峴山城)
마현산성(馬峴山城)은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산102번지에 있는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협축식 성벽의 둘레는 약 300m이다. 성벽은 가공되지 않은 할석으로 조잡하게 만들어 나말선초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피난성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부에서 6세기 중반 경의 신라 토기가 확인되므로 신라의 가야 지역 진출과 관련하여 초축한 흔적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마현산성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자료만 정리된 상태이지만, 낙동강 하구의 관방 체계와 관련하여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 갈고개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석성.
갈현성 (葛峴城)
대전광역시 동구 갈고개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석성.
견훤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장바위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성이라 하지만 협축식으로 쌓은 정교한 체성벽과 높은 내벽, 보축 성벽, 현문식 성문 등 초기 신라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65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대 15m에 달한다. 5세기 말경에 처음 축성되었으며, 통일신라 시기에 수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4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다.
견훤산성 (甄萱山城)
견훤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장바위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성이라 하지만 협축식으로 쌓은 정교한 체성벽과 높은 내벽, 보축 성벽, 현문식 성문 등 초기 신라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65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대 15m에 달한다. 5세기 말경에 처음 축성되었으며, 통일신라 시기에 수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4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고려후기 진성으로 초축된 성곽. 산성.
구례 석주관성 (求禮 石柱關城)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고려후기 진성으로 초축된 성곽. 산성.
대국산성은 남해 대국산(大局山: 370m)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석축 산성이다. 대국산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먼저 쌓아 올려진 석축성과 동쪽 비탈면으로 석축성에 덧대어 산 중턱까지 연결하여 쌓은 토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축 산성은 가늘고 긴 성돌로 바른층 쌓기를 하였으며, 보축 성벽과 현문식 문지를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신라 석축 산성이다. 토성은 기단식 판축 토성으로 덧붙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신라 전야산군의 치소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성과 사천 지역뿐만 아니라 남해 도서 지역이 넓게 조망되는 요충지이다.
대국산성 (大局山城)
대국산성은 남해 대국산(大局山: 370m)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석축 산성이다. 대국산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먼저 쌓아 올려진 석축성과 동쪽 비탈면으로 석축성에 덧대어 산 중턱까지 연결하여 쌓은 토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축 산성은 가늘고 긴 성돌로 바른층 쌓기를 하였으며, 보축 성벽과 현문식 문지를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신라 석축 산성이다. 토성은 기단식 판축 토성으로 덧붙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신라 전야산군의 치소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성과 사천 지역뿐만 아니라 남해 도서 지역이 넓게 조망되는 요충지이다.
배산성지(盃山城址)는 삼국시대 부산의 배산에 지어진 신라 석축 산성의 터이다. 배산은 해발 고도 250m의 낮은 산이지만, 해운대구와 연제구, 동래구, 금정구 등 부산 시내 일원이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배산성의 성곽은 배산의 정상부를 둘러싸는 토성, 성의 사면과 능선을 아우르는 석축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성 기법이나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배산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배산성지 (盃山城址)
배산성지(盃山城址)는 삼국시대 부산의 배산에 지어진 신라 석축 산성의 터이다. 배산은 해발 고도 250m의 낮은 산이지만, 해운대구와 연제구, 동래구, 금정구 등 부산 시내 일원이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배산성의 성곽은 배산의 정상부를 둘러싸는 토성, 성의 사면과 능선을 아우르는 석축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성 기법이나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배산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산성(山城)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하었다. 현존하는 성곽 중 왕성이나 도성, 조선시대의 읍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은 대부분 적의 공격을 관측하기 좋은 교통의 요충지에 구축되었다. 산성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적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성내에 집수 시설과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어야 하였다. 산성을 쌓는 방법은 축성 시기나 축성 주체에 따라 달랐으며, 군사적인 기능 외에 행정을 관할하는 치소성의 역할도 하었다.
산성 (山城)
산성(山城)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하었다. 현존하는 성곽 중 왕성이나 도성, 조선시대의 읍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은 대부분 적의 공격을 관측하기 좋은 교통의 요충지에 구축되었다. 산성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적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성내에 집수 시설과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어야 하였다. 산성을 쌓는 방법은 축성 시기나 축성 주체에 따라 달랐으며, 군사적인 기능 외에 행정을 관할하는 치소성의 역할도 하었다.
양주 대모산성(楊州 大母山城)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6세기 중반 이후 임진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를 통제할 수 있는 곳에 축조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연천 대전리산성과 함께 나당전쟁의 중요 격전지였던 매소성과 비교되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성벽과 관련 구조물, 집수지 등에서 여러 차례 산성을 개축한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출토된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까지 산성을 지속적으로 활용했음이 밝혀졌다. 다만 일부 확인되는 백제 유구와 유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계속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양주 대모산성 (楊州 大母山城)
양주 대모산성(楊州 大母山城)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6세기 중반 이후 임진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를 통제할 수 있는 곳에 축조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연천 대전리산성과 함께 나당전쟁의 중요 격전지였던 매소성과 비교되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성벽과 관련 구조물, 집수지 등에서 여러 차례 산성을 개축한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출토된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까지 산성을 지속적으로 활용했음이 밝혀졌다. 다만 일부 확인되는 백제 유구와 유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계속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순천 검단산성은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석축산성이다. 정유재란 당시 조명 연합군이 이 산성에 머물면서 순천왜성의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여서 조선시대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3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검단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석축산성으로 확인되었다. 둘레는 430m이며, 성내에서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가 확인되었다.
순천 검단산성 (順天 檢丹山城)
순천 검단산성은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석축산성이다. 정유재란 당시 조명 연합군이 이 산성에 머물면서 순천왜성의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여서 조선시대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3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검단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석축산성으로 확인되었다. 둘레는 430m이며, 성내에서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가 확인되었다.
우금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우금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해발 340m 우금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주변 봉우리를 아우르고 있으며, 둘레 3,960m에 달하는 대규모 석축 산성이다. 백제 부흥운동의 최후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어 왔으나 수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축성 관련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따라 능선을 연결하며 쌓아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이다. 성벽 몸체 부분의 축조 방식이나 출토 유물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해 쌓은 '입보용 산성'으로 추정된다.
우금산성 (禹金山城)
우금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우금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해발 340m 우금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주변 봉우리를 아우르고 있으며, 둘레 3,960m에 달하는 대규모 석축 산성이다. 백제 부흥운동의 최후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어 왔으나 수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축성 관련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따라 능선을 연결하며 쌓아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이다. 성벽 몸체 부분의 축조 방식이나 출토 유물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해 쌓은 '입보용 산성'으로 추정된다.
거제 옥산성(巨濟 玉山城)은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산1번지에 위치하는 수정봉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벽은 기반암을 정리하고 기단을 쌓은 뒤 성벽을 올린 것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 수리 · 증축한 것이다. 성 내부에서 2기의 집수지와 9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이 중 집수지 1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시대에 재사용되었다.
거제 옥산성 (巨濟 玉山城)
거제 옥산성(巨濟 玉山城)은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산1번지에 위치하는 수정봉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벽은 기반암을 정리하고 기단을 쌓은 뒤 성벽을 올린 것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 수리 · 증축한 것이다. 성 내부에서 2기의 집수지와 9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이 중 집수지 1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시대에 재사용되었다.
창원 진례산성은 비음산(해발 : 518.8m)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조선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남쪽으로는 진해만, 동쪽으로는 김해시 진례면 송현리 일부, 부산 사상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산성의 둘레가 약 4.5㎞를 상회하는 대형의 성이다. 체성은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성 내외의 경사도가 큰 곳은 편축으로, 경사도가 작은 곳은 협축으로 축조하였다.
창원 진례산성 (昌原 進禮山城)
창원 진례산성은 비음산(해발 : 518.8m)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조선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남쪽으로는 진해만, 동쪽으로는 김해시 진례면 송현리 일부, 부산 사상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산성의 둘레가 약 4.5㎞를 상회하는 대형의 성이다. 체성은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성 내외의 경사도가 큰 곳은 편축으로, 경사도가 작은 곳은 협축으로 축조하였다.
정선 고성리 산성(旌善 古城里 山城)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마을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670m이다. 이 산성은 토축 구간과 석축 구간을 교대로 축조한 독특한 축조 방식을 보여준다. 산성에서는 개(蓋), 1단이나 2단 투창의 대각편, 파상문이나 반원점문이 시문된 토기편 등 대체로 5~6세기 경의 신라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과 축성법으로 보아 이 산성은 6세기 이후 신라의 영향을 받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정선 고성리 산성 (旌善 古城里 山城)
정선 고성리 산성(旌善 古城里 山城)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마을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670m이다. 이 산성은 토축 구간과 석축 구간을 교대로 축조한 독특한 축조 방식을 보여준다. 산성에서는 개(蓋), 1단이나 2단 투창의 대각편, 파상문이나 반원점문이 시문된 토기편 등 대체로 5~6세기 경의 신라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과 축성법으로 보아 이 산성은 6세기 이후 신라의 영향을 받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비교적 높은 남북의 두 봉우리를 길게 연결하여 성을 쌓았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이용했다. 성 내부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남봉과 북봉에서 돈대 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하동 고성산성 (河東 高城山城)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비교적 높은 남북의 두 봉우리를 길게 연결하여 성을 쌓았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이용했다. 성 내부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남봉과 북봉에서 돈대 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추화산성(推火山城)은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라의 석축 포곡식 산성이다. 동문과 남문, 북쪽 계곡에는 우물과 집수지, 부속 건물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내부에서 단각고배, 인화문토기, 승렴문호, 파상문 단경호, 순청자 접시, 상감청자 종지, 분청자 저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6세기 후반경)에 초축되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전기까지 산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화산성 (推火山城)
추화산성(推火山城)은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라의 석축 포곡식 산성이다. 동문과 남문, 북쪽 계곡에는 우물과 집수지, 부속 건물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내부에서 단각고배, 인화문토기, 승렴문호, 파상문 단경호, 순청자 접시, 상감청자 종지, 분청자 저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6세기 후반경)에 초축되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전기까지 산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충주 남산성(忠州 南山城)은 충청북도 충주시 동남쪽의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마고성, 충주산성, 금봉산성 등으로 불리는데, 발굴 조사 결과 7세기 말 신라의 북진 및 충주 지역 진출과 관련된 신라시대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전체 둘레는 1,120m이며, 동서남북 방향에 현문식으로 조성된 4개의 문지를 비롯하여 수구, 저수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충주 남산성 (忠州 南山城)
충주 남산성(忠州 南山城)은 충청북도 충주시 동남쪽의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마고성, 충주산성, 금봉산성 등으로 불리는데, 발굴 조사 결과 7세기 말 신라의 북진 및 충주 지역 진출과 관련된 신라시대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전체 둘레는 1,120m이며, 동서남북 방향에 현문식으로 조성된 4개의 문지를 비롯하여 수구, 저수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팔거산성(八莒山城)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축 산정식 산성이다. 성 내부의 목조 집수지에서 간지, 지명, 곡식 등이 적힌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목간을 통해 팔거산성은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5세기 후반이며, 세금 징수와 관련된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팔거산성 (八莒山城)
팔거산성(八莒山城)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축 산정식 산성이다. 성 내부의 목조 집수지에서 간지, 지명, 곡식 등이 적힌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목간을 통해 팔거산성은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5세기 후반이며, 세금 징수와 관련된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